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에서 헤테로토피아로 [안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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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에서 헤테로토피아로

2019.07.26

태풍 다나스의 영향으로 강한 바람과 비가 쏟아지던 지난 주말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위치한 디지털 <뮤지엄 다: (museum DAH:)>의 개관을 위한 선 공개(pre open)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찾아 들어선 순간, 미처 생각지 못한 화려한 색상과 넓은 전시 홀이 판타지 속으로 풍덩 빠져들게 했습니다.

안내 책자를 보니 전시 제목이 <완전한 세상 (Maximalia)>입니다. 누구나 꿈꾸고 동경하는 세상이지만 실재가 아닌 허상에 불과한 장소. 푸코는 이런 장소를 ‘유토피아(utopia)’라고 개념화했습니다. 오래된 욕망이지만 이루지 못한 꿈의 단편. 그 세상을 구현한 작가를 만났습니다. 동문이라고 하니 반가워하며 조소과 91학번이라고 인사하는 장승효 작가입니다.

장승효 작가는 화려한 사진 이미지들을 오려서 붙이는 포토꼴라주(photocollage) 작업을 하는데, 최근에는 뮤직비디오 아트디렉터 출신인 김용민 작가와 함께 꼴라쥬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공동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꼴라쥬 플러스는 디지털 매체를 기반으로 영화, 회화, 음악, 패션, 건축, 가구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는 미디어 아트 그룹입니다. 실제로 전시장에는 디자인계의 거장 맨디니, 카림 라시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한 작품들이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작가는 순수미술(fine art)에서 순수를 빼고 그냥 미술, 예술을 지향하며 우리의 일상을 파고드는 작업을 하겠다고 합니다. 예술이 어렵고 소수를 위한 편견임을 깨고 우리 삶의 주변에서 예술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는 가치를 재정립하겠다고 합니다. 그 일환으로 먼저 디지털 <뮤지엄 다>의 공간도 하나의 집처럼 꾸미고 그곳을 환상적 예술 체험의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미라클 가든’이라고 불리는 메인 무대는 판타지의 정점입니다. 8천만 개의 발광 다이오드를 통해 폭포처럼 흘러나오는 미디어 아트가 인상적입니다.

최근 디지털 아트가 큰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남부의 폐채석장을 개조해 ‘빛의 채석장(Carrières de Lumières)’이란 전시장이 만들어졌고, 그 대중적 인기와 성공에 이어서 파리의 낡은 철제주조공장에 ‘빛의 아틀리에(Atelier des Lumières)’를 오픈하였습니다. 제주 성산에도 옛 국가 통신시설이었던 벙커를 전시관으로 만든 ‘빛의 벙커(Bunker de Lumières)’ 가 생겨 수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100여개의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360도 어느 각도에서도 작품 감상이 가능하기에, 관람을 위해 줄을 설 필요도 없습니다. 외부의 소리가 완벽히 차단되는 환경 속에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은 명화의 감상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IT 기술의 발전은 사각의 프레임을 벗어나 경계가 없는 아트, 컴퓨터와 프로젝터를 활용한 입체적인 세계를 펼칩니다. 미술을 어렵게 접근하고 관망하는 태도를 벗어나 작품과 자신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신체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전시형태는 높은 대중성과 확산성을 갖습니다.

전통적인 미술작품의 감상에서 보이는 모습 즉 작가의 작품에서 무언가를 구별해내고 본질을 찾아내려는 복잡한 선택보다는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때로는 원하는 것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몸으로 이루는 '인터렉티브 아트(interactive art)'로서의 교감이 더욱 친밀하게 자리합니다.

이러한 예술과 기술이 융합된 디지털 아트는 종전의 전통적인 미술관을 벗어나 의외의 장소에서 낯선 경험으로 우리의 오감을 충족시키는 예술 트렌드가 되고 있습니다. 공간의 성격이 중요합니다. 폐채석장, 낡은 철제주조공장, 숨겨진 벙커 이러한 공간은 관람자들에겐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습니다. 먼지 풀풀 나는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탄생한다는 점에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적 성격을 띱니다.

유토피아가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가상이라면 헤테로토피아는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실재입니다. 푸코는 헤테로토피아에 대해 일상을 벗어난 현재에 존재하는 반(反) 공간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공장과 벙커와 같은 공간이 본래의 성격을 벗어나 예술작품으로 우리에게 신선한 유토피아를 보여주고 있다면 이 공간이 바로 헤테로토피아인 것입니다. 버려진 곳들이 활기 넘치고 생기 넘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면 예술의 가치는 배가 될 것입니다.

뮤지엄 다의 개관전 <완전한 세상>을 보면서 그 아름다운 작품들에 한참을 매료되어 있다가, 한시적인 유토피아의 재현이 아니라 상시적인 헤테로토피아로의 전환을 꿈꿔봅니다. 작가가 구현한 유토피아가 우리 삶의 버려진 취약한 곳들을 아름답게 비춰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버려진 곳들이 활기 넘치고 생기 있는 공간으로 변모될 수 있도록, 우리의 감각을 새롭게 일깨우고 힐링이 되는 디지털 아트의 무한한 창조를 기대해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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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안진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삶의 중심은 그림이지만 그림과 함께 일상을 풀어내는 방법은 글이다. 꽃을 생명의 미학 그 자체로 보며 최근에는 ‘꽃과 문명’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 <당신의 오늘은 무슨색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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