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대한민국] 참으로 한심한...미국 연설문도 뜯어고쳐 국민에게 왜곡 보도
보훈처, 주한美사령관 연설문 손댔다 망신살
美측, 한글 자막용 번역본 보내며 수정하지 말아달라 당부했는데
북한을 '독재세력'으로 지칭한 내용을 '공산세력'으로 슬쩍 바꿔
美 항의에 직접 경위 설명후 사과까지… 軍안팎 "北 눈치 본 듯"
국가보훈처가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 미군사령관(유엔군사령관)의 공식 행사 인사말을 자의적으로 수정해 미군 측의 항의를 받은 것으로 4일 알려졌다. 복수의 군 관계자는 "보훈처가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지난 7월 유엔군사령관 자격으로 참석한 정전 66주년 '6·25 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인사말 중 북한 관련 표현을 일방적으로 고쳐 자막으로 내보냈다"며 "이에 미군이 즉각 항의했고 보훈처가 행사 이틀 뒤 직접 경위 설명까지 하며 사과했다"고 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7월 경기 파주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협정 기념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이날 행사에 앞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김지호 기자
문제가 된 부분은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북한을 표현한 대목이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북한을 지칭하며 '독재(tyranny) 세력'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보훈처가 이를 '공산 세력'으로 바꿨다.
미군 측은 행사 이틀 전 보훈처에 인사말 한글 자막 번역본을 보내며 "사령관의 의도가 왜곡될 수 있으니 한글 자막을 수정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당부를 무시하고 자막을 수정한 것이다. 군 관계자는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북한이 단순 공산 세력이 아닌 독재 정권이라는 인식을 명확히 가진 것으로 안다"며 "보훈처가 미군 측의 요청에도 굳이 자막을 바꾼 건 의아한 행동"이라고 했다. 미군 측은 행사가 끝나자마자 보훈처 측에 항의했다.
보훈처 측은 미군에 "독재라고 그대로 자막이 나갈 경우 참석자들이 '북한의 독재 세력'이 아니라 과거 '대한민국의 독재 정권'으로 오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자막을 고쳤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행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렸으며 이낙연 국무총리와 정치권 인사, 참전국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이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정전협정 기념식은 전국에 생중계되는 정부 기념식인 만큼 일반 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군의 직역 등 오해를 줄 만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수정하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최근의 불편한 한·미 관계가 표출된 것"이라며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기 때문에 주한 미군사령관의 워딩까지 손본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군 관계자는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등 이런 미묘한 균열이 누적돼 한·미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말이 많다"고 했다.
양승식 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5/20190905001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