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경쟁력 枯死시키는 탈원전 범죄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최근 프랑스 르몽드가 자국 환경부(이산화탄소)와 재정부(예산) 장관이 전력공사(EDF) 의장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2035년까지 6기의 유럽형가압경수로(EPR) 건설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탄소배출 0’ 목표 달성을 위해선 새 원전 6기 건설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전 건설비가 아직 충분히 싸지 않다는 점이다. 플라망빌에 건설하고 있는 EPR는 한 기에 124억 유로(약 16조 원)에 이르며, 앞으로 건설될 몇 기도 75억∼78억 유로(약 10조 원) 안팎이 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 반면, 아랍에미리트(UAE)에 건설하는 우리의 ‘APR1400’은 호기당 5조 원 수준으로 현재 EPR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고, 6기의 추가 EPR와 비교하면 2분의 1 수준이다. 프랑스가 우리나라 원전 기술과 노하우를 내심 부러워할 만한 포인트다. 경제성 측면에서 프랑스의 완패다.




게다가, 프랑스가 EPR의 미국 설계인증을 추진했다가 실패했는데, 우리 APR1400은 미국 설계인증을 마무리했다. 그러니 안전성 측면에서도 프랑스의 완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2009년 UAE 원전 건설을 두고 경쟁할 때 유력 경쟁자 프랑스와 가장 첨예하게 맞붙었던 게 경제성과 안전성이었다. 이번 프랑스의 고백은 2009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완전히 확인된 한국 원자력 기술의 경쟁 우위를 사실상 고백하는 것이다.


지금 프랑스는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원전은 꼭 필요다. 그런데 자국 기술이 경제성을 단기간에 맞추기는 어렵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나 국가적 지원을 통해 이를 극복해 보겠다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환경장관과 재정장관이 EDF 의장에게 공문을 보낸 것은 국가적 지원을 명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한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프랑스의 원전 기술에 비해 안전성과 경제성에서 우위를 확실히 공인받은 2019년 이 시점에 가장 약점이 ‘국가의 의지’가 됐다. 프랑스와 미국이 도저히 이해 못 할 일이 대한민국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수출을 지원한다는 정부는 정작 원자력의 수출과 관련된 낭보에 있어서는 항상 극히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되도록이면 소문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미국이 100기 가까운 원전을 지금도 운영하고 있고, 수백 기의 잠수함과 항공모함용 원전을 만들어오고 있지만, 30년의 공백을 통해 원자력 공급망은 완전히 상실됐다. 해체 기술을 중심으로 세월을 보내온 영국은 이미 원전 기술이 고사(枯死) 상태가 됐다. 비교적 최근까지 건설을 계속해 오던 프랑스조차 사실상 자신들의 어려움을 고백하는 상황이 됐다.




시간은 계속 가고 있다. 이제 2019년도 막바지에 이르렀고, 2020년을 앞두고 있다. 시간은 대한민국 원자력의 편이 아니다. 아무리 강력한 근육을 가진 운동선수라도 석고붕대를 하고 몇 달만 지나면 걸음걸이부터 부자연스럽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탈원전 정책은 멀쩡한 운동선수 두 다리에 덕지덕지 처바른 석고붕대다. 지금이라도 빨리 깨부수자. 현 정부 임기 내에는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던 속임수도 이제는 한전의 적자로 입증돼 더는 통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에 약속한 탄소배출 저감도 이제 곧 공수표로 드러날 것이다. 원자력의 가장 큰 재산인 우수 인력이 벌써 대학에서부터 사라지고 있다. 프랑스가 6기의 원전을 건설 완료할 2035년이면 지금 우리나라 원전의 경제성에 근접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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