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0년' 후의 日 건설산업


'잃어버린 20년' 후의 日 건설산업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우리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많다. 올해 들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대로 낮게 전망하는 기관이 많아지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 수준이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과거의 일본처럼 저성장과 저물가 추세가 고착화되면서 디플레이션에 빠지게 되면 우리도 '잃어버린 10년 내지 20년'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2012년부터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시행한 이후 외견상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어떤지 궁금하던 차에 지난달 말 해마다 한 번씩 한일 양국의 건설연구기관들이 번갈아 개최하는 '한ㆍ일 건설경제 워크숍'에 참석했다. 일본 건설경제연구소(RICE)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일본 건설산업도 여러 면에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건설투자는 20년 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2000년 66조2000억엔이던 건설투자는 2010년 41조9000억엔으로 줄었다가 아베노믹스 이후 크게 늘어나 올해 62조2000억엔으로, 2020년에는 62조7000억엔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공공 건설투자나 민간주택 착공 실적은 20년 전보다 30%가량 줄어들었다. 하지만 민간 비주택투자는 아베노믹스 이후 급증해 20년 전보다 10%가량 늘었다. 건설경기 회복에 따라 일본 건설업체들의 수주 실적이 늘었지만 특히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을 주도한 대형 건설업체들의 영업이익은 놀라울 정도로 급등했다. 해외 건설 수주실적도 2009년 6970억엔에서 지난해 1조9380억엔으로 10년 만에 2.8배로 늘었다.




일본의 건설 정책과 제도는 우리와 유사한 면이 많다. 오랫동안 우리가 일본을 모방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특히 최근의 흐름은 우리와 다르다. 과거와 달리 일본은 더 이상 '국토 균형 발전'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보다는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 경쟁력 확보'에 정책 역량을 쏟고 있다. 또한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 이후의 일본 건설시장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국토 강인화 계획이나 노후 인프라 대책 및 재난 방지 대책 등을 수립해 중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확정해뒀다. 이러한 일본의 계획은 사전에 집행 기관과의 충분한 조율을 통해 실행 방안 등을 확정한 뒤에 발표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계획대로 추진된다고 한다. 한국은 최고위층의 이념이나 의지가 반영된 추상적인 계획을 발표한 다음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집행 기관과 협의하는 식이 아니냐는 낯 뜨거운 지적도 들었다.


건설기능인력 부족에 대한 대책으로 우리의 '건설기능인등급제'와 유사한 '경력향상시스템' 도입도 추진하고 있는데 그 방식도 우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입법을 통한 강제가 아니라 직종별 단체와 협의해 직종별로 등급 기준을 만들고 정부의 승인을 받아 올해 4월부터 시행 중이다. 등급을 나누는 기준에는 경력 외에 자격 및 감독자로서의 경력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는 데 반해 우리는 사실상 경력 중심이다. 최근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는 '정부가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일본화의 진정한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인식을 반영하듯 일본의 건설 정책에는 'i-construction'을 비롯한 생산성 향상 대책도 많다.




거시 경제만이 아니라 우리 건설시장에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초입에 들어선 듯한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지표가 많다. 우리는 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일본과 다른 정책이 필요하다. 일본이 여전히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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