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없는 이상한 분양가 심사 기준

'원가' 없는 이상한 분양가 심사 기준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주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 기준을 강화했다. 


기존에 인근 유사 아파트 단지 평균 분양가 및 매매가의 110%였던 상한을 100~105%로 낮췄다. 최근 서울 강북권 등 주요 신규 분양 아파트의 분양가가 시장의 예상보다 높게 책정되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분양가 심사 기준을 완화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제도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고분양가 여부를 심사할 때 ‘지역’과 ‘인근’ 두가지 기준을 사용해 왔다. 지역 기준에서는 신규 분양 아파트 단지가 위치한 해당 시군구 내에서 최근 1년 내 분양한 유사 아파트가 있는 경우 그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나 최고 분양가를 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인근 기준은 해당 지역에서 최근 1년 내 분양한 아파트가 없는 경우 적용하는데, 해당 시군구뿐 아니라 주변으로 범위를 넓혀 분양한 지 1년이 넘은 미준공 유사 아파트 평균 분양가의 110% 아래로 분양가를 억제한다. 분양한 지 1년이 지난 미준공 유사 아파트도 없는 경우에는 이미 준공된 유사 아파트 평균 매매가의 110% 아래로 분양가를 관리하고 있다.


kbs


관련기사

수천억 원 아파트 분양가 심사…명단도 내역도 ‘깜깜이’

https://d.kbs.co.kr/news/view.do?ncd=4219397

edited by kcontents


주택도시보증공사는 분양가를 심사하면서 비교 사업장을 선정할 때 인근 및 지역 기준 모두 반경 1㎞ 이내를 원칙으로 한다. 1㎞ 안에 유사 아파트가 없는 경우 등 불가피한 때에는 선정 범위를 해당 시군구 및 주변으로 확장해 왔다. 즉, 가까운 지역에 1년 내 분양한 유사 아파트가 있다면 그 아파트의 분양가를 넘으면 안 되고, 1년 내 분양한 유사 아파트가 없다면 인근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나 평균 매매가의 110%를 넘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심사 기준 변경으로 오는 24일부터는 분양한 지 1년이 지난 유사 아파트 평균 분양가의 105% 이내, 준공된 유사 아파트 평균 매매가의 100% 이내로 분양가를 더 옥죈다. 1년 내 분양한 유사 아파트가 있을 때는 기존과 동일하게 100% 이내에서 분양가를 심사한다.




‘지역’이니 ‘인근’이니 하는 용어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점은 차치하더라도 1년 내 분양한 유사 아파트의 분양가를 넘으면 안 된다는 기준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민간 아파트 분양가 심사를 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분양보증사고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함이다. 건설사에 분양보증을 내주는 대신 미분양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취지다. 이런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해당 아파트의 택지비·공사비 등 분양원가를 따져 분양가가 적정한지를 판단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주택도시보증공사는 단순히 기존 아파트 분양가를 넘지 못하도록 심사 기준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갈비탕 음식점이 개업을 할 때 최근 1년 내 장사를 시작한 인근 갈비탕집의 가격을 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격이다. 의류업체가 지점을 열면서 새로 출시한 재킷의 가격이 인근 유사 업체 매장의 재킷 가격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식이다. 물론 주거 공간인 아파트와 의식을 단순 비교한다는 게 어폐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다르지 않다. 

이런 ‘이상한’ 심사 기준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은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 통제가 근본적으로 정부의 집값 잡기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리스크 관리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시장 관리인 것이다. 분양가 심사가 주택도시보증공사의 공식적인 입장처럼 정말 분양보증 리스크 관리를 위한 것이라면 지금 같은 기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재광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은 지난해 10월 출입기자단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이런 지적에 대해 공감을 나타낸 바 있다. 금융권에 오래 몸담은 이 사장이라면 지금의 분양가 심사 기준이 이상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실제 이 사장은 당시 분양원가 공시항목이 확대되면 이를 반영한 심사 기준 개편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국토부 기자단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도 이 사장은 “분양보증을 관리하는 기준이 주변 시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상대적인 것인데,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 고민 중”이라며 “최근 분양원가 공개 항목이 늘었는데, 그런 것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21일부터 공공택지 내 민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항목이 기존 12개에서 62개로 크게 확대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분양보증 승인을 내줄 때 원가를 반영한 보다 정교한 분양가 관리가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심사 기준 개편에서는 그런 부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상한’ 심사 기준이 계속 쓰이면서 결국 현금부자들만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게 됐다. 

박민규 기자 yushin@asiae.co.kr [아시아경제]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