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유럽은 왜 다시 쌓으려 하나/ 독일정부, 베를린 장벽 지하터널 공개 VIDEO: Germany: Escape tunnel under Berlin Wall opens to public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유럽이 다시 장벽을 쌓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터 볼 BBC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30년이다. 베를린 장벽은 냉전 기간 중 동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이 서유럽으로 이동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워졌다.


장벽이 사라진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엔 수백 킬로미터의 새로운 장벽이 다시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다. 예전처럼 사람들의 이동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이민자 아동의 비극 미국 이민 정책 전환점 될까?

헝가리 총리 '4명 이상 아이 낳으면 평생 소득세 없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독일정부, 베를린 장벽 지하터널 공개


 

Germany: Escape tunnel under Berlin Wall opens to public

A tunnel underneath the Berlin Wall has opened to the public for the first time amid celebrations to mark the 30th anniversary of the fall of the wall. The tunnel was built to help East Germans escape to the West.


Escape tunnel under the Berlin Wall (picture-alliance/AP Photo/M. Schreiber)

An escape tunnel underneath the Berlin Wall opened on Thursday for the first time as Germany commemorates the 30-year anniversary of the fall of the Wall.


The tunnel is located near Berlin's main wall memorial at Bernauer Strasse. Berlin Mayor Michael Müller officially opened the 100-meter (328-foot) tunnel, thanking those who built it.


 


"It's great to see that the battle for freedom was also taken underground," said Müller, who also toured the exhibit that accompanies the escape route. "One can authentically experience the courage of the women and men who tried to take people to freedom and resisted the East German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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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성벽'은 이민에 대한 유럽인들의 불쾌한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의료 자원 단체 MSE에 따르면 이 장벽은 유럽으로 오려는 이민자들이 바다에서 죽거나 고통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민의 인도주의적 측면보다는 정치, 경제적인 면에 더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이민에 대한 유럽인들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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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진 대륙

2차 세계 대전 후 유럽은 공산주의의 동유럽과 자본주의의 서유럽으로 나눠졌다.


동유럽 국가들이 연방을 이루며 급격하게 권위적으로 바뀌었고, 그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고국을 떠났다. 1940년부터 1961년 사이 270만명이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이주했다.


베를린 장벽에는 장벽 뿐 아니라 지뢰밭과 무장 경비가 동원됐다




그러자 소련은 엄격한 국경 통제 정책을 실시했다. 전기 철조망과 지뢰, 무장 경비를 동원해 서유럽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막았다.


냉전 시대 막바지에 영국의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는 동유럽 연방 국가들이 "자유를 향한 비행을 막으려는 절박한 시도에서 야만성과 무자비함을 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1961년 세워진 베를린 장벽은 그 중심에 있었다. 독일의 역사적인 수도의 심장을 1961년부터 갈라놨다.


2017년 베를린 자유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262명의 사람들이 이 장벽을 넘으려다 사망했다.


장벽의 일부는 이곳을 넘으려다 사망한 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다


따뜻한 환영

동유럽 연방에서 온 이민자들은 서유럽 국가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기 위한 잔인한 방법을 저주했다.


서유럽 국가의 정부들이 이민을 막는 장벽 건설에 반대한 건 당연했다. 그러나 이 태도는 오래 가지 않았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공산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나라를 떠나는 것은 동유럽 국가들에 있어 정치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베를린 장벽의 권위주의적인 동유럽 연방의 상징이 되었다




동시에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매우 낮은 실업률을 보였다. 이민은 당시 국가들이 겪고 있던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다.


영국은 세계 2차 대전 직후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해 동유럽인들이 영국으로 올 수 있도록 이민을 돕는 정부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 서독은 급격히 감소한 이민자 수를 대체할 방안을 모색했고, 터키와 모로코 등의 국가와 협정을 맺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렇게 통제된 노동 공급은 서유럽 내 정치인들을 만족시켰다. 대규모 이민을 막으려는 동유럽 연방을 비난할 수 있고, 동유럽 국경을 넘어 오는 이민자들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럽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상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동유럽 연방은 무너져 내렸고 과거 공산주의였던 많은 국가들은 현재 대다수의 서유럽 국가들과 함께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됐다.


그러나 대규모 이민에 대한 태도는 매우 다르다.


유럽연합은 수천 킬로미터의 장벽을 새로 세웠다


유럽 내 사람의 이동은 쉬운 반면, 유럽연합 외부와의 장벽은 강화되고 있다. 흡사 '유럽 성벽'이라고 불리는 정책이다.


유럽연합 국경 보호의 대부분은 남부에 집중돼 있다. 이는 아프리카, 중동, 그리고 아시아에서 오는 이민의 주요 경로다.


