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자기 안락사’



“잠이 적으면 언젠가 그 값을 치른다”

수면 부족은 서서히 수명을 단축하는 ‘자기 안락사’

    만병의 근원 비만, 수많은 합병증이 있는 당뇨병, 급사의 원인 심뇌혈관질환, 사망원인 1위 암, 삶의 질이 나쁜 치매 등은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질환이다. 세계 의학자들은 이들 질병을 한 번에 예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잠이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수많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증가하고, 결국 수명도 단축된다. 세계적인 수면 과학자인 매슈 워크 박사는 만성적인 수면 부족을 ‘자기 안락사’라고까지 표현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중학교·고등학교로 진학할수록 잠을 더 적게 잔다. 한 조사에서 문과 고등학생의 수면 시간은 약 5시간10분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보다 1시간, 미국보다 2시간 적은 시간이다. 



오랜 수면 부족은 불면증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청소년의 3분의 1은 불면증을 호소한다. 이런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대부분 수면이 부족한 생활패턴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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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부족과 질병 위험성의 연관성을 살펴본 연구는 수없이 많다. 당뇨병이 그중 하나다. 일본 홋카이도대학 연구팀이 2012년 35~55세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하루 수면 시간이 5시간 미만인 사람은 7시간 이상인 사람에 비해 당뇨병 발병 위험이 5배 더 높았다. 수면이 부족하면 혈당을 떨어뜨리는 인슐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수면센터장(신경과 교수)은 “잠이 부족하면 몸에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해 2형 당뇨병 위험성이 커진다. 그 위험은 불면증 기간이 4년 이하면 14%, 4~8년 38%, 8년 이상이면 51% 높아진다. 일반 당뇨병이 나이가 있는 사람에게서 발병한다면, 불면증에 의한 당뇨병 발생은 40세 이하에서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수면 부족으로 심혈관질환 8배 증가
돌연사 원인인 심혈관질환도 수면 부족과 관련이 있다.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 연구팀이 1994~2008년 수면장애 환자 4225명을 분석한 결과, 불면증은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8배 증가시킨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잘 때는 깨어 있을 때보다 혈압이 10~20% 떨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이완하는데, 잠을 못 자면 혈압이 감소하지 않고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활발해져 심혈관질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더 위험하다. 수면무호흡증은 잠을 자면서 10초 이상 숨을 쉬지 않는 무호흡과 호흡량이 50% 이상 감소하는 저호흡이 1시간에 5번 이상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잘 때 무호흡 상태에서 ‘푸’ 하고 숨을 몰아쉬면 심장 박동은 정상보다 2배 빨리 뛴다. 갑작스러운 심장 박동을 감당하기 위해 심장벽은 점차 두꺼워진다. 이 때문에 고혈압 위험이 58%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처럼 심장 박동이 최고치에 달하고 산소 공급량은 최저가 되는 상태가 반복되면 산소 결핍으로 뇌 기능도 떨어진다. 미국고혈압학회에 따르면, 수면 시간이 하루 5시간 미만인 사람의 뇌졸중 위험도는 일반인보다 2배 높게 나타났다. 특히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깨어 있을 때도 뇌혈류가 크게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미국수면학회에 보고된 바 있다. 또 잠을 너무 오래 자도 뇌졸중 위험이 커진다.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연구팀이 성인 247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하루 5〜7시간 잠을 자는 사람에 비해 9시간 이상 잠을 자는 사람의 뇌혈관질환 발생 위험은 3.1배 높았다. 

