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따먹고 외수(外數)’하는 야생 고양이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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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따먹고 외수(外數)’하는 야생 고양이

2019.08.12

집 화단에 날아오는 새 종류가 많습니다. 야생 고양이(길 고양이, 들 고양이를 구분할 줄 몰라 모두 야생으로 부르겠음)를 막아주니 새들에게는 평화지대입니다. 새들이 아무 때나 안전하게, 자유롭게, 평화롭게 각종 벌레와 곤충 그리고 떨어진 모이를 쪼아 먹습니다.

올해는 화단에 벌레와 곤충 개미가 거의 없습니다. 지난해와 다르게 다른 어느 것을 심지도, 영양분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농약도, 퇴비도, 심지어는 해가 없다는 유기 발효액, 목초액도 안 뿌렸습니다. 친구가 알려준 식초 소주 물을 각각 같은 양으로 혼합한, 진드기를 없애는 액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에야 해답을 얻었습니다. 비둘기가 화단에서 가지 잎을 노려보며 가만히 앉아 있더니, 순간 갑자기 뛰어 올라 벌레 한 마리를 물었습니다. 다음에는 화단에 있는 곤충을 쪼아 먹었습니다. 아침마다 와서 울던 비둘기가 천적 노릇을 했습니다. 어떤 새는 따서 버린 방울토마토만 먹었고, 다른 새는 봉숭아 꽃 아래 떨어진 씨앗을 주워 먹었습니다. 새가 든든한 화단의 지킴이였습니다.

이웃이 야생 고양이를 정성껏 돌봅니다. 그이가 지난해 봄부터 작은 플라스틱 그릇 두 개를 내놓고 먹이와 물을 챙깁니다. 처음 한 마리가 두리번거리며 나타났는데, 최근에는 모두 몇 마리인지 모르겠습니다. 동시에 6마리까지는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지극히 경계했습니다. 자동차와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후다닥 날아났습니다.

야생 고양이 때문에 이웃 간의 화목이 깨졌습니다. 아무 곳에나 똥을 싸놓거나, 밤낮없이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사람을 놀라게 해 이웃집끼리 말싸움이 붙었습니다. “먹이를 주지 말라”, “그딴 소리 하지 말아요. 인터넷에 올릴 테니까.”하고 서로 언성을 높였습니다. 시(市) 조례에 원래 애완동물을 공동주택에서는 키울 수 없다는 말까지 오갔습니다. “제가 집에서 키우나요?” 참 매몰찼습니다.

이쯤 되니 야생 고양이가 최근에는 배를 드러내 놓고 누워 천연덕스럽게 해바라기도 합니다. 이웃이 나타나면 꼬리도 흔듭니다. 비둘기 등을 잡아먹고는 아양도 떱니다. 아주 온순한 모습의 코스프레를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양이와 우호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화단을 파고, 배설물을 묻고, 밤에 시끄럽게, 듣기 싫게 울어도 그냥 두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우호관계가 파탄이 났습니다. 근처에 얼씬거리기만 해도 반드시 쫓아냅니다. 발로 땅을 몇 번 팡팡 구르거나, 제자리에서 저의 허벅지를 손으로 치며 달려가는 흉내를 냈고, 얄밉게 쳐다만 볼 때는 공격하듯 걸음을 빨리해 다가갑니다. 공포감을 갖기를 바라면서요.

지난가을 어느 일요일 오후 밖에서 갑자기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아주 잠시 들렸습니다. 내다보니 야생 고양이가 비둘기를 잡아 맛있게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노려보자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 자세를 취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는 해도 멍멍했습니다. 야생 고양이가 비둘기를 잡아먹는(잡는 순간은 못 봤지만)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야생 고양이는 본성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전형적인 생태계 포식자입니다. 한 마리가 1년 동안 700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을 잡아먹는답니다. 수가 늘수록 생태계 하위의 동물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충남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삵이 나타났습니다. 삵의 먹이가 되는 동물들의 개체수가 많이 늘어나니 스스로 찾아 왔습니다. 매우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거기서 쥐, 청설모, 꿩, 산비둘기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습니다. 이 같은 자연생태계 복원을 기대하는 것이지요.

야생에서 포식자 수가 급속하게 증가하면 반드시 인간의 영역까지 쳐들어옵니다. 야생 고양이 피해가 많이 들려옵니다. 먹잇감이 적으니 시골 농가에 나타나 닭, 오리, 토끼 등을 훔쳐 갑니다. 토종닭을 놓아기르는 시골 친구에게는 공포입니다. 어떤 때는 연못의 금붕어를 물어 죽이고, 양어장의 물고기를 잡아먹습니다. 농부들이 야생 고양이를 쫓느라 고심합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환경부가 국립공원의 야생 고양이 목에 목도리를 채웁니다. 먹이사슬에 적당하도록 야생 고양이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부에서 반대도 하나 봅니다. 하지만 포식자의 수가 비정상으로 증가하면 인간에게 곧바로 피해가 되돌아옵니다. 하긴 인간이  생태계를 교란하는 최대의 포식자니까 할 말은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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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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