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원전 학