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여파] 러시아가 독식하는 신흥국 원전 건설

신흥국은 원전 건설 붐… 러시아가 싹쓸이할 판

     신흥국들에서 급증하는 전력 수요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 건설 붐이 일고 있다.
 우간다·에티오피아·벨라루스·터키·방글라데시 등 신흥국들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인 로사톰(ROSATOM)은 막강한 자본과 정치력을 무기로 세계 원전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한국은 프랑스·일본조차 실패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 획득에 성공했지만, 탈(脫)원전 정책으로 원전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정부는 원전 수출은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한 수출은커녕 기존 국내 원전까지 외국 기업에 정비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흥국들 원전 건설 붐…러시아 장악
우간다 정부는 지난 17일, 러시아 정부와 에너지·의학 등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8월 말 에티오피아 외교부 장관은 "10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로사톰과 신규 원전 건설 계약을 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로사톰은 에티오피아 정부와 지난 2017년, 도미니카공화국과 최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피해를 본 인접국 벨라루스는 러시아가 건설 계약의 90%에 해당하는 100억달러를 차관 형식으로 빌려줘 원전 2기를 건설 중이다.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인 로사톰(ROSATOM)이 운영하는 노보보로네즈 원전 냉각탑 전경. 신흥국에서 원전 건설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가 막강한 자본과 정치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블룸버그



알렉세이 리하체프(Alexey Likhachev) 로사톰 사장은 지난 16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서 "벨라루스 원전 건설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인도·방글라데시·터키·중국에서 원전 건설을 계속할 계획이며, 헝가리·핀란드·이집트 등에서도 건설 작업이 시작됐고, 우즈베키스탄 원전 건설 계획도 탄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는 2011년 로사톰과 원전 건설 협약을 체결, 2023~2024년 가동을 목표로 신규 원전 2기를 건설 중이다. 2010년 러시아와 원전 건설에 관한 협약을 체결한 터키는 원전 4기 건설을 추진 중이다. 로사톰은 지난 3월 터키 아큐유 원전 기초공사를 완료했다.



원전 6기를 운영 중인 체코 환경부는 지난 3일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 체코는 두코바니와 테멜린에 각각 1GW급 원전 1~2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2017년 12월 러시아와 원자력 협정을 맺은 우즈베키스탄은 올해 말까지 원전 후보지 조사가 완료될 예정이다.

이집트와 우즈베키스탄은 각각 원전 4기, 석유 부국(富國) 사우디아라비아도 원전 2기 건설을 추진 중이다. 폴란드는 지난해 말 발표한 에너지 정책 전략 초안에 2043년까지 원전 6기(6~9GW) 건설 계획을 담았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원전 건설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 시장을 로사톰이 장악하고 있다. 로사톰은 중국·터키·인도·방글라데시 등 세계 12국에서 원전 36기를 건설 중이다. 해외에서만 앞으로 10년간 1335억달러(약 160조원)어치 일감을 따놓았고, 50국 이상에서 원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국내에서 탈원전에 직면한 한국전력, 파산 위기를 겪은 웨스팅하우스 등 러시아의 경쟁자들은 희망이 없는 상황"이라며 "러시아 정부 지원을 받는 로사톰이 세계 원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탈원전 역주행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원전은 444기, 건설 중인 원전은 52기, 2020년대 가동을 목표로 계획 중인 원전은 111기, 검토 중인 신규 원전은 330기에 달한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9일 원전수출전략협의회를 열고, 원전 수출 전략을 대형 원전 건설 위주에서 정비·해체 등 전(全) 주기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신규 원전 건설은 경쟁이 치열할 뿐 아니라 각국의 정치·경제적 여건에 따라 건설이 지연되는 등 사업 불확실성이 높은 ‘레드오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원전 해체 경험은 전무하지만, 영국 등과 협력해 부족한 국내 기술을 보완해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했다. 



산업부도 ‘걸음마 단계’라고 인정했듯, 원전 해체 분야에서 한국은 해체 경험이 풍부한 영국·미국 등에 비하면 기술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세계적으로 기술력과 경제성을 인정받은 원전 건설은 제쳐놓고, 경험도 없고 기술력도 떨어지는 해체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안준호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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