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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설과 날조와 왜곡

2019.11.07

가짜가 난무합니다. 낭설, 날조, 사실을 왜곡한 글이 갖가지 경로로 유포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왜 이런 걸 지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들어서 흐뭇한 우정, 널리 알리고 싶은 선행, 대중의 입맛에 맞는 에피소드는 무조건 의심부터 합니다. 칼럼, 블로그, 카톡에 글을 쓰거나 옮기는 사람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아래 사례 중 일부는 이미 글로 언급한 바 있지만, 한 묶음으로 모아야 사실을 밝히는 데 더 힘이 있을 것 같아서 종합했습니다.

1) 구노의 ‘아베 마리아’와 조선 순교신부
‘아베 마리아’는 슈베르트와 샤를 구노의 작품이 유명합니다. 그런데 구노가 이 곡을 조선에서 순교한 친구를 애도하기 위해 작곡했다는 글이 떠다닙니다. 파리 외방선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의 급우였던 친구가 나중에 신부가 되어 활동하다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하면서 울면서 작곡한 게 ‘아베 마리아’라는 겁니다. 그 친구가 다블뤼 주교다, 앵베르 주교다 등의 설왕설래가 이어지자 사제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글을 쓰기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낭설이 퍼지고 있습니다.

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307622

앵베르 등 프랑스 신부 3명은 1836년(헌종 2년) 입국해 포교하다가 3년 뒤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처형됐습니다. 1845년 입국한 다블뤼(Daveluy, 安敦伊) 신부는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순교한 조선 교구장 베르뇌 주교에 이어 5대 교구장이 됐지만 그도 곧 순교했습니다.

구노가 이 곡을 작곡한 것은 1853년입니다. 다블뤼를 위해 작곡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앵베르 주교의 생몰연도는 1797~1839, 구노는 1818~1893.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구노의‘아베 마리아’는 순교와 무관하며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BWV 846 중 전주곡 1번에 가락을 붙인 것입니다. 처음엔 가사가 없다가 1859년에 지금의 라틴어 성모송 가사를 갖추게 됐습니다.

2) 밀레와 장 자크 루소의 아름다운 우정?
'만종(晩鐘)’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가 생활고에 허덕이던 무명 시절에, 친구인 장 자크 루소가 도왔다는 글이 퍼지고 있습니다. 루소는 '에밀' '사회계약론' 등으로 유명한 사상가입니다. 그는 자기가 아는 화랑이 그림을 사달라며 맡겼다는 선금 300프랑을 밀레에게 건네고 작품을 가져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그림이 루소의 집에 걸려 있었다는 거지요. 그러나 루소는 밀레보다 100년 전 사람이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장 자크 루소:1712~1778, 밀레:1814~1875.

이 미담의 주인공은 그 루소가 아니라 밀레의 친구인 화가 테오도르 루소(1812~1867)입니다. 그가 산 작품은 '접목하는 농부'(1850)이며, 루소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밀레는 그의 무덤 곁에 묻혔습니다. 장 자크 루소가 유명하다 보니 테오도르 루소는 죽어서도 불의의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3)이순신과 와키자카 야스하루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에게 3전 3패한 뒤 구사일생한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1544~1626)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하고 싶은 사람도 바로 이순신이다.”

전시회나 강연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 말인데,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본인이 일기에 썼다지만 ‘脇坂記’에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한국에 그런 말이 떠돌고 있다, 웃긴다는 말만 일본 인터넷에 떠돌고 있습니다.

4) 이순신과 원균이 동네 친구?
이순신과 원균이 한동네 친구였는데, 나중에 원수가 됐다는 낭설은 KBS 1TV의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2004. 9.4~2005. 8.28. 총 104회)된 이후 확산됐습니다. 이순신은 서울 건천동(乾川洞, 지금 중구 인현동), 원균은 충청도 진위군 여방면 내리(현재 경기 평택시 도일동 내리마을) 태생이니 어불성설입니다. 원균의 묘소도 그곳에 있습니다. 나이도 원균이 다섯 살 많습니다. 이순신: 1545~1598, 원균: 1540~1597.

김탁환의 소설 ‘불멸’(1998, 뒤에 ‘불멸의 이순신’으로 개작)이 원작인 이 드라마에는 거북선 침몰, 이순신과 선조의 독대 등 사실(史實)이 아닌 게 많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대결하는 것으로 나온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그 전투에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https://namu.wiki/w/%EB%B6%88%EB%A9%B8%EC%9D%98%20%EC%9D%B4%EC%88%9C%EC%8B%A0

5) 아베 노부유키가 남겼다는 말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1875~1953)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중략)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이 말을 “한국인들이여 각성하라”며
칼럼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511092122275
이나 SNS로 인용하는 이들이 많고, 성(姓)이 다른데도 그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할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아베 노부유키는 저서나 유언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래와 같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패전국 총독으로서 (중략) 일본인들을 무사히 귀국시킬 책임이 있었던 아베는, 책임을 다하지 않고 아내와 손자 2명과 함께 부산에서 80톤짜리 배를 타고 일본으로 탈출하였다. 그러나 폭풍으로 인해 돌아가는 해프닝을 연출하면서 조선 거류 일본인들의 반감을 샀다. 9월 9일 인천에 상륙한 연합국 대표 하지 중장 앞에서 아베는 항복 문서에 서명하였고, 미군의 명령으로 9월 12일 일본으로 퇴거하였다.

다음은 아베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칼럼.

http://slownews.kr/46898

6) 김수환 추기경의 시라는 ‘우산’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우산이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이런 내용의 긴 시 ‘우산’은 김수환 추기경이 쓴 게 아니라 시인 양광모의 작품으로, 시집 ‘나는 왜 수평으로 떨어지는가’에 실려 있습니다. 아래 글 참고.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55329&memberNo=11466887&vType=VERTICAL

7) 소위 타고르의 '코리아' 시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될지니

인도의 노벨상 수상(1913)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1861~1941)가 한국을 위해 영어로 쓴 이 시는 원문과 주요한(朱耀翰)의 번역이 1929년 4월 2일자 동아일보 1면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타고르 시집 ‘기탄잘리’의 35번 째 시를 변조한 내용이 덧붙여져 유포되고 있습니다. 이 아래가 다 가짜입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 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8) 윤동주의 작품으로 알려진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올가을에도 어김없이 윤동주의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는 시입니다. 언론인, 교수, 지명도 높은 시인까지 인용해 글을 쓰고 있지만, 윤동주의 시가 아닙니다. 윤동주의 작품으로 알려져 작곡된 ‘편지’도 그와 무관합니다. 아래 글 참고.

https://blog.naver.com/onnom/20195267563

https://blog.naver.com/sppecu365/140197717881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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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한국기자상, 위암 장지연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손들지 않는 기자들‘,‘1개월 인턴기자와 40년 저널리스트가 만나다(전자책)’,‘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마르지 않는 붓'(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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