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와 봉투 들고 산에 가는 청년들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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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와 봉투 들고 산에 가는 청년들

2019.11.19

며칠 전 친구들끼리 서울 우면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11월의 산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갑니다. 도심에 있으면 못 느끼는 계절의 변화가 산에서는 눈으로 귀로 촉감으로 달려듭니다. 낙엽이 쌓인 산길을 걷는 맛은 상쾌하면서도 허전합니다.

잡담을 나누며 낙엽송 숲길을 걷는데 앞에 15명가량의 남녀 청년들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면산 둘레길에서는 주로 나이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청년들이 한 줄로 늘어서 걸어가니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유심히 보니 그들은 일반 산행객과 달랐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집게 또는 비닐봉투가 하나씩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길을 걸으며 쓰레기가 보이면 가시덤불 속이라도 들어가 이를 집게로 집어 올려 봉지에 담고는 또 걸어가곤 했습니다.
그들은 걸음이 빨랐지만 동료가 쓰레기를 줍는 동안은 기다렸다가 또 걷곤 했습니다. 평범한 산행을 하는 우리들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한창 걸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들이 한참 뒤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쉬는 장소에는 주변에 쓰레기가 많이 널려 있어서 그걸 줍느라고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구청의 알바로 돈 받고 쓰레기 줍는 사람들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자세를 보니 그런 것 같지 않아서 제일 뒤에 봉투를 들고 가는 한 청년을 세우고 물어보았습니다.
“어디서 나와 청소하는 거죠?”
“우린 클린산행 팀입니다.”
“그럼 학생인가요?”
“아닙니다. 직장인들입니다.”
“어느 회사죠?”
“한 직장이 아니라 여러 직장 사람들이 모여서 쓰레기 수거합니다. 저도 오늘 처음 나와본 겁니다.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직장이 다르고 전혀 모르는 청년들이 산에서 만나 쓰레기를 줍는다니 가슴이 찌릿했습니다. 산이 맑아지고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그 청년에게 질문할 필요 없이 그들의 정체를 기분 좋게 상상해보았습니다. 아마 그들은 ‘오늘은 어느 산길을 청소할까, 어디서 만날까' 등 필요한 정보를 SNS를 통해 소통하며 봉사활동을 벌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원해서 쓰레기를 줍는 아름다운 청년들이었습니다. 아마 그런 클린산행 팀이 전국의 산야 곳곳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청년들이 있어 한국은 깨끗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산만 아니라 사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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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린산행에 나온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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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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