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과 벌칙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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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과 벌칙

2019.11.05

지난달 27일(우리 시간으로는 28일) 미국 워싱턴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프로야구팀 워싱턴의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5차전 경기 도중 홈팀을 응원하던 세 명의 여성팬들이 쫓겨났습니다. 몸을 너무 드러내 야한 응원(?)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홈플레이트 바로 뒤쪽에서 1루 방향 스탠드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원정팀 휴스턴은 에이스 게릿 콜이 6회까지 위력적인 피칭으로 워싱턴의 타선을 꽁꽁 묶어 4-0으로 앞서고 있었지요. 7회 말 반격에서 워싱턴의 4번타자 후안 소토가 솔로 홈런을 날려 4-1로 따라붙었습니다. 이어서 라이언 짐머맨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투수 콜이 홈플레이트의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고, 또 타자의 움직임을 응시하는 시야 한복판에서 돌연 세 명의 미녀가 티셔츠를 훌렁 들어올려 젖가슴을 내보인 것입니다. 이 장면은 국내 중계 TV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미국에선 FOX TV로 생생하게 중계되었답니다.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은 즉각 스포츠팬 행위규범(行爲規範, code of conduct) 위반이라며 이 미녀들을 퇴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무기한 MLB 야구장 및 관련 시설 출입을 금한다는 벌칙을 통보했습니다.

게릿 콜이 당시 이 미녀들의 플래시 장면을 보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7이닝 동안 9개의 삼진을 잡으며 7-1 대승을 이끌어 휴스턴에 3승2패의 우위를 안겨주었습니다. 콜이 설령 그들의 젖가슴을 보고 잠시 흔들렸다 하더라도 홈팀을 위한 갸륵한 응원에 오히려 감동하지 않았을까요.(그런데 세 미녀가 모두 온라인 영상 공유 앱인 인스타그램의 모델이었다는군요. 그러니 그들의 플래시가 응원이었던지 광고였던지도 의심스럽습니다.)

휴스턴으로 옮겨 벌어진 6차전에서는 워싱턴의 데이브 마르티네스 감독이 퇴장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워싱턴이 3-2로 역전 리드한 가운데 벌어진 7회초 공격에서였습니다. 노아웃 1루에서 트레아 터너의 빗맞은 타구를 잡은 휴스턴 투수 브래드 피콕이 1루수 율리 구리엘에게 볼을 던졌습니다. 순간 1루로 질주하던 터너가 1루수 글러브와 부딪치며 볼은 라이트 쪽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샘 홀브룩 구심은 수비방해라고 판단, (스리피트라인)아웃을 선언했습니다. 내내 용인되어온 주루(走壘)였는데 전례 없이 아웃 판정이 내려진 데 흥분해 마르티네스 감독이 거친 항의를 계속하다가 결국 구심으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았습니다.

메이저리그는 류현진(LA), 추신수(텍사스), 최지만(탬파베이), 강정호(피츠버그)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기에 전혀 남의 동네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애석하게도 디비전시리즈에서 LA는 워싱턴에, 탬파베이는 휴스턴에 각기 2승3패로 져 탈락했고, 피츠버그는 NL 중부지구 5위에 그쳤습니다.

올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은 시작부터 이상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워싱턴은 93승69패(승률 0.574), NL 동부 2위로 간신히 턱걸이한 팀입니다. 그런데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밀워키 브루어스에 4-3, 디비전시리즈에서 LA 다저스에 3승2패로 연거푸 역전 승리했습니다.

워싱턴이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의외로 4연승,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여전히 우승을 점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상대가 107승55패(승률 0.660)로 올해 최고 성적을 올린 휴스턴 어스트로스였으니까요. 휴스턴은 뉴욕 양키스를 4승2패로 물리치고 AL 챔프가 되었으며, 불과 2년 전 월드 챔피언에 올랐던 최강팀이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홈팀이 모조리 안마당에서 무너지는 혼전 속에 워싱턴은 최종 7차전에서 6-2로 승리, 종합 4승3패로 첫 월드 챔피언의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정론신문으로 잘 알려진 워싱턴포스트조차 홈페이지 머리에 오랫동안 “At last, Nats are champs“라고 굵직한 타이틀을 붙여 놓았습니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반칙에 대한 규제가 엄격합니다.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스포츠가 아니라 무법천지의 살벌한 투쟁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반칙에 대한 규제가 플레이 그라운드 안에 국한되는 것도 아닙니다. 벤치·덕아웃의 코칭스태프, 스탠드의 관중에게도 벌칙이 가해집니다. 특정 관중을 지목할 수 없을 때에는 홈팀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최근 불가리아협회에 UEFA 주관 두 차례 A매치 홈경기의 무관중 개최와 벌금 8만5천 유로(약 1억1천만 원)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지난달 14일 소피아에서 열린 2020년 유럽선수권대회 예선전에서 불가리아 홈팬들이 잉글랜드 흑인 선수들을 비하하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등 인종차별적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UEFA는 지난 5월에도 같은 이유로 몬테네그로협회에 2만 유로(약 2천600만 원)의 벌금과 ‘무관중 경기’의 징계를 내렸었습니다. 그 바람에 두 협회 모두 엄청난 재정 손실을 안게 되었습니다.

징계 없이 스스로 무관중 경기를 벌인 해괴한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바로 지난달 15일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입니다. 관중뿐만 아니라 중계나 취재도 없었습니다. 남북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만 쏟아진 가운데 0-0으로 비겼습니다. 그래서 ‘3무 경기’ ‘깜깜이 경기’라는 비난과 야유를 받았습니다.

그 경기를 참관했던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역사적인 경기에 팬들이 전혀 없어 실망했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FIFA의 소명이 축구를 전 세계에 보급하고 홍보하는 일임을 생각하면 참 한심한 소리입니다.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경기 관전 권리와 언론의 취재 권리를 위해 FIFA가 더 강력한 소리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FIFA가 앞으로 북한에 어떤 조처를 취할지 궁금합니다.

FIFA에 한 발 앞서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이달 초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 결승전 개최권을 박탈, 상하이에서 열도록 조처했습니다. 평양이 방송 중계와 후원사 참여 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격한 충돌이 빚어지는 축구 경기에서는 특히 페어플레이가 강조됩니다. 국제경기에서는 양팀 국기에 앞서 페이플레이 깃발이 먼저 입장합니다. 주심은 호루라기와 함께 보안관의 쌍권총처럼 주머니 속에 노랑, 빨강, 두 개의 카드를 지니고 달립니다. 반칙에는 반드시 벌칙으로 응징합니다.

우리 사회도 꽤 오래전부터 “기회의 평등, 공정한 절차, 정의로운 결과”를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권력을 쥔 자들의 독선과 전횡, 불공정한 이익 추구는 변함없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좀 더하냐 덜하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반칙과 벌칙도 적대세력에게만 해당되는 용어일 뿐입니다. 악덕한 인간들의 억압과 착취에 봉기해 동물농장을 탈취한 돼지들이 권력에 탐닉, 인간 흉내를 내면서 변명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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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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