잠 못 자면 치매 위험 5배 증가
고령화 사회의 부담으로 떠오르는 치매도 수면 부족이 한 원인이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진은 잠을 못 자면 알츠하이머 치매 진행이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홍승봉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는 잠을 잘 때 제거된다. 수면이 부족하거나 수면의 질이 나쁘면 베타아밀로이드가 충분히 제거되지 못하고 뇌에 쌓인다. 이 때문에 알츠하이머 치매 위험이 커진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에서도 수면무호흡증으로 수면의 질이 나쁜 사람은 베타아밀로이드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밤에 자주 깨는 사람이 수면무호흡증까지 있다면 치매 위험성이 5~6배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밤늦게까지 활동하면 살이 빠질 것 같지만, 오히려 뚱뚱해진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다음 날엔 머리가 어지럽고 피곤하며 식욕 호르몬 분비가 증가한다. 활동량은 줄어드는데 더 많이 먹기 때문에 남은 열량은 지방으로 축적된다.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5시간 미만 잠을 자는 사람이 7시간을 자는 사람에 비해 비만은 1.25배, 복부비만은 1.24배 더 많았다. 이는 나이와 무관하게 초등학생, 청소년, 20~30대 젊은 층도 해당한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의대 연구에서도 4시간 이하의 잠을 자는 사람의 비만 확률은 7~9시간 자는 사람에 비해 73% 높았다. 수면 시간이 5시간과 6시간인 경우의 비만 확률은 각각 50%와 23% 높았다. 1시간 더 잘 때마다 비만 확률이 평균 25%포인트 낮아지는 셈이다. 밤에 잠을 자지 않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졸) 농도가 2배가량 증가한다. 이 호르몬은 각성을 일으키고 지방을 저장한다. 수면이 부족할 때 몸은 위급상태라고 받아들이고 에너지를 저장해 살이 찌는 것이다. 



수면 시간은 짧지만 깊게 잔다는 사람이 있다. 이미 수면장애로 잠이 부족한 사람의 전형적인 형태다. 잠을 시간 낭비라고 여긴 에디슨도 하루 3~4시간만 잤다. 그러나 그는 짜증을 달고 살았고 가족관계도 파경에 이를 정도로 좋지 않았다. 수면 부족일 때 코르티졸 분비가 늘어나면서 스트레스가 3.6배 증가한다. 짧은 시간에 깊게 잔다고 해서 수면의 질이 좋은 게 아니며, 부족한 수면 시간을 채울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의의 지적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수면 시간을 ‘수면 빚’이라고 한다. 적정 수면 시간에서 자신의 수면 시간을 뺀 값이다. 수면 빚이 많을수록 질환 발병 위험성은 커지므로, 잠을 적게 자면 언젠가 그 값을 치른다는 의미다. 한국인의 수면 빚은 30분 이상이다.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수면센터장은 “수면은 생명과 건강 유지의 기본이고 수면 부족은 만병의 근원”이라며 “수면 빚을 갚지 않고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수면 시간, 여자 5시간 이하·남자 4시간 이하일 때 수명 단축
수면 부족은 우울증 빈도를 3배 증가시킨다. 우울증이 생기면 잠을 잘 못 자게 되므로 악순환에 빠진다. 우울증에 불면증이 겹치면 치료도 잘 안 되고 무엇보다 자살 위험이 커진다. 암도 수면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 관련 연구를 종합하면, 수면 부족은 암 위험성을 2배 올린다. 홍승봉 교수는 “잠을 못 자면, 유방암·간암 44%, 폐암은 34%, 전립선암 42%, 대장암은 7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 외에 면역기능이 떨어져 각종 감염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커진다. 수면 부족은 각종 질병에 취약한 몸 상태를 만들기 때문에 결국 수명 단축으로 이어진다. 여자는 수면 시간이 5시간 이하일 때, 남자는 4시간 이하일 때 수명이 짧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수면과 수명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이 성인 100만여 명을 대상으로 평소 수면 시간과 6년간의 사망률을 추적한 연구 결과다. 하루 7시간 잠을 잔 사람의 사망률이 가장 낮았다. 7시간보다 적거나 많이 자면 사망률이 증가했다. 잠의 질이 좋은 경우에는 수면 시간이 길 필요가 없다. 잠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오히려 수면의 질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면무호흡증 등 수면장애나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신체질환과 정신질환이 수면 시간을 길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국 워릭의대 연구팀도 2007년 영국수면학회에서 “1만여 명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17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하루 수면 시간이 5시간 미만인 사람은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2배,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이 1.7배 높다”고 밝혔다. 



