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도 아니요 나무도 아닌 것 같은 층꽃나무 [박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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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도 아니요 나무도 아닌 것 같은 층꽃나무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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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층꽃나무 (마편초과), 학명 Caryopteris incana

황금빛 들녘에 내려앉은 석양빛이 고왔습니다. 차창에 스치는 풍요로운 가을 들판에 마음마저 넉넉하던 가을이었습니다. 일렁이는 황금 물결 속을 헤집듯 함평 천지를 지나 무안, 신안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봄부터 애써 가꾼 작물은 영글어 가고 한여름 우긋한 숲 더미에 숨어 있던 코스모스, 쑥부쟁이, 산국 등이 풍요로운 가을을 맞아 꽃과 향으로 들판을 메꾸었고 풍요와 화려함이 곳곳에 넘쳐나고 돋보였습니다.

웅장하고 장엄한 천사대교를 지났습니다. 국내 최초로 사장교와 현수교를 동시에 배치한 천사대교의 길이는 10.8㎞입니다. 올해 4월 4일 개통한 지 일주일 후에 이 다리를 지나 암태도, 자은도에 꽃 탐방을 다녀왔는데 가을에 다시 이 다리를 지나 팔금도, 안좌도에 꽃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연륙교인 천사대교가 있기 이전에 이미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등 신안군 주요 섬과 섬은 연도교(連島矯)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전남의 신안군은 1,004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어 ‘천사의 섬’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따뜻한 남쪽 지방의 이 섬들에는 각기 독특한 지형과 환경 속에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늦은 가을 이후에도 이 지역을 찾으면 꽃구경이 가능한 곳입니다. 천사대교가 개통되어 교통도 한결 편리해졌습니다.

파란 바다로 둘러싸인 신안군 팔금도 채일봉을 오르는 길에 눈길을 사로잡는 꽃이 있었습니다. 섬을 에워싸고 있는 맑고 깨끗한 바다 물빛을 흠뻑 들이킨 것처럼 파란빛을 띤 연보랏빛 꽃송이를 줄기 마디마다 층층이 매달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피어있는 꽃 무더기 사이로 벌들이 분주히 날고 있었습니다. 꿀을 많이 간직한 밀원식물 중 하나로 벌과 나비 등 여러 곤충을 끌어 모으는 꽃입니다. 또한, 무리 지어 피는 꽃의 색깔이 곱고 탐스러워 지나는 사람의 눈길도 끌어 모으는 매혹적인 꽃입니다. 풀처럼 보일 뿐 나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층꽃나무였습니다. 풀처럼 보이는 풀이 아닌 나무, 이것이 층꽃나무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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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기에 층층이 달린 층꽃나무 꽃송이

층꽃나무는 마편초과의 나무로 남부지방 해안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마주난 잎과 가지 사이에 층층이 꽃을 피워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봄에 새 줄기와 잎이 자라 취산꽃차례를 이루어 꽃이 피는 1m 이하의 작은 식물입니다. 추위에 약해 중부 이북에서는 자라지 않습니다. 남부지방에서도 밑부분만 목질일 뿐, 윗부분이 풀처럼 겨울에 말라 죽어서 풀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층꽃풀이라고도 하며 생약명은 난향초(蘭香草), 야선초(野仙草)라고도 합니다. 어쨌건 풀꽃처럼 보이지만 분류학에서는 관목으로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풀도 아닌, 나무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층꽃나무는 유명한 조선 중기의 시선(詩仙) 윤선도(1587~1671)의 오우가(五友歌)를 생각나게 하는 꽃입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나무인들 어떠하고 풀인들 어떠합니까? 층꽃나무는 층을 이루어 피는 소담하고 화사한 모습이 아름다워 일찍이 관상용으로 여러 품종이 개발되어 정원이나 길가 화단에 많이 심는 꽃입니다. 청명한 가을 산길에서 벌, 나비뿐만 아니라 지나는 산행객의 마음마저 사로잡고 발길을 멈추게 하는 꽃입니다.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것 같은’, 중간에 있는 식물이 여럿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나름의 지혜로 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런 차별 없이 나무와 풀이 함께 어울리는 숲속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이루며 종족을 보존,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사람도 자연 세계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중간이 설 수 있는 사회, 서로를 존중해 주는 사회가 필요합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오직 자기만의 기준으로 편을 갈라 옳고 그름, 선과 악, 흑과 백으로 구분 짓는 추세가 갈수록 우심해 가고 있어 보입니다. 내 편은 옳고 다른 편은 그르고, 내 편은 선이고 다른 편은 악, 오직 흑과 백으로 딱 갈라져 가고만 있습니다. 중간은 설 땅이 없어 보입니다. 막무가내로 내 편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오직 나의 편만 있고 나의 편이 아니면 적입니다. 세상에는 흑(黑)과 백(白)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흑과 백 사이에는 회색도 있지만, 더 알고 보면 빨,주,노,초,파,남,보와 같은 찬란한 무지갯빛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람 세상도 그러합니다. 그런데도 오직 내 편이면 선이며 옳고, 내 편이 아니면 악이며 그르다는 추세로 흐르는 우리 사회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2019. 11 월 층꽃나무를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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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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