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례에서 배우는 사업 재편 노하우 


가전 버린 GE, 脫필름 선언한 후지

신속·과감한 포트폴리오 혁신이 ‘열쇠’


     청소하다 발견한 잡동사니를 버리는 데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애정을 갖고 키워온 회사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해외 모범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마다 업종, 규모,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다양한 사례를 알아두면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GE는 상징과도 같던 가전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첨단기업으로 탈바꿈을 시도 중이다. 사진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GE 공장에서 엔지니어들이 첨단 가스터빈을 제조하는 모습. /View into the award-winning factory in Jenbach/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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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사업도 과감히 버려라 


PC 정리한 IBM, 4차 산업혁명 ‘총아’로 

핵심 사업도 버린다. 아무리 한 회사의 ‘아이콘’ 같은 사업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 바람이 거세게 부는 요즘 같은 ‘기술 전환기’에 특히 더 눈여겨봐야 할 전략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핵심 사업은 높은 브랜드 인지도 덕에 매각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핵심 사업을 미련 없이 정리하는 것으로 유명한 기업은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최근 들어 경영난에 시달린다지만 지금껏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이어온 배경에는 핵심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자리한다. 123년 역사를 자랑하는 가전사업부를 매각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뿐 아니다. 2007년에는 GE플라스틱스를 팔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금융 관계사를 줄줄이 분사했다. 2009년 방송사 NBC유니버설에 이어 2015년에는 GE캐피털 자산의 90%를 매각했다. 지난해에는 그룹 모태 사업인 전구 사업도 팔았다. GE는 가전을 중심으로 한 복합 그룹에서 빅데이터 기술 근간의 첨단 제조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지난해 4분기에는 오랜 실적 부진을 뒤로하고 5억7400만달러 이익을 내며 흑자전환에 성공하기도 했다. 


IBM은 상징과도 같았던 컴퓨터 사업을 정리했다. 2004년 PC사업부문을 중국 신생 기업 레노버에 17억달러 받고 팔아버렸다. IBM은 하드웨어 사업을 버리는 대신 컨설팅과 소프트웨어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IBM은 현재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글로벌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리눅스 개발로 유명한 소프트웨어 메이커 ‘레드햇’에 무려 340억달러를 베팅, 인수에 성공하며 경쟁력을 키웠다. 컨설팅사업부인 GBS도 연 20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등 기업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일본 후지필름은 아예 ‘필름’을 버렸다. 2000년만 해도 후지필름의 필름 부문 이익은 회사 총이익의 70%에 달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디카 시장 성장으로 필름 수요가 급감했다. 후지필름은 2004년 선제적으로 ‘탈(脫)필름’을 선언했다. 코닥 등 경쟁 회사보다 앞선 결정이었다. 총 2000억엔(당시 환율 기준 약 2조원)을 들여 필름 공장을 폐쇄하고 판매·유통망·인력 정리에 돌입했다. 단 필름 제조기술 활용성이 높은 화학·소재 등 영역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현재 후지필름 필름 부문 매출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000년대 초 인터넷 비즈니스 등장처럼 외부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핵심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성장 산업과 사양 산업을 구분하는 등 시장을 제대로 읽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콘셉트 안 맞으면 버려라 


필립스 ‘건강’ 3M은 ‘접착’에 초점 

핵심 사업을 버렸다고 기업 통일성과 정체성까지 잃어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바뀐 경영 전략과 비전에 맞게 사업을 덜고 또 새로 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콘셉트’다. 연관성이 떨어지는 사업 부문을 정리해야 회사나 브랜드 이미지가 더 공고해진다.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필립스는 헬스케어, 즉 ‘건강’을 새 콘셉트로 잡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2006년 반도체사업부문을 매각하고 TV 사업을 분사하는 등 전자 사업 분야를 정리했다. 대신 의료기기와 소비자 생활가전에 초점을 맞췄다. 현재 남아 있는 가전 사업 역시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에 맞게 방향을 틀었다. 면도기는 ‘건강한 피부’, 에어프라이어 등은 ‘건강한 식품’ 등의 콘셉트를 내세웠다. 건강을 위한 제품 생산 이미지를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접착제 원천기술을 보유한 3M은 ‘접착’이라는 단어를 사업 재편 키워드로 삼았다. 낚시용품 같이 접착과 관련 없는 사업은 팔았다. 대신 항공기 접착체, 치아 교정용 접착체 등 붙이는 것과 연관된 기업을 잇따라 인수했다. 접착제 기술은 최신 기기인 OLED나 항공기 래핑 등 기술 산업 분야에도 활용 가능하다. 현재 보유한 특허만 11만개가 넘는다. 


