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공대가 대선 공약 된 내막



"한전工大, 지역票 노린 586과 장관직 탐낸 前한전사장의 합작품"
김홍수 논설위원

[한전공대가 대선 공약 된 내막]

신정훈 민주당 지역위원장이 기획
당시 한전사장 등이 찬성하며 호남권 대선공약으로 급부상
文정부 들어선 100대 국정과제로

한전, 올 상반기에만 9285억 적자… 10년간 1조 넘는 工大투자 버거워
전력설비 확충 등에 쓰이는 산업기금까지 끌어다 쓸수도


     지난달 25일 전남 나주 한전 본사를 찾은 날, 한전 빌딩 주변은 '한전공대' 설립을 재촉하는 플래카드가 가득했다. '경부고속도로 근대 발전 초석, 한전공대 에너지 발전 초석' '대전은 카이스트(KAIST), 대구는 디지스트(DGIST), 나주는 한전공대' '포항공대는 되고, 한전공대는 안 된다니요?'…. 시민들이 한전공대를 이미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도 엿볼 수 있었다. 한 아파트 분양 광고는 "○○하우스 분양, 한전공대 바로 1m 앞"이라면서 한전공대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었다.



현재 전국 주요 대학에 전기공학과가 거의 다 있고,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도 이미 5곳이나 된다. 대학 진학 인구가 급격히 줄어 5년 내 80곳이 폐교할 판인데 새 공대를 만들겠다니…. 여러 전문가가 '난센스'라고 말하는 한전공대 설립안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공식 출발점은 2017년 4월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가 전남 유세에서 한전공대 설립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데 있다.

한전공대 어떻게 민주당 대선 공약 됐나
한전공대 공약의 산파는 386 운동권 출신 지역 정치인, 신정훈 민주당 나주·화순 지역위원장이다. 그는 고려대 재학 시절 1985년 미 문화원 점거 농성을 주도했다가 구속돼 3년간 복역했다. 이후 고향 나주에서 농민운동을 하다 전남 도의원을 거쳐 2002년부터 7년간 나주 시장을 지냈다. 보궐선거로 19대 국회의원직도 2년 남짓 경험한 그는 한전 본사 이전을 계기로 나주를 에너지 산업 메카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산학연 클러스트 조성엔 대학이 필요하다고 봤고, 대학 설립 주체로 한전을 떠올렸다. 2017년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 전남선거본부장이었던 그는 이낙연 당시 전남 도지사와 조환익 한전 사장을 설득했다. 이 지사가 적극 찬동하면서 한전공대 설립은 호남권 주요 공약감으로 급부상했다. 이후 민주당 대선 공약이 되고, 대선 후 100대 국정 과제로 채택된 데는 신 위원장의 운동권 인맥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신 위원장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송영길 의원 등이 적극 지지해 주었다"고 했다.



한전工大 부지 바라보는 文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전남 나주 빛가람전망대에서 한전공대 부지를 살펴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예정대로 2022년에 개교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맨 왼쪽 인사가 한전공대를 처음 제안한 신정훈 민주당 나주·화순지역위원장이다. /연합뉴스

공약화 과정에서 조환익 당시 한전 사장이 보인 처신은 논란거리다. 한전 내부 구성원들과 소통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당시 한전 인사처장이던 이현빈 한전공대 설립단장은 "공약 발표 뉴스를 보고 '한전공대'란 말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조 전 사장은 "이사들과는 개별적으로 의견을 나눴다"고 했지만 당시 한 사외이사는 "반대 의사를 냈지만 묵살당했다. 새 정부에서 산업부 장관이 되고 싶은 욕심에 조 사장이 (호남 정치 세력에) 적극 동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외이사는 "한전공대는 지역 이기주의와 영혼도, 국가관도 없는 관료, 경영자의 합작품"이라고 했다.



