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한국, 아! 한국 대통령, 아! 한국 국민'
경제문화 Economy, Culture/사회이슈 Society issue2019. 12. 7. 09:47
강천석 논설고문
권력 더 잡겠다고 현금 뿌려 국민 타락하도록 飼育하는 정권
나라 망해갈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국민은 역사의 罪人 돼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망국(亡國) 과정의 조선과 일본 관계에 대해 많은 책과 논설을 쓴 중국의 혁명가·사상가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한 상해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朴殷植)과 역사가 신채호(申采浩)는 그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량치차오는 조선이 걷는 길을 따라가면 나라가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중국인들에게 가르쳐 분발을 촉구하려 했다. 조선을 중국의 속방(屬邦)으로 봤던 그는 조선 지배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걸 보고 큰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다.
량치차오는 1907년 10월 7일 '아! 한국, 아! 한국 황제, 아! 한국 국민'이란 글을 발표했다. '한국이 완전히 망했다'로 시작되는 글에서 '온 세상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망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한국은 한국 황제가 망하게 한 것이요, 한국 인민이 망하게 한 것이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한국 황제와 꼭 닮은 황제, 한국 인민과 꼭 닮은 인민이 있는 나라는 그 말로(末路)가 한국과 다를 수 없다'면서 '그런 뜻에서 한국 황제와 한국 인민은 중국의 거울이자 스승'이라고 글을 맺었다.
고종의 무능(無能)을 지탄하는 비판을 굳이 옮길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한국 비판 언론의 대통령 비판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그러나 국민에게 물어야 할 망국의 책임 부분은 거북해도 들어야 한다. '한국 인민은 미천(微賤)한 관직이라도 얻으면 더없는 영광으로 여기고, 관직을 얻었다 하면 사당(私黨)을 끌어들여 이익을 서로 주고받고 나라를 잊는다. 그러니 정권과 한패가 된 사람을 제외한 일반 국민은 국사(國事)가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는 일로 생각한다.'
량치차오의 말대로 100년 전 조선의 망국은 중국인들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 구실을 했다. '절대로 조선처럼 되지는 말자'고 분발했던 일부 중국인이 있었기에 중국은 '반(半)식민지'로 그나마 나라 명줄을 보존했는지 모른다.
한국이 중국의 '반면교사'가 아니라 '진짜 스승'이었던 역사의 짧은 토막이 있었다. 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은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총리를 만나면 '한국을, 한국 경제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남에게 배우고 자기를 수정(修正)할 수 있었을까. 덩은 1984년 당(黨) 고위 회의에서 '나는 경제 분야 문외한(門外漢)이다. 내가 경제를 개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방법은 모른다. 전문가들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덩은 자기가 모르는 분야는 모른다고 정직하게 고백하고 전문가들의 합리적 견해를 존중했기에 마오쩌둥(毛澤東)의 과오를 피해 갈 수 있었다. 덩은 타이완과의 '평화 경제'로 단숨에 일본과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헛꿈을 꾸지 않았다. 중국 통일 문제는 앞으로 100년을 두고 풀어갈 문제라며 호흡(呼吸)을 길게 잡았다. 강철과 에너지 분야에서 7년 안에 영국을, 15년 안에 미국을 능가하겠다던 '아마추어 경제 전문가' 마오쩌둥의 과대망상으로 시작한 대약진운동은 2000만 명의 생목숨을 앗아갔다.
량치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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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3국(타이완을 포함하면 4국) 가운데 한국은 남미(南美) 국가의 길을 걷는 유일한 나라다. 정권은 현금을 뿌리며 국민을 베네수엘라 방식으로 사육(飼育)하고 있다. 권력을 더 오래 잡겠다고 량치차오가 100년 전 지적했듯 국민을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인민'으로 퇴보시키는 것이다. 동북아 역사 법칙의 하나는 국가 지도자가 '혁명'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횟수(回數)가 잦을수록 국민이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과거 1위는 중국이었다. 지금은 한국이 1위다.
중국 경제·금융 전문가들이 만드는 경제 정보 채널 '궁푸차이징(功夫財經)'은 '한국, 내부 분탕질로 죽어간다'는 제목으로 '경제 민수주의(民粹主義·포퓰리즘)'가 황폐화시킨 한국 경제 모습을 현장 중계한다고 한다. 나라의 안보·외교 정책은 도끼로 제 발등을 찍고, 경제·교육·복지 정책은 제 살 뜯기 방향으로 몰고 온 대한민국 선장실(船長室)이 물에 잠기고 있다. 배는 바닥부터, 나라는 꼭대기부터 샌다는 법칙은 이번에도 어김이 없다.
항로(航路)를 벗어나 다른 길로 배를 모는 것이 선장의 운전 미숙(未熟)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판(誤判)이었다. 배 표(票)를 팔 때 승객에게 행선지(行先地)를 속인 것이다. 세월호 그때처럼 선내(船內) 방송은 꺼져 있지만 '뭔가를 해야 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역사의 죄인(罪人)'이라는 소리가 승객들 귓가에 윙윙거리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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