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 위기] "성장률 1%대 쇼크, 이러다 국민 아노미 온다"


전문가 경고 "성장률 1%대 쇼크, 이러다 국민 아노미 온다"


    경제성장률 2%는 한국 경제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다. 1%대로 떨어지면 잠재성장률(2.5~2.6%) 수준에서 한참 벗어난다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3분기 우리나라 경제가 전 분기 대비 0.4% 성장하면서 올해 성장률이 1%대까지 내려가는 것이 기정사실화됐다.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4일 중앙일보가 인터뷰한 학계·재계·금융계 전문가 3명은 민간 투자를 활성화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친노동·분배에 맞춰져 있는 경제정책의 궤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나왔다. 

 



성태윤 교수 "노동공급 축소와 생산성 저하, 과거 일본과 비슷"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7년 3.2%이던 성장률이 2년 새 1%대로 떨어지는 데는 ‘정책발 충격’이 컸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경기가 악화하는 등 대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상승 정책을 동시에 시행한 것이 기업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해외 수요 감소로 전 세계 기업이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은 오히려 생산 비용이 크게 올라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렸다”며 “대외경제와 반도체 경기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국내 요인인 비용증가 충격에 대해서는 정책적 궤도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성태윤 교수 

 

성 교수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소비자물가지수, 생산자물가지수 등 주요 물가지수가 모두 마이너스를 보이며 사실상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 수요부진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수출·투자가 내리막인 상황에서 가처분소득의 감소가 소비를 둔화시켜 경기 하락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건설투자도 무너지고 있다.

 

그러면서 성 교수는 노동공급 축소와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가 지속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 불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 일본이 노동생산성이 낮은 상태에서 노동 공급을 감소시켜 장기침체를 불러온 것이 현재의 한국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기업은 더 많은 근로자를 고용해야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며 “그러나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기업이 고용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경기침체형 디플레이션으로 기업매출과 자산가격이 하락하면서 향후 추가적인 경기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성 교수는 “저소득·저신용 가계가 늘어나고, 기업의 수익성이 저하되면 경제 위기로 번질 수 있다”며 “금리도 추가로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정에 의존하는 성장의 한계도 짚었다. 성 교수는 “정부의 성장기여도가 2분기 1.2%에서 3분기가 0.2%로 1%포인트 낮아졌다는 것은 정부지출의 효과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연근로제·탄력근로제처럼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줄이는 작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한국의 주력 산업을 재편성하고 기술 경쟁력을 높여야 잠재성장률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배상근 전무 "기업 투자 유도해 미래 먹거리를 개발해야" 

재계에서는 획기적인 민간투자 활성화 대책 없이는 내년 경제도 어두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경제학 박사)는 “올해는 사실상 2%대 경제성장률 목표를 달성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며 “정부 재정으로 성장을 견인하는 방식의 한계를 확인한 만큼,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 전무는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의 양축인 소비와 투자도 부진하다”고 진단했다. 수출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배 전무는 특히 29일부터 민간아파트에도 확대 적용될 분양가 상한제가 향후 경기 위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민간택지로 분양가 상한제를 확대하는 것은 공급요인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일련의 정책들이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어 내년 경제도 현재로선 어두워 보인다”고 말했다.  


배상근 전무



 

정부의 힘으로 경제성장률을 떠받치는 방식의 한계도 지적했다. 배상근 전무는 “정부는 재정 확대 전략 중 하나로 재정 승수가 높고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큰 토목·건설 부문에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긴급 수혈이 필요한 때 쓰는 대증 요법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민간 부문의 부진이 내년 이후  세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배상근 전무는 “3분기 GDP 성장률 자체보다도, 국내총소득(GDI) 성장률이 3분기 연속 마이너스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3분기 GDI는 0.1%로 전 분기 대비 증가했지만, GDI의 증가율(전년동기대비)은 3분기 -0.6%로, 1분기(-0.5%)와 2분기(-0.6%)에 이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로, 이렇게 소비가 부진하고 기업 실적이 나쁘면 가계와 기업이 세금을 내기 어려워진다.

 

그러면서 배 전무는 투자 활성화 대책을 주문했다. 그는 “제조업 설비 가동률이 하락세라는 의미는 기업이 현재 가진 설비도 멈춰 세웠다는 얘기”라며 “미·중 무역분쟁과 국내 여건을 감안하면 기업이 신규 설비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려는 연구개발(R&D) 투자라도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확대해 민간 부문의 경제 성장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균 센터장 "성장률 하락, 국민 아노미 우려"

이날 성장률 발표에 자본시장에서도 충격이 적지 않았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성장률의 경향적 둔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한국은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올해 2% 성장은 버거워 보인다”고 말했다. “성장률이 좋아져도 추세적으로 좋아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요인을 찾기 힘들다”는 게 김 센터장의 분석이다.

 

김 센터장은 “일본이 과거 잃어버린 20년을 보낼 때도 일본과 독일의 성장률 격차가 크지 않았다”며 “일본이 연평균 1.1% 정도 성장할 때, 독일은 1.5%였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4% 가까이 성장하다가 1%로 떨어진 반면, 한국은 5%에서 불과 몇 년 만에 1% 시대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경제가 중국경제 호황에 힘입어 5%대 성장을 했는데, 4% 성장 시대는 아예 건너뛰고 박근혜 정부 들어 3%로 내려앉았고, 현재 2% 성장도 힘든 형국이 됐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고성장의 관념이나 관성이 존재하는데 성장률이 이렇게 급격하게 떨어지면 국민 사이에 아노미(혼돈 상태)가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을 풀어 경기 하강을 막는 일은 필요하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궁극적으로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결국 투자가 돼야 하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투자는 안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외 환경의 개선이 요원한 가운데 많은 논란이 따르긴 하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 재정을 풀어 경기 하강을 막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학균 센터장



 

김 센터장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가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여건이 안 좋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며 “소득주도성장이나 슈퍼 추경안 등을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내부적으로 성장률의 경향적 저하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외부 여건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민간이 쓸 자원을 정부가 가져가서 쓰는 걸 ‘구축효과’라고 하는데 만약 민간과 정부가 제한된 자본에 대한 경쟁을 하면 금리가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 부채가 늘어나는데도 국채 금리가 오르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김 센터장은 "이는 민간의 수요가 별로 없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그는 “추경을 해서라도 어려운 시기를 버텨야 하고, 글로벌 사이클이 좋아지면 그때 기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3분기 수출이 4.1% 증가한 것에 대해선 “정체된 국면에서 내수 대비 수출이 좋다는 것이지 성장률을 견인할 정도의 효과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성우·박수련·허정원 기자 sohn.yong@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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