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운영 고척돔 상가, 마지막 밥집마저 "폐업"..."민간 건물주도 이렇게는 안해요"

서울시 운영 고척돔 상가, 마지막 밥집마저 "폐업"
 
올 월세, 법정上限 5% 넘게 올려 상가 31곳 중 24곳 줄줄이 문닫아
밥집 사장 "손님 줄어도 월세 인상… 민간 건물주도 이렇게는 안해요"

    "서울시는 자영업자를 위한답시고 제로페이다 뭐다 엉뚱한 짓 그만하고, 서울시 소유 시설에 들어와 있는 세입자나 잘 챙기라고 하세요. 손님이 줄어드는데 월세를 올리는 짓은 민간 건물주도 안 해요."

외벽에 '제로페이' 광고판이 큼지막하게 붙은 서울 구로구 고척돔 지하상가에서 부대찌개집 주인 이모(35)씨가 13일 저녁 장사를 준비하며 이렇게 말했다. 2016년 고척돔 개장 직후부터 시작해온 장사를, 그는 이달 18일이면 접는다. 그러면 '고척돔 마지막 밥집'이 사라진다. 앞으로는 치킨집 2곳과 카페 2곳, 샌드위치 가게 1곳, 편의점 1곳만 남는다. 이씨는 "야구계 단골손님들 생각에 섭섭한 마음도 있지만, 더는 서울시 시설공단의 깡패 같은 운영을 견디기 어렵다"며 "이제 고척돔 반경 5㎞ 이내로는 오지 않겠다"고 했다. 



또 "폐업 결정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두 달 전 110㎏였던 몸무게가 지금은 80㎏ 후반"이라고 했다. 서울시 측은 "부대찌개집이 나가면 그 자리에 공용 휴게 공간을 만들겠다"고 했다.

1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돔 지하상가 내 매장이 있던 자리에 ‘리모델링 대상구역(철거예정)’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월세와 관리비 인상 등을 견디지 못한 점포 대부분이 철수했고, 오는 18일에는 ‘마지막 밥집’이던 부대찌개집도 영업을 접는다. /남강호 기자

서울시가 3000억원을 들여 만든 고척돔은 '한국 최초의 돔형 야구장'으로 2016년 화려하게 개장했다. 식당·카페 등 31개 업소가 이씨와 함께 입주했지만, 3년여 기간에 24개 업소가 떠났고 이제 이씨 차례다. 입주자들은 "서울시가 세입자에게 너무 가혹한 계약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고척돔은 개장 첫해 민간업체가 위탁 운영했다. 당시 이씨의 임대 계약 조건은 '임대료·관리비 개념 없이 수익의 13%를 위탁운영사와 나눈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2016년 5월 168만원, 6월 192만원을 냈다. 운영사 측은 그해 10~12월에는 비수기라는 이유로 월평균 80만원만 받아갔다.

2017년 고척돔에 서울시 직영 체제가 도입됐다. 이씨는 "운영 주체가 민간업체에서 서울시로 바뀐다길래 당연히 더 좋아질 줄 알았다"고 했다. 현실은 반대였다. 임대료를 정액(定額)제로 바꿨는데, 실제 사용면적 52평인 이씨 매장에 대해선 연간 2766만원을 요구했다. 월평균으로 230만원이었다. 관리비는 별도였다.



이씨는 "깎아달라고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며 "나가고 싶었지만 인테리어와 시설비 등으로 들인 2억5000만원을 그냥 날릴 수 없어 남았다"며 "다른 업체가 나간 만큼 더 많이 벌면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작년 2771만원이던 임대료를 올해는 서울시가 2930만원으로 올렸다. 상가 임대료 인상률 법정(法定) 상한(연 5%)을 뛰어넘는 5.7% 인상이었다. 서울시 측은 "공유재산법에 따라 주변 공시지가 인상률인 8%만큼 올릴 수도 있지만, 적게 올린 것"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관리비도 추가로 받았다. 폐업하고 나간 점포 24곳의 관리비 부담까지 남은 7개 업체에 분담해 전가했다. 이씨 가게는 매달 70만~120만원을 냈다. 12일 정오 무렵 고척돔 내 '공차' 카페에 들어온 손님들은 "덥다, 더워"라는 말을 연발했다. 인근 점주는 "관리비가 무서워서 에어컨은 아예 못 튼다"며 "손님들께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심지어 물도 샌다. 점주들이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올해 6월에 찍었다는 영상에서는 점포들 천장에서 물이 새 급한 대로 업주들이 청소바구니를 갖다 놨다. 점주들은 "서울시 측에 항의했더니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부실공사 때문'이라며 배상도 안 해주더라"며 "세상에 이런 건물주가 어딨느냐"고 했다. 지하층 벤치에는 노숙자들이 들어와 잠을 자고 가기도 한다고 점주들은 전했다.


썰렁해진 고척돔은 방문객도 줄어들고 있다. 2017시즌 69만9380명이던 야구 관람객은 작년 45만4754명으로 줄었다. 방문객들은 불편한 부대시설을 오지 않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유동인구가 줄어드는데도 월세를 올린 결과, 고척돔 흑자는 해마다 불어나고 있다. 영업이익이 2016년 27억원에서, 2017년 42억원으로, 작년엔 61억원으로 늘었다. 3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점주들은 "입점한다는 점주 있으면 뜯어말리겠다"고 말했다. 올해 7월 취임한 조성일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고척돔 업주들 어려움을 잘 알기에 취임 이후 제일 먼저 이곳부터 찾았다"며 "문제의 본질인 유동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사회 최아리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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