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장애' 걸린 정부


미국이냐, 농민이냐…WTO 개도국 지위 '결정장애' 걸린 정부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사실상 방침을 정했지만, 이를 공식 확정하는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못 박은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 시한을 넘겼다. 시한은 23일까지였다.


관가에서는 개도국 지위 포기로 각종 관세 보호, 보조금 혜택 등이 줄어들 수 있다는 농업계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외경제장관회의 등 공식 절차 일정을 못 정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미국 상무부의 수입 자동차 관세 부과 결정, 한미 방위비 협상 등 각종 통상현안을 앞두고 정부가 ‘결정장애’를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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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여부를 공식 결정할 대외경제장관회의 개최 계획을 아직 공지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기재부 실무진은 25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했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하고 귀국한 홍남기 부총리에게 이번 주 초 대외경제장관회의 개최 계획을 보고한 뒤 공지를 하려고 했지만, 홍 부총리가 아직 계획을 승인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업인단체가 22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정부와 농업인단체 간 간담회에서 'WTO 개도국 포기 방침 철회' 피켓을 들고 정부에 농업인단체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재부 국정감사가 23~24일 예정된 걸 감안하면, 회의 공지가 25일 이전에 이뤄질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기재부 실무진이 상정하고 있었던 25일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열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싱가포르 등에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국가 중 싱가포르와 브라질은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했고, 중국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22일 농민단체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김용범 기재부 1차관 주재로 민관합동 농업계 간담회를 열었으나, 설전을 벌이다 파행에 이르렀다. 회의 공개 여부, 농민단체의 6대 요구사항에 대한 정부의 입장 공개 표명 문제를 놓고 정부와 농업계간 이견이 있었다.


이날 농민단체 측은 정부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특별위원회 설치 ▲농업예산 증액 ▲취약 계층 농수산물 쿠폰 지급으로 수요 확대 ▲공익형 직불제 도입 ▲1조원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부족분 정부 출연 ▲한국농수산대 정원 확대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농업 지원 방안 없이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자칫 대규모 농민 시위 등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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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을 마냥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통상당국은 11월로 예정된 미국 상무부의 수입 자동차 관세 부과 결정에 이 사안이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및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면담을 마친 유명희 산업부 툥상교섭본부장은 "10월 중 개최되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WTO 개도국 지위 문제와 관련된 정부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도 지난 23일 기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조만간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 장관들과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에 미국 측에서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도 감내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WTO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경우 미국측으로부터 통상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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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WTO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하는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이달 중에는 열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결정해놓고, 농민단체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제계 인사는 "어차피 WTO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했으면 그 결정을 공식화하는 게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방법인데, 정부가 너무 좌고우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정원석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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