헝가리는 세르비아와의 국경에 115km에 이르는 이중 장벽을 세웠다. 경보기와 열감지 카메라도 설치했다.

불가리아는 터키와의 국경에 260km의 장벽을 세웠다.


 

유럽연합의 정책은 일명 '유럽 성벽'으로 불린다




아프리카 북부에서 유럽으로 오기 위해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는 이민자들은 검문 후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트레지셔널 인스티튜트와 같은 압력 단체는 이를 '바다 장벽'이라고 부른다. 이 경로의 최종 목적지는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이다.


장벽은 유럽연합의 최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민자들이 유럽 깊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통제는 계속된다.


헝가리는 크로아티아와의 국경에 300km에 이르는 장벽을 세웠다. 오스트리아는 슬로베니아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웠고,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와의 사이에 장벽을 세웠다.


의료자원단체 MSF에 따르면, 유럽연합의 이민 통제와 국경 보호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야기하고 있다.


더 이상 환영하지 못하다

유럽연합의 이민에 태도가 바뀌면서 강력한 통제가 시작됐다.

이전에는 동유럽의 제재에 맞서 이동의 자유를 지지하며 정치적으로 이득을 봤다.


 

베를린 장벽은 동유럽 연방의 수치였다


그러나 2015년, 이민은 백해무익한 이슈가 됐다. 수백, 수천명의 이민자들이 유럽으로 몰려 왔고 그 해 10월에만 220만명의 이민자가 건너왔다.


유럽 전체에 이민과 이민자들을 반대하는 정책을 내세운 극우 정당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많은 정당들도 노선을 변경했다.


2008년 시작된 경제 위기 이후, 유럽의 경제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고 2차 대전 후 고성장 저실업은 이제 먼 기억이 됐다.


유럽연합의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폭력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이민 인구를 분산시키려던 유럽연합의 시도는 각 국가가 얼마나 많은 수를 받아야 하는지 언쟁만 벌이다가 실패했다.


벽을 세우다

대신 유럽은 이민자를 막기 위한 장벽을 세웠다. 2017년 1월, 이민자는 7천명에 그쳤다.


냉전 시대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에서 오는 이민자를 지지하던 인도주의적 논쟁은 눈에 띌 정도로 사라졌다. 오히려 최근 들어 이민자들이 더욱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말이다.


2015년, 시리아에서 온 33%의 사람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15%의 사람들, 이라크에서 온 6%의 사람들 등은 모두 수천, 수백만의 생명이 희생된, 피 흘리는 내전 국가들이다.


유럽연합은 터키 국경 밖에 이민자들의 숙소 건립 비용으로 33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동의했다


그러나 이들의 사정은 수십 년 전 동유럽 연방에서 왔던 사람들만큼이나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이유는 아마도 이민자들의 신원 때문일 것이다.


헝가리계 역사학자 귀스타브 케체스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냉전이라는 상황에서 난민 문제는 중요한 이슈였다"면서 "소비에트 연방을 떠나는 난민은 서방 세계에 우월감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난민 대부분은 유럽 기독교인들로, 대체로 젊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당시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반공산주의자'였다. 즉, 난민들은 자신들이 피난오려는 나라의 이데올로기와 부합했다.


하지만 현재 난민들의 상황은 보다 복잡하다. 미숙련자와 전문직 종사자, 도시 출신과 시골 출신, 시리아인, 이라크인, 아프간인, 성인과 어린이들 모두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을 피해 전혀 다른 세계에 도착한다. 이들이 향하는 국가는 자신들과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전혀 다른 곳이다. 바로 이런 점을 극우 정당들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유럽연합은 정치적으로도, 현실적으로 많은 수의 난민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터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 인구를 받았는데, 시리아에서 360만명의 난민을 받았다. 유럽 국가 중 가장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독일의 110만명보다 휠씬 많은 수치다.


독일은 터키보다 인구는 조금 더 많으면서 4배 더 큰 경제 규모를 가졌다. 하지만 터키의 3분의 1 수준에 해당하는 난민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수다. 영국은 오직 12만 6천명의 난민을 받았다.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오려다 매년 수천 만명이 사망한다


유럽연합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난민 위기에 처해 있다'며 "72만명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했으며, 이는 호주, 캐나다, 미국의 난민 수보다 세 배나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엔에 따르면 유럽연합의 정책은 외부 장벽을 세워 고문, 성폭행, 심각한 폭력과 같은 위험에 노출된 이민자들의 인권을 위험에 빠뜨렸다.


이러한 평가는 1989년 당시 공산주의 정권 붕괴 후, 서유럽이 자신들을 관용과 자유의 '횃불'이라 여기며 유럽을 사로잡았던 낙관주의에 대한 큰 울림이다.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033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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