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악화 장기전 가나?...“일본 보복카드 100개, 이제 겨우 한 개 나와”

한·일 전문가들 “보복 장기간 준비”
지한파 인사들 여러 경로로 귀띔
“한국정부 비상계획 마련했어야”
아베 “WTO 규칙에 안 어긋나”

    지난해 11월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두 부처를 두루 거친 전직 고위 관료였다. 그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두 부처에선 “알았다”고만 답했다.
 
이 전직 고위 관료는 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여러 채널을 통해 일본 정부의 보복 징후를 포착했고, 이를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정부 부문의 지한(知韓)파 인사가 귀띔해 줬고, 이를 전달했다”며 “정부가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
 
그는 “문제는 일본 정부가 준비한 100여 개의 보복 카드 중 이제 겨우 한 개가 나온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에 이어 단계적 보복 카드가 준비돼 있다는 의미다. 



통상 전문가는 예상 가능한 카드로 ▶농·수산물 수입 제한(농림수산성) ▶전략물자 수출 제한(방위성) ▶단기 취업비자 제한(법무성) ▶송금 제한(재무성) 등을 지목한다. 한국 정부의 대응에 따라 더 강력한 경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지한파 경제학자인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는 이날 전화 인터뷰에서 “일본은 복수의 정부부처가 공동으로 전략을 짜왔다”며 “보복 조치를 취했을 때 한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큰 카드를 장기간 검토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적도 나온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해 190여 개 이상의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며 “사전에 차분히 대응했어야 했는데 이런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일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는 의회에 출석해 “일본 기업에 대한 피해가 현실화하면 한국에 대해 송금 중단, 비자 발급 중지 등 여러 보복조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농산물수입·비자·송금 제한 등 추가 보복조치 가능성도
 
한국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 다른 전직 관료는 “올 초 해외 포럼에서 일본 경제산업성 한국 담당 관료가 ‘보복조치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해 줬고, 일본 기업 초청 투자설명회(IR)에서 민간 부문 관계자가 ‘이런 (한·일 관계) 상황에서 일본 기업의 투자를 요청하다니 정신 나간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후카가와 교수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전후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여러 방식으로 경고했지만 한국 정부는 피드백(반응)이 없었다”며 “일본 정부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거나 사태가 심각해지면 대응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지금의 사태를 야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외교 채널을 통해 이번 문제를 해결하되 충분한 준비를 통해 양국 정상이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는 “일본 스스로 시장경제·자유무역을 부인하는 과도한 조치를 한 게 맞지만 9월 유엔총회,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등 일정에 맞춰 양국 정상이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일자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한 조치는 WTO 규칙과 정합적이지(맞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유무역(원칙)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와 국가의 신뢰관계로 행해 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발언은 이번 조치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후속 조치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는 전날 디스플레이·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절차 간소화 우대조치를 없앤다고 밝히면서 ‘대항 조치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동현·문희철 기자 offramp@joongang.co.kr 중앙일보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