수면 부족은 사람의 성격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잠을 잘 때 깊은 잠과 꿈꾸기를 4~6차례 반복한다. 깊은 잠은 비렘수면(Non-REM)이라고 하고, 꿈잠은 렘수면(REM)이라고 한다. 비렘수면 상태에서 정신과 육체의 긴장과 피로가 풀린다. 렘수면에서는 꿈을 꾸면서 낮에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욕구도 충족된다. 홍승봉 교수는 “전체 수면 시간이 짧아서 꿈잠이 줄면 성격이 난폭해지고 잘 싸우고 감정 조절도 어렵게 된다. 적도 지역에 사는 사람은 밤잠을 오래 자서 성격이 느긋하고 감정을 잘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10명 중 3명 “잠을 잘 못 잔다”
한국갤럽이 2017년 19세 이상 성인 1004명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한국인의 하루 수면 시간은 평균 6시간24분으로 집계됐다. 2013년엔 6시간53분이었다. 잠을 잘 자는 편이라는 사람은 2007년 75%에서 2017년 63%로 줄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사람은 같은 기간 25%에서 34%로 늘었다. 한 번이라도 수면제를 먹은 경험이 있다는 비율이 2007년 10%에서 2017년 15%로 증가했다.



수면 시간이 줄면서 병원을 찾는 사람이 증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2년 35만여 명이던 수면장애 환자는 지난해 51만여 명으로 60%나 증가했다. 수면장애는 잠에 잘 들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면 시간이 부족하거나, 잠을 자다가 중간에 깨거나, 아예 잠을 잘 이루지 못하거나, 충분히 잠을 자고도 낮 동안 각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적정 수면 시간은 어떻게 될까. 미국국립수면재단이 권고하는 수면 시간은 성인 기준으로 7~9시간이다. 이보다 너무 짧거나 오래 자도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건강 유지를 위한 수면의 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자신에게 적당한 수면 시간을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낮에 TV를 시청하거나 지하철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졸리면 잠이 부족하다고 보면 된다. 잠에서 깨고 3~4시간이 지난 후에 뇌 활동이 활발해지는데 그때까지도 몽롱한 상태라면 잠이 부족한 상태다. 또 아침에 알람 소리 없이 자연스럽게 깨야 충분히 잠을 잔 것이다. 



언제 수면클리닉을 방문할까?
◯ 잘 때 코골이가 빈번하다.
◯ 책이나 TV를 볼 때 졸음에 빠진다.
◯ 일이나 운전할 때 졸음과 싸운다.
◯ 자다가 머리가 아파 깬다.
◯ 자다가 숨이 막히거나 질식할 것 같은 느낌으로 깬다.
◯ 아침에 깼을 때 피곤하고 몸의 피로가 안 풀리며 활력이 없다.
◯ 잠에 들기 힘들다.
◯ 수면 중에 자주 깨며 다시 잠들기 어렵다.
◯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다리가 근질거리고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 들어 다리를 가만히 두기가 어렵다.
◯ 잠들기 전, 수면 중 또는 잠에서 막 깼을 때 이상한 행동을 한다.
◯ 꿈속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행동을 한다.
◯ 잠에 있어서 불행하고 실망스럽다.
◯ 함께 자는 사람이 나의 시끄러운 코골이 소리에 불평한다.
◯ 자다가 숨을 멈추거나 숨 쉬기 힘들어 한다.
◯ 밤에 다리를 떨거나 찬다. 
◯ 수면 중에 숨을 오래 멈춘다.
◯ 자다가 벽이나 옆 사람을 때린다.
◯ 수면 문제가 가정생활, 직장 업무, 웰빙에 영향을 준다.
*2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수면장애 가능성이 크므로 수면클리닉을 방문하는 게 좋다.
자료: 삼성서울병원 수면클리닉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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