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대표 정치학자 최장집 "한국 진보, 도덕적·정신적 파탄… 민주주의 위기"



최장집 "한국 진보, 도덕적·정신적 파탄… 민주주의 위기"

"한국 민주·진보파, 다수 인민 의사를 전체 사회의 의사로 이해...전체주의와 동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9일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라며 "위기의 본질은 한국 진보의 도덕적·정신적 파탄"이라고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 정책 기본 방향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이론가"라고 평가하면서 "칼 슈미트 이론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고 했다. 칼 슈미트는 독일의 법학자로 우적(友敵) 간 권력투쟁을 정치의 본질로 본 인물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9주년 학술회의에서 '김대중과 민주주의: 사상과 실천'을 주제로 기조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 교수는 이날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9주년 학술회의 '김대중과 한국민주주의' 기조 강연에서 "(현 집권 세력이) 민주화 이전으로 회귀해 역사와 대결하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 교수는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학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최 교수는 "민주화를 주도했던 운동세력들의 다수가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의 경향을 보인다"면서 "적폐 청산 열풍은 민주화 이전의 민주주의관으로 회귀했음을 말해준다"고 했다. 최 교수가 정의한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은 "민주주의를 고대 그리스어 어원처럼 '인민의 권력'으로 이해하고, 정부 형태가 선거에 기초한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경시하는 것"이다.

최 교수는 그러면서 "이른바 386세대로 통칭되는 이들의 정치화된 엘리트들이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지난 뒤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정치계급'이 됐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방식을 민주화 시대로 되돌린 것은 이들 엘리트 집단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화 이전의 민주주의관'에 대해 "젊은 세대가 주축이 돼 군부 권위주의 체제를 타도하는 민주화 투쟁 과정을 통해 형성됐다"고 했다. 그 특성에 대해선 "독재 대 민주, 냉전 수구세력 대 통일 지향적 남북 평화공존, 보수 대 진보, 외세 대 민족자주, 친일 대 반일 등에서 앞의 것은 척결돼야 할 대상으로, 뒤의 것은 정당성이자 도덕성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한국의 민주·진보파들은 다수로 표현된 인민의 의사를 전체 사회의 '일반 의사·의지'로 이해한다. 그에 반대한 모든 인민은 그 총의에 복종하도록 강제돼야 한다"며 "이런 틀에서 이해되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뿐 동일한 정치 체제"라고 했다.

그는 이어 "오늘의 한국의 진보파들은 직접민주주의를 대의제 민주주의보다 우월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이해한다"며 "이런 이해방식 위에서 대통령은 개혁의 조타수로서 한국 사회를 민주파, 개혁파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면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개혁자로 이해돼 왔다. 위험하게도 그것은 급진주의적 포퓰리즘으로 나아가는 현상을 동반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2018년 3월 발표한 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루소의 '일반의지'를 지칭하는 주권 개념을 오해하면서 개개 시민들을 주권자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개개 시민은 주권, 즉 일반 의지를 만드는 데 투표로서 참여할 뿐"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며 헌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검찰 개혁'을 하겠다며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된 조국 전 장관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법학자인 조 전 장관의 정치관이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정치관과 닮았다고도 했다. 그는 "조 전 장관의 대담집 '진보집권 플랜'을 보면 그의 정치관은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수구, 아(我)와 적(敵) 사이의 치열한 투쟁을 통한 권력 쟁취를 지향한다"며 "그것은 칼 슈미트의 정치 이론과 깊숙이 닿아 있다"고 했다. 칼 슈미트가 정치의 본질을 우리 편과 네 편의 권력 투쟁으로 본 것에 빗댄 것이다. 최 교수는 "정치가 친구와 적으로 양분되면 도덕적 판단, 불편부당성, 정의, 공정성 같은 구분은 무의미해지거나 애매해진다"고 했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 위기가 시작된 시기를 이명박 정부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임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검찰수사는 패자(敗者)의 존립 자체를 위협했다"고 했다. 이어 "진보파들은 제도권 밖 시민사회를 조직·동원하는데 사활을 걸었고, 문성근의 100만 민란운동 등 '좌파 포퓰리즘 운동'이 분출됐다. 이러한 흐름이 문재인 정부를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유병훈 기자 조선일보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