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박물관의 '배우는 해설사'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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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의 '배우는 해설사'  [김종욱]

2019.11.23

1970년 직장생활을 시작해 37년간 근무하고 2007년 3월에 은퇴했습니다. 막상 은퇴하고 보니 ‘백수 과로사’라는 말대로 매우 바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인사동에서 점심을 먹고 귀가하는 길에 조계사 앞거리에서 사경용(寫經用) 법화경 세 권과 붓펜을 사서 불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경은 엷게 인쇄된 불경 위에 덧쓰는 형식인데, 매일 저녁 10시부터 11시 반까지 3페이지씩 쓰면서 잡념과 허전한 마음을 떨치고 불경 공부도 하니 일거양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모임에서 젊은이들에게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 주자는 의견이 나와 2010년 9월 몇 십 명이 ‘CEO 지식나눔’이라는 재능 기부단체로 사단법인을 만들었습니다. 필자는 공동대표 5명 중 한 명이 되어 여러 직장 후배들과 대학생들에게 강의와 멘토링을 했습니다. 특히 출범 초부터 (재)한국장학재단의 의뢰를 받아 해마다 대학생 멘티 8~10명씩 멘토링을 하고 그 후 수년간 약 70여 명의 멘티를 교육했습니다.

그러던 중 경기도문화재단 소속인 실학박물관(남양주시 조안면)이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실학박물관은 다산 유적지 옆에 있는데, 필자는 제2기 봉사자 10명 중 한 명으로 선임돼 2016년 4월부터 매주 금요일에 실학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방배동 집에서 지하철과 버스로 갈아타고 가노라면 2시간~2시간 반이 걸립니다. 왕복 거의 5시간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 박물관은 실학 관련 서적을 20여 권 주면서 공부해 해설하라고 했습니다. 그 책을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때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유명 학자와 저서 이름 정도만 알았다가 막상 공부해 보니 정말 심오했고,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훌륭한 책을 많이 저술했는데 그 내용이 실사회에 적용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그렇게 치욕적이고 비참하게 살았던 시대에, 성리학 주자학을 일종의 허학(虛學)이라고 반성하면서 실질적으로 잘 살아가는 제도와 방법을 연구하는 일종의 ‘르네상스’ 같은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그런 학자들은 연구한 바를 책으로 저술하고 옛날 중국의 학문, 서적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했는데 이를 실학(實學)이라고 일컫습니다.

하지만 실학이라는 사회과학 용어는 당시에는 없었고, 실학의 거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선생이 돌아가신 해로부터 100년이 되는 1936년에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1893~1950) 선생,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 1891~1965) 선생 등이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실학은 비조(鼻祖)로 불리는 반계 유형원(磻溪 柳馨遠 1622~1673) 선생이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저술하고, 같은 시대에 2대에 해당하는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29∼1690) 선생이 ‘성호사설(星湖僿說)’을 저술하면서 발전했는데, 3대에 해당하는 다산 정약용선생이 이를 집대성했습니다.

박물관 근무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입니다. 매일 오전 11시, 오후 1시 30분, 3시 정규 해설시간에 40분~1시간 해설을 합니다. 부탁하는 사람이 있으면 수시로 더 해설을 합니다. 월요일은 휴무이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에 2~3명씩 각자 편한 날을 정해 해설하는데, 관람객이 많은 주말에는 3~4명이 봉사합니다. 봄과 가을철엔 매우 붐빕니다. 가끔 공무원들, 주로 경기도 소속 교육공무원들의 단체 관람으로 70~80명이 오는 경우 두 사람이 절반씩 나누어 맡기도 합니다. 제일 어려운 관람객은 역시 초등학생들입니다. 뿔뿔이 흩어지고 떠들고 뛰고 하여 매우 힘이 듭니다.

저보다 1년 먼저 봉사를 시작한 1기 팀에는 다른 박물관에서 이미 해설을 해본 분도 있고, 국제협력단(KOICA)에 적을 두고 몇 달씩 아프리카나 중남미 같은 곳에 가서 영농법을 가르치고 오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 2기 팀에는 초등학교 교장 은퇴자, 대학교수, 고가구 전문 판매업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깊은 역사 지식을 갖춘 분 등 다양한 분들이 봉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점심 식사는 도시락을 싸 오는 분도 있지만, 박물관에서 라면과 햇반 등을 준비해두고 간식까지 챙겨주어 불편은 없습니다. 좋은 점은 점심식사 후 근처를 30~40분 산책하는 것입니다. 길도 아름답지만 다산 선생 관련 서적 등 이론을 아름답게 꾸며서 길가나 바닥에 장식해 놓은 것이 볼 만합니다. 그리고 가끔 실학 관련 신간서적이 나오면 한 권씩 얻기도 하고, 연구발표회가 있을 때 좋은 자료도 받습니다.

조금 피곤하고 개인적으로 금요일 약속을 못 하는 게 불편하지만, 이 나이에 공부하면서 남에게 봉사한다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함께 봉사하는 분들과 좋은 인연을 맺으며 삶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도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남을 가르친다거나 해설해 주는 것은 결국 자기공부입니다. 해설 봉사를 하면서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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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종욱        

1945년 서울 출생. 서울대 무역학과 졸. 한일은행 입행, 도쿄·런던·싱가포르지점 근무. 이후 부행장, 우리은행 수석부행장, 우리증권 사장, 우리투자증권 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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