反核 프란치스코 교황 방중과 방북?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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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核 프란치스코 교황 방중과 방북?

2019.12.11

11월 프란치스코 로마교황이 4박 5일 동안 자신의 아시아 여행국으로 네 번째인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필자는 1984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한을 취재했던 데다 대통령이 작년 로마교황청에서 북한 측의 교황 방북 초청 의사를 구두로 전달한 바 있어 관심이 컸습니다. 일본에서 일곱 차례 열린 82세 교황의 강론 몇 건을 일본어 자막이 깔린 유튜브나 연설 텍스트로 지켜봤습니다.

가톨릭신자는 아닙니다. 오래된 성당이면 들어가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소액을 헌금함에 넣기도 합니다. 스페인에 가려고 피레네산맥을 넘기 전에 들렀던, 프랑스의 작은 마을 루르드의 동굴 성당이 생각납니다. 성처녀 베르나데트가 성모의 발현을 본 기적과 병자를 치유한다는 성수로 널리 알려졌죠. 루르드 동굴에 양초를 불붙여 올렸습니다. 동굴 입구에는 녹슨 지체 장애인들의 철제 보조 용구가 많이 걸려 있어 그들이 제 발로 걸어 나갔을 거라고 짐작했죠.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에서는 원자폭탄 참화의 기억과 동행, 3·11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의 3중 재앙에 대한 경고와 위로, 젊은이를 위한 강론이 인상 깊었습니다. 교황은 나루히토 일본 천황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아홉 살 때 원폭 투하 뉴스를 접한 양친이 흘린 눈물이 가슴 깊이 새겨져 그런 마음을 담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피폭지 방문을 자신의 사명으로 품어 왔다고 했습니다.

교황은 “핵무기의 사용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며, 지구촌의 미래도 위협함으로써 비윤리적이며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도 윤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해 가톨릭이 전쟁 억지력으로 인정해오던 핵무기 보유도 비난했습니다. 교황은 요한 23세의 발언을 상기시키며 “군비의 균형이 평화의 조건”이라는 말은 “진정한 평화는 상호신뢰가 아니고서는 구축되지 않는다”로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류사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이 불러온 피해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핵무기는 오늘의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안전보장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들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정치 지도자들에게 요구한다”라고도 말했습니다.

교황은 로마로 돌아가는 기내 기자회견에서 “핵무기의 사용은 부도덕하고 그것이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집어 넣어야 하는 이유다. 통치자의 광기가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면서 ‘4차 대전은 몽둥이와 돌로 전개될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문명파괴 경고를 환기했습니다. “한 국가가 공격을 받았을 때 합법적인 전쟁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로마 격언이 있음을 언급하면서도 정당방위 또한 외교와 중재를 통해야 하며 “무력은 마지막 수단임을 나는 강조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수이트 회 출신 최초의 교황으로 이 교파가 설립한 조치대(上智大)의 강론에서 청년들에게 “언제나 행동이 공정하고 인간적일 것, 모범이 되는 책임에 관심을 갖는 인간이 되고 약자를 옹호할 것, 말과 행동이 허위나 기만인 지금의 시대에서 더욱 필요한 성실한 사람이 되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교황은 도쿄의 여러 강론에서 “가장 가난한 이를 섬긴 테레사 수녀는 일찍이 ‘고독과, 누구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가장 잔혹한 형태의 가난이다.’라는 예언적인 말을 했습니다.… 인류는 수많은 도구를 발명했지만 영혼의 셀카는 찍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행복해지려면 누군가에게 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라면서 자신의 껍질을 벗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마음으로 향하라고 설파했습니다. 소통을 좋아하는 교황의 트윗(@Pontifex) 팔로워는 1,810만 명입니다.

