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하고 싶은 도시 서울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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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하고 싶은 도시 서울

2019.11.01

10월 셋째 주와 넷째 주 주말 북한산 등산길에 잇달아 젊은 외국인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산에서 더러 외국인을 만나지만 그들은 대개 국내에 상주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온 경우였지 단기 여행객으로 와서 등산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산행 안내인은 사람이 아니라 스마트폰이었습니다.

먼저 만난 사람은 미국인 에이브 벵히야트(24), 두 번째는 러시아인 콘스탄틴(34) 씨였습니다. 에이브는 서울에서 열린 에어쇼를 참관하러 열흘 일정으로 한국에 온 미국의 항공기 제작사 노드럽 그루만의 구매담당자였습니다. 콘스탄틴은 스포츠토토 사업에 종사하다 일시 실직 중이라고 했는데 여행을 통해 재충전을 하고자 사흘 일정으로 서울에 왔다고 했습니다.

콘스탄틴 씨와 북한산 향로봉 아래에서 헤어지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에이브는 귀국을 이틀 앞두고 이날 아침 7시 반에 종로구 구기동에서 산행을 시작해 족히 8시간을 걸어 백운대까지 갔다가 하산 길에 향로봉 아래에서 나와 만났습니다. 등산이 취미여서 여행길에도 등산장비를 갖추고 다닌다는 그는 복장 신발 스틱 등 완벽한 등산차림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 '에이브(Abe)'의 영어 스펠링이 일본 총리 아베와 같아 놀림을 받는다는 그는 벵히야트라는 성의 유태계 미국인이었습니다. 그는 붉게 물들어가는 북한산 경치에 연신 ‘뷰티풀’을 외치면서 무엇보다 등산로를 가득 메운 인파에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의 산들이 주말이면 모두 등산 인파로 덮이고, 단풍철인 지금은 특히 그렇다는 말을 듣고는 좋은 계절에 서울의 산을 오르게 돼 행운이라고 했습니다. 본사가 있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산을 보려면 3~4시간을 차로 나가야 하는데, 서울은 산에 파묻힌 도시 같다고 했습니다.

국토 면적 10만㎢, 그중 70% 이상이 산으로 돼 있는 한국은 방대한 영토, 비옥한 평야를 보유한 다른 많은 나라들을 제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 되었습니다. 한국

에이브 씨가 찍은 북한산의 단풍. 그가 귀국 후 이메일로 보내왔다.

의 활력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적이면 나는 산을 떠올렸습니다.

한 주 동안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산에 올라 자연을 호흡하며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한국인의 생활습관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는 나의 말에 그는 “잠이나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은 방법”이라며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그는 등산애호가답게 한라산과 백두산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에서 만세를 부르는 장면을 TV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백두산에 오른 적이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답변에는 긴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북한은 남한 사람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아, 북한 땅을 밟고 백두산에 오를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이 백두산에 오른 것은 특별한 경우다. 보통 사람들은 모두 중국 쪽의 백두산에 올라 북한 쪽의 백두산을 바라볼 뿐이다. 나도 그렇게 갈 수는 있지만 결코 그러고 싶지는 않다. 한국 땅을 밟고 올라가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대통령처럼 가고 싶다는 말이네요”라며 웃었습니다만 나는 “그런 특별대우로 가고 싶지도 않다. 남북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날 백두산에 가고 싶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라는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하철 불광역 뒤의 수리봉에서 향로봉 쪽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콘스탄틴은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다고 했습니다. 달랑 물병 하나만 들어있다는 작은 어깨가방을 둘러멘 여행객 차림의 그는 쇼핑할 돈도 없고 해서 등산에 나섰다고 했습니다.

그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온 러시아인이라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직전 주에 다녀온 카자흐스탄 여행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1937년 10월부터 소련의 스탈린은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 17만5천명을 중앙아시아 나라들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7000㎞가 넘는 먼 길을 화물열차에 실려 한 달여 만에 도착한 최초의 장소가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 역이었습니다. 가는 열차 안에서 1만 5천 명이 기근과 질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최초의 이주자들이 내동댕이쳐진 그 허허벌판의 기차역을 찾아 나는 그곳에 갔었습니다.

한국인으로부터 듣는 소련의 역사 얘기에 콘스탄틴은 거북한 기색도 없이 묵묵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될수록 멀리 가고 싶다며 발걸음을 빨리하던 그가 나와 보폭을 같이하더니 바위에 걸터앉아 내가 간식으로 준비해간 초콜릿과 사과 두 쪽을 나눠 먹으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내가 “당시 스탈린의 조선족 강제이주가 없었더라면 블라디보스토크는 조선인들의 억척에 의해 지금쯤 ‘극동의 다이아몬드’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더니 콘스탄틴은 “소련이 그 땅을 잃었을지도 모르죠”라고 했습니다. 그는 역시 스탈린의 후예다웠습니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은 연해주에 사는 조선족을 비롯한 일본인 중국인 등 아시아인의 독립운동을 차단할 목적이었다는 게 학계의 결론이기도 하지만, 유독 조선인은 나라 잃은 백성으로 호소할 곳도 없이 박해를 당했습니다.

나는 콘스탄틴과 걸으면서 또 앉은 채로 1시간 남짓 동안 80년 전의 긴 역사를 얘기했습니다. 그는 서울의 산을 많이 보려면 이제 일어서야 하겠다면서 향로봉으로 향했고, 나는 하산했습니다. 작별하면서 그가 “역사는 슬픈 것”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북한산에서 만난 두 외국인의 얘기를 쓰고자 한 것은 그들과의 대화 내용보다는 스마트폰에 의해 바뀌고 있는 서울의 관광지형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산봉우리들로 병풍처럼 둘러싸인 서울의 풍광은 대개 평지에 건설된 다른 나라의 수도들과 비할 때 독특합니다.

문득 서울에서 등산 관광이 고궁 관광에 못지않게 좋은 상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초행의 외국인 여행객들이 서울에 와서 등산을 즐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상으로나 안전상의 제약 때문에, 안내자가 동행해야 가능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서울 관광은 고궁, 쇼핑, 먹거리 관광 위주로 짜였고, 서울만의 특징도 없이 교통혼잡과 매연의 도시라는 인상만 지닌 채 서울 여행을 마치기 십상이었습니다. 나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서울의 산에 쉽게 접근하도록 봉우리들을 케이블카로 연결하면 어떨까를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케이블카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에서 지도 앱만 열면 초행의 여행객 혼자서 북한산을 쉽게 오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등산하고 싶은 도시 서울’이 관광 서울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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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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