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공화국] '원전 폐기 선언' 국가들의 후회

    "독일은 8년 전 원전 발전 중단 결정을 내렸지만, 동시에 석탄 발전도 포기하지 못한 중대한 실수를 했다. 시민들은 에너지전환이 비싸고 공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의 탈원전 정책을 놓고 독일 유력 주간지 슈피겔은 "통일 이후 최대 프로젝트인 에너지전환이 실패 위기에 처해있다"고 보도했다. 슈피겔은 정부가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데 돈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전력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석탄 화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자국의 탈원전 정책 부작용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슈피겔 주간지 캡쳐

독일은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아 독일에는 전력 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전기요금은 오르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도 지지부진하다. 유럽연합(EU) 통계 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2017년 하반기 덴마크를 제치고 EU 최고치를 기록했다.

슈피겔은 "에너지 정책 변환에 따라 지난 5년간 에너지 비용은 최소 1600억유로(약 209조원)가 들었다"며 "정치권이 지역 주민의 반발을 두려워하여 송전선로 건설, 풍력발전 건설 등의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슈피겔은 독일이 계획대로 완전한 탈원전·탈석탄을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2조유로(약 2620조원)에서 3조4000억유로(약 4455조원)의 비용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산정했다.



독일, 대만, 일본 등 한국에 앞서 탈(脫)원전 정책을 실행했던 국가에서 해당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뒤늦은 후회로 정책을 철회한 국가를 교훈삼아 우리나라도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만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계기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2017년 8월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겪고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 정책을 사실상 포기했다. 지난해 11월 대만에서 진행된 국민투표는 탈원전 정책을 폐지하자는 취지의 결과를 냈다. 투표는 ‘2025년까지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을 완전 중단시킨다’는 전기사업법 95조 1항의 폐지에 동의하는지를 묻는 내용으로 진행됐는데,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의 59.5%가 해당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다만, 대만 정부가 지난해 국민투표 결과를 두고 ‘2025년’이라는 탈원전 시기를 논의한 것이지 탈원전 정책 자체를 폐지하는 내용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54기에 달했던 일본 원전은 일제히 가동을 멈춘 바 있다.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2030년까지 원전가동 제로(0)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화력 발전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전기요금이 비싸지자 국민들의 부담은 커졌다. 결국 2012년 말 출범한 아베 신조 정부는 2030년까지 에너지의 22~24%가량을 원전으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원전 재가동에 들어갔다. 지난해 일본은 5기의 원전을 재가동해 총 9기의 원전을 가동했다.

프랑스는 현재 75%인 원전 비중을 50%로 낮추는 탈원전 시기를 10년 늦추기로 했다. 프랑수아 드뤼지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에너지전환법 개정안을 내각에 제출해 에너지원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절반으로 줄이는 시점을 오는 2025년에서 2035년으로 10년 연기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 없이는 사실상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벨기에는 오는 2025년까지 단계적인 원전 폐쇄를 추진중인 상황이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많은 상황이다. 지난해 9월 벨기에의 전기요금은 메가와트시(MWh)당 411유로까지 폭등했다. 이는 원전이 정상 가동됐을 때 전기요금이 MWh당 60.19유로였던 것과 비교해 6배 이상 오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고리1호기 퇴역식에서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는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며 탈원전 정책을 알렸다./조선일보DB

한국에서도 탈원전 정책 이후 부작용이 잇따르자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탈원전 정책 이후 원전 이용률이 떨어지면서 원전 대신 비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늘리자 전력을 생산하는데 투입되는 연료비가 비싸졌다. 결국 지난해 한국전력(015760)은 208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6년만에 적자를 낸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5년만에 102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세계 곳곳에서 탈원전 정책은 연료비 증대, 온실가스 감축 취약의 부작용을 보이고 있다"며 "정부는 한전의 적자와 이산화탄소 발생이 탈원전 정책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원자력이 사라지면 나타날 문제점"이라며 "탈원전 정책을 원점에서부터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탈원전을 시도한 국가에서 전기요금 인상,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의 어려움으로 잇따라 정책을 철회하는 것을 보면 탈원전은 세계적인 추세가 아니다"며 "온실가스 감축 달성도 어려워지는 현실을 감안해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이 최근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 부터 설계인증서(DC)를 취득해 세계 최고 기술력을 인정받은 상황"이라며 "탈원전 정책으로 미국을 넘어 세계로 원전을 수출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했다.
안상희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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