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 묻혀도 돋보이는 흰꽃향유. [박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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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 묻혀도 돋보이는 흰꽃향유.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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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꽃향유 (꿀풀과) 학명 Elsholtzia splendens f. albiflora Y.N.Lee

산과 들은 무릇 생명 있는 온갖 만물의 삶의 터전입니다, 언 땅 풀리고, 꽃 피고, 녹음이 우거지는 제각각의 철 따라 신묘한 변화와 수용으로 만물을 껴안고 키워온 산과 들입니다. 이제 가을을 맞이하여, 풀과 나무는 한 해의 다양한 생명 활동을 마무리하고 침잠의 휴식기에 접어들려 합니다. 몰아치는 비바람과 따가운 햇볕 아래 싹 틔우고 꽃 피워 열매를 맺게 했던 이파리들도 이제는 어디론가 떠나야 합니다. 가을을 맞아 꺼져가는 촛불의 마지막 불꽃처럼 화려한 단풍으로 피어올랐던 이파리들입니다. 기울어가는 저녁놀이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듯이 푸르던 잎새가 푸른 산천을 붉게, 노랗게 물들이고 나서 하나둘 낙엽으로 떨어집니다.

단풍이 번져가는 가을은 조락(凋落)의 계절입니다.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인가 싶더니만 만산홍엽의 단풍이 지면서 빈 가지 사이로 드러난 텅 빈 하늘이 점점 커져만 가는 앙상한 계절이 되고 있습니다. 가지 끝 단풍들이 살아왔던 한여름의 기쁨, 사라져가야 하는 작별의 설움, 한데 모아 다양한 빛깔로 색칠한 이별의 순간을 아쉬워하듯 바람결에 바르르 떨다가 빙글빙글 공중제비하며 떨어집니다. 마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지금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언젠가 한 잎 낙엽처럼 떨어져 나갈 날을 기억하며 현존의 의미를 되새겨 보도록 일러주듯이 빛깔로 일깨우고 낙엽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지칠 줄 모르고 피어나던 봄, 여름, 가을의 꽃도 이제는 막장입니다. 찬 서리에 떨며 피어나는 산국, 구절초 등 국화류나 용담류, 향유류 등과 철부지 꽃들이 겨우 보일 뿐입니다. 떨어지는 단풍이 발밑에 밟히는 만추에 꽃을 찾아 나섰습니다. 낙엽이 지는 늦가을에도 만날 수 있는 가을꽃 중의 하나인 흰꽃향유를 만나러 간 것입니다. 꽃향유는 9월에서부터 11월 초까지도 피는 꽃입니다.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 또는 보라색으로 꽃이 피고 줄기와 가지 끝에 한쪽으로 빽빽하게 치우쳐서 꽃이삭이 마치 칫솔 모양으로 달리는 야생화입니다. 주로 중부 이남에 피는 꽃으로 산비탈 한 자리에 무리를 지어 자랍니다. 호젓하고 외딴곳에서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묵묵히 바라보면서 가을이 끝날 즈음, 서릿발이 내려앉을 때까지 피는 꽃입니다. 꿀이 많아 꽃이 부족한 가을에 벌들이 즐겨 찾는 밀원식물이기도 합니다.

꽃향유 중 흰 꽃을 피우는 귀한 종이 흰꽃향유입니다. 작년에 보아두었던 그곳을 찾아가는 마음은 설레기도 하고 염려도 되었습니다. 무사히 잘 자라고 있어 올해도 만날 수 있을는지? 꽃 피는 시기를 잘 맞춰 온 것인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찾아간 그곳에는 기대한 바처럼 소담한 꽃봉오리에 고운 꽃이 한창이었습니다. 몇 사람의 지나간 발자국이 적잖게 있었지만 훼손되지는 않았었습니다. 내년에는 더욱더 튼실한 꽃이 피기를 기원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사진을 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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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섶에 묻힌 들 고움이야 어디 가랴! 흰꽃향유.

야생으로 만날 수 있는 향유류 중에는 향유, 꽃향유, 흰꽃향유, 가는잎향유, 좀향유, 애기향유, 한라향유 등이 있습니다. 꽃향유는 ‘꽃이 아름다운 향유’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국에 분포하는 향유와 모양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향유는 주로 들판에 자라며 꽃향유는 주로 산비탈에 자랍니다. 또한 꽃향유는 향유보다 꽃차례의 길이와 폭이 더욱더 탐스럽고 크며, 꽃 색깔도 훨씬 진하고 화려합니다. 산야에 풀과 꽃들이 시들어 없어진 늦가을에 탐스러운 꽃을 피웁니다. 향이 좋고 꿀이 많아 배고픈 꿀벌에게 꿀을 제공하는 베풂의 꽃이기도 합니다. 민간에서는 풀 전체를 말려 발한, 이뇨에 쓰며 향료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꽃향유와 흰꽃향유는 꽃 색깔이 달라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꽃향유는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 또는 보라색으로 꽃이 핍니다. 무리 지어 피는 범위도 넓고 키도 큽니다. 그러나 흰꽃향유는 맑고 하얀 순백의 꽃을 피웁니다. 크게 무리 짓지 않고 몇몇 개체끼리만 모여 자라며 키도 작아 길섶에 묻히기에 십상입니다. 하지만 맑은 향이 있고 환한 순백의 꽃이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밝게 빛나니 작고 낮은 곳에 자란다 해서 어찌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말 없고 행동 없는 식물의 세계이지만 작고 낮음을 탄하며 아등바등 발돋움질 하지 않아도 흰꽃향유는 본디 곱고, 맑은 향을 지니고 풍부한 꿀까지 베푸니 자연스레 벌, 나비가 빈번하게 찾아옵니다. 길섶에 묻혀도 환히 드러납니다. 꽃이 귀한 늦가을에 피기에 꽃쟁이들로부터도 매우 사랑받는 꽃입니다. 내세울 것 없고 부정직하고 추할수록 더욱 난체하고 위선 떨며 빈 수레처럼 요란하게 나대는 사람보다는 숨은 듯 있어도 인품 있고 정직하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옥이 흙에 묻힌들 옥이 아니겠습니까? 사람 사는 세상도 식물 세계도 자연의 이치는 같기 마련인가 봅니다.

흰꽃향유

화사한 순백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돋보인다.

작고 낮아
발돋움질 아니해도
본디 고움이야 어디 가랴.

언덕배기 흙더미
길섶에 묻혔어도
곱고 맑은 향 있으니
벌, 나비 그칠 새 없다.
나대지 않아도 사랑받는다.

(2019. 11 월 가을 길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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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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