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국방 패러다임의 변화...드론만 있으면


95개국 軍, 드론 보유… 글로벌 안보지형 뒤흔든다

최근 사우디 석유시설 마비시켜
작지만 치명적… 격추 어려워… 최소 10개국 드론 공습 성공

국가 아닌 테러집단도 소유 쉬워… '전쟁 수단의 평등화' 불러

     지난 9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 전체 산유량의 절반가량(하루 약 600만배럴)을 공급하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최대 석유시설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유전이 파괴됐다.

사우디 석유시설 드론 테러 모습/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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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국제 유가는 출렁였고 중동 지역의 군사 긴장은 급격히 고조됐다. 아브카이크를 폭발시킨 것은 첨단 미사일이나 전투기가 아니다. 몇 대의 드론(무인기)이었다. 공격에 이용된 드론은 700~1000㎞를 비행해 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까지 배후가 누구인지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우디 석유시설 드론 테러는 현대전 패러다임 변화의 증거라고 군사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30일(현지 시각) 미국 바드칼리지 드론연구센터가 발간한 보고서 '드론데이터북'에 따르면, 2019년 현재 군용 드론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95개국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60개국만이 군사용 드론을 보유하고 있던 것에 비하면 급속히 증가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각국 군이 보유하고 있는 드론은 최소 2만1000대에서 최대 3만대로 추정된다. 댄 게팅거 드론연구센터 국장은 악시오스와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드론이 글로벌 군사 지형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드론이 세계 군사지형 판도를 뒤흔드는 것에는 여러 요소가 있다. 첫째, 기술적으로 방어가 쉽지 않다. 크기가 작고 저고도로 빠르게 비행할 경우 더욱 그렇다. 드론 방어는 '탐지→식별→추적→무력화(요격)'로 이뤄진다. 광학·음파·레이더 등 다양한 센서를 활용해 드론의 접근을 탐지한 뒤, 전파를 교란해 드론 조종을 막거나(소프트킬) 레이저빔·산탄총 등을 발사해 드론을 격추(하드킬)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 등 방위산업 선진국에서는 레이저 광선을 표적 드론에 직접 쏴서 무력화하는 레이저 대공무기를 이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 관계자는 미 밀리터리타임스 인터뷰에서 "반경 2㎞ 안에 들어오는 드론은 동전만 한 크기라도 탐지해 격추하는 기술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같이 드론 방어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상용화는 아직 요원하며 드론 공격 기술의 발전 속도에는 못 미친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드론을 탐지하는 초고성능 레이더 장비를 촘촘하게 깔지 않는 한 현 기술로 고속의 소형 드론을 식별해 격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신식 레이더가 소형 드론을 탐지할 수 있는 최대 거리는 20㎞ 정도인데, 최근 드론의 속도는 초속 100m에서부터 초음속에 이를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설령 탐지했더라도 요격이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러 대의 드론이 동시 공격을 한다면 드론을 완벽하게 막기란 더욱 어렵다.



둘째, 드론은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점이다. 본래 첨단 무기는 소수의 부국만의 것이었다. 그러나 드론은 빈국들도 이용할 수 있다. 1990년대만 해도 드론 공격은 사실상 미국이 독점했는데, 이제는 아제르바이잔·나이지리아 같은 국가들도 드론을 이용한 공격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최소 10개국이 드론을 이용한 공습·살상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 석유시설을 공격할 때 썼다고 주장하는 '삼마드' 드론은 대당 1000만~2000만원이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이 최대 1000대의 드론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드론이 값이 싸기 때문이다. 드론으로 인해 이른바 '전쟁 수단의 평등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국가가 아닌 테러조직, 마약 밀매조직 등도 드론을 무기로 쓰고 있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2016년 300대 이상의 소형 드론에 수류탄을 장착해 서방 연합군을 공격한 바 있다.




드론은 원격 조종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군의 전력 손실이나 공격 진원지 발각을 걱정하지 않고 과감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지난해 8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는 군 창설 81주년 기념식 연설을 하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드론 테러의 표적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폭탄을 실은 드론 두 대가 폭발해 군인 7명이 다쳤다.

악시오스는 "멀지 않은 미래에는 사우디 석유시설 테러 같은 일이 흔한 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도 세계 제공권 경쟁의 판도는 드론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중국 드론은 남중국해 상공을, 러시아 드론은 우크라이나 상공을 날고 있다. 



시리아 상공에서는 미국·러시아·영국·이스라엘·터키·이란·시리아 등의 드론이 정찰 중이다. 게팅거 국장은 "일부 국가는 이미 자율 드론 부대 육성을 연구 중"이라며 "미래 전장에서 소형 드론은 유비쿼터스(ubiquitous·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옥진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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