한전을 '호구'로 삼는 지역 개발 계획
지역 민심이 한전공대에 집착하는 것은 한전 본사가 있는 빛가람 혁신도시의 현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원래 인구 5만명을 목표로 만든 신도시인데, 실제 유입 인구는 3만명에 그쳤다. 상가 공실률이 70%가 넘을 정도로 상권이 죽어 있다. 나주시로선 한전공대를 중심으로 한 산학연 클러스터 조성이 반전 카드가 될 수 있다. 전남 도시들 간에 한전공대 유치전이 벌어졌는데, 나주시가 최종 승자가 됐다. 부영그룹이 빛가람 혁신도시 내 골프장을 한전공대 부지로 무상 기증한 것이 결정적 요소가 됐다. 신 위원장은 "내가 부영에 (기증안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나주시는 골프장 부지를 포함해 40만평 규모의 산학연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런데 비슷한 개념의 산업단지가 골프장 반경 10㎞ 내에서 이미 두 군데나 조성되고 있다. 한전공대 부지에서 남쪽으로 10㎞ 남짓 떨어진 나주혁신산업단지(54만평)에선 최근 김종갑 한전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에너지밸리 산업단지 캠퍼스' 준공식이 있었다. 지역 대학과 에너지 관련 기업이 연계해 현장 학습과 기술 공동 개발을 도모하고자 만든 산학연 연계 프로젝트다. 한전공대 부지 10㎞ 남짓 북쪽엔 50만평 규모 산업단지 '광주 에너지 밸리'가 조성되고 있다. 모두 '한전'을 믿고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한전의 대응, '정부 지원' 끌어들이기
한전공대가 지역 개발 상징물로선 쓸모가 있을지 모르지만, 국가 차원으로 보면 황당한 프로젝트라는 게 전문가 다수의 견해다. 김도연 전 포스텍 총장은 "아랍에미리트가 세계 유수 공대를 만들겠다고 200억달러(약 20조원)을 쏟아부어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KAUST)을 설립했지만 존재감이 전혀 없다"면서 "우수한 인재가 서울대, KAIST를 놔두고 왜 거기를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한전 이사회 의장을 지낸 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는 "지속 가능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대선 공약에 코가 꿰인 한전으로선 수도공과대의 악몽이 되살아날까 두려워하고 있다. 한전이 1962년 서울 마포에 설립한 수도공과대는 기숙사, 장학금 제공을 내걸어 우수 인재를 유치했는데, 한전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10년을 못 버티고 1971년 홍익대에 통합됐다.

한전으로선 10년간 1조6000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을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전남과 나주시가 10년간 2000억원을 지원한다고 약속했지만, 재정 자립도가 30%도 안 되는 지자체 약속은 미덥지 않다. 그래서 전력 설비 확충, 신재생 에너지 확대 등에 쓰이는 '전력산업 기반 기금'을 넘보고 있다. 소비자들이 내는 전기 요금에서 3.7%를 떼서 적립하는 기금인데, 연 적립금이 4조원가량 된다. 한전은 또 국가 지원을 더 끌어내기 위해 '한전공대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조환익 전 사장도 이제 와선 "한전 재정이 어려운데 2022년 개학, 그렇게 급하게 할 거 있나. 재정 신뢰도를 높이면서 (한전이) 감당이 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무리한 해법을 찾기보다 이제라도 접는 게 정답 아닐까. 김종갑 한전 사장과 이사회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韓電 자금 출연, 박근혜 정권의 미르재단件과 뭐가 다르냐"]

"개인 주주가 있는 민영화된 기업을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도구로 삼는 짓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장병천(60·사진) 한전 소액주주 행동 대표는 정부의 강압 탓에 한전이 공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총리, 성윤모 산업부 장관 등을 '강요죄'로 고소했다. 현재 한전 지분 51%는 정부가, 나머지 49%는 민간이 보유하고 있다. 민간 지분 중 외국인이 60%를 갖고 있고, 국내 개인 투자자 42만명이 10%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 주당 4만3000원이던 한전 주가는 현재 2만9000원대로 떨어져 있다. 주가 하락률이 33%에 이른다. 2018년, 2019년, 2년 연속 주주 배당을 한 푼도 못 했다. 장씨는 "정부가 한전을 지역 표심을 잡기 위한 들러리로 전락시켰다"면서 "한전공대에 돈을 출연시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기업들에 미르재단 출연을 강요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짓"이라고 성토했다.




장씨는 100여 소액주주와 함께 탈원전 정책과 한전공대 설립을 추인하고 전기료 인상을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루고 있는 현 경영진을 '배임죄'로 고소했다. 공정위 앞에서 1인 시위도 했다는 장씨는 "장하성·김상조 전현직 청와대 정책실장은 과거 교수 시절 소액주주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인데 한전 소액주주들의 주주권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장씨는 앞으로 한전 이사들에게 회사에 손실을 끼친 책임을 묻는 소액주주 대표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외국 기관투자자들과 공조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 소송(ISD)을 제기하는 방안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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