여러 언론이 핵무기에 대한 교황의 단호함을 ‘만만찮은 교황 외교’라고 다루었습니다. 미 워싱턴 포스트는 교황이 올해 11번째 해외 순방국인 일본 나가사키의 연설에서 ‘핵 억지력’을 부정해 전임자들보다 더 나아갔다면서 반핵 메시지가 방일의 핵심이었다고 썼습니다. 배경에는 핵 군축 부진, 장기교착 상태의 이란과 북한 핵 문제, 중거리핵미사일협정(INF)의 실효(失效) 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량파괴 무기를 관리하는 다국간 합의가 쇠퇴함으로써 일어나는 새로운 군비 확장 경쟁의 경고로 풀이했습니다. 프랑스의 르 피가로는 교황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하루에 도는 일정을 언급, “치열하게 긴 싸움에 도전하려고 한다”며 핵 폐기의 집념을 보도했습니다. 가톨릭신문인 프랑스의 라 크루와 지는 교황의 언급이 “최근 미국과 러시아가 신 냉전의 시대에 들어가는 듯한 국제정세에 명확한 인식의 표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일본 산케이는 “핵 억지력, ‘비극’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사설에서 “모든 나라가 핵무기 폐기에 합의해도 숨기거나 몰래 제조하는 국가나 세력이 나타난다면 끝장이다. 핵무기 없는 일본이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의 핵 위협에 노출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현 과학기술 수준에서 핵 위협에는 핵을 포함한 전력으로 억지하는 태세가 불가결하다. 핵확산 방지조약(NPT)으로 인정된 핵 억지력의 존재가 핵전쟁이나 대국 간의 전쟁을 막아왔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의 더 리더 헤럴드는 ‘교황의 발언은 현실이 아니라 희망의 반영(Pope’s words reflect hope, not reality)‘이란 사설에서 원폭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미일 양국에 나왔을지를 교황은 생각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교황 말대로 핵무기를 폐기해야 하나? 그럼 회교국가 이란, 무신론의 북한, 중국은? 교황은 미국과, 아마도 러시아가 핵무기의 재사용을 마지막 수단으로 본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핵무장 국가들은 무기와 이를 운반할 미사일을 타국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인식할 것이며 ‘반도덕’이라는 말은 그들의 정책에 고려되는 단어가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일본의 네티즌들의 댓글도 부정적이었습니다. “비핵국 일본에서가 아니라 러시아나 북한, 중국에 가서 해야 할 말”이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원폭 피해국인 일본에서 전 세계를 향해 발신하는 메시지라는 높은 평가도 있었습니다.

교황은 기내 회견에서 태국에서 일본으로 비행 중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에게 전보를 보낸 것과 홍콩의 시위 및 지방자치 선거에 관해 묻자 전보는 모든 나라의 국가원수에게 보내지며 영공을 통과하는 나라의 허가를 구하는 정중한 방법이고 이념이나 지지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어 “기자가 생각하는 그것은, 홍콩만이 아니며 민주적인 프랑스에도 노란 조끼의 해[年]가 있었고 중남미 제국, 유럽에도 일반적”이라는 말로 희석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평화를 존중하며 문제를 가진 모든 나라에 대화와 평화를 요구한다”면서 “베이징에 가고 싶다. 나는 중국을 좋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항상 바쁜 서양인은 명상이나 고행 같은 동양인의 지혜에 시간을 들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예찬하기도 했습니다.  

교황청은 대만과 외교 관계를 갖고 있죠. 중국 가톨릭은 관영 애국 교회와 지하교회로 양분되며 가톨릭 신자가 1,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최근 두 번째 중국 교구 주교를 서품했습니다. 중국과의 공동 승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황이 중국에 가고 싶다고 해서, 또 주교의 초청을 받았다고 해서 성사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건의 성숙이 필요한 거죠. 옛 공산국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은 취임 다음 해인 1979년 모국을 9일간 방문하여 “성령이 강림하여 이 땅을 새롭게 하시옵소서.”라며 신앙의 희망을 불어넣어 공산 체제에 대한 공포를 없애고 자유노조 설립 등 동유럽 민주화운동에 불을 붙여 공산주의 몰락에 기여했죠. 교황은 1981년 교황청 앞 광장에서 치명적인 암살 공격을 받고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팔로린 추기경은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초청과 관련, “북한이 채워야 할 조건이 있는가”라는 언론의 물음에 “그것은 나중이 될 것이다. 이 여행을 하는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여행할 수 있는 조건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남북의 권력자가 어떤 목적으로, 성경책을 지니면 수용소로 간다는 북한에 교황의 초청 안을 짜냈는지 모르지만,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 30만 명으로 추정되는 기독교인 중 5만 내지 7만5,000명이 노동수용소에 있다는 무엇보다 상징적인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여건 성숙에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것을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일 메시지를 읽으며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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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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