독일 지멘스는 적자 기업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세운 비전과 어긋나는 사업이라면 과감히 정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기 성장과 고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은 예외 없이 버린다’는 확고한 경영철학 덕이다. 2014년 발표한 ‘지멘스 비전 2020’에 따라 진행했던 사업 재편도 마찬가지다. ‘전력화·자동화·디지털화’를 외치며 가전 사업에서 철수했다. 


경쟁 밀렸다면 버려라 


“2등은 싫어” 소니·히타치 

치열한 시장 경쟁으로 1위 자리에서 밀려났다면 이를 과감히 포기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사업 분야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오랜 기간 가전업계 부동의 1위였던 소니 사례를 참고해볼 만하다. TV 시장에서 삼성과 LG에, PC·노트북에서 중국 저가 공세에 밀리기 시작하자 실적이 속수무책 악화됐다. 소니는 비용을 줄이면서 못하는 것을 버리기 시작했다. TV 사업은 몸집을 줄이고 고급화 전략에 나섰다. ‘바이오(VAIO)’ 브랜드로 유명하던 PC사업부는 과감히 포기했다. 2015년에는 소니 대표 상품이던 ‘워크맨’의 오디오·비디오사업부문까지 분사시켰다. 이에 힘입어 소니는 2017년 약 88조원 매출을 기록하며 보란듯이 부활에 성공했다. 최근 20년간 최고 매출이다. 


일본 최대 전기·전자기기 업체 히타치도 한국 업체에 밀린 반도체, 디스플레이, PC·TV 사업 등을 정리했다. 수익성이 높았던 LCD 사업은 파나소닉에,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은 웨스턴디지털에 매각했다. 대신 인프라 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한 자동화에 초점을 맞췄다. 히타치는 과거 약 900개에 달했던 그룹 계열사를 수년에 걸쳐 500개 정도로 통합했다. 


히타치의 IoT 슬로건/Hitachi/Which-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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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없는 자동차 회사’로 유명한 볼보도 비슷한 케이스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볼보는 과도한 경쟁을 예견, 승용차 제조업에서 손을 뗀 지 오래다. 1999년 미국 포드에 승용차 부문을 매각하고 트럭 등 상용차와 건설기계 부문에 주력해오고 있다. 


김희준 티플러스 상무는 “주주 이익과 CEO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는 회사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흑자가 나는 사업이라도 전년 대비 또는 타 사업 부문 대비 규모가 작다면 정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결정했다면 빠르게 버려라 


신속한 의사결정 도울 전문팀 필요 

사업 재편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신속한 이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가 1992년부터 2017년 사이 전 세계 5억달러 규모 이상 주요 M&A 사례를 분석·평가한 결과다. 사업 정리 발표 후 매각까지 8개월~1년 소요된 기업은 주주 초과 이익이 5.8% 늘었다. 반면 1년 초과~2년 미만 시간이 걸린 기업에서는 주주 이익이 오히려 10.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How to win at M&A/McKinsey

https://www.mckinsey.com/business-functions/organization/our-insights/the-organization-blog/how-to-win-at-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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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한 사업 정리에는 ‘사업정리전담팀’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공개 발표를 하기에 앞서 계약서나 데이터, 또 분리 후 시나리오 등 복잡한 사안에 대해 전문적인 검토가 뒷받침돼야 빠른 사업 재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GE ‘사업개발팀’이 좋은 사례다. 모든 사업 개발 책임자들은 연간 전략회의에서 인수합병을 통한 전략적 목표 달성 방안을 발표해야 한다. 새해의 전략 목표와 현 사업 포트폴리오를 비교하고, 새 목표 달성을 위해 매각해야 할 사업을 최고 경영층과 논의한다. 


아예 시간 단위를 단축한 시스코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시스코는 52일을 1년으로 환산하는 ‘인터넷비즈니스 연도’라는 가상의 개념을 만들어내 사업 재편에 활용 중이다. 




워낙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공격적이고 신속한 사업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준호 L.E.K컨설팅 대표는 “사업 재편을 검토할 때는 첫째 달라진 시장 상황을, 둘째 스스로 사업 역량과 경쟁력을 판단해야 한다. 최근에는 첫 번째가 훨씬 중요하다. M&A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사업 역량이 없어도 돈 주고 다른 기업을 사오면 되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과 다른 기업 역량을 평가할 M&A전담팀이나 인력 필요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매경이코노미 제2008호 (2019.05.15~2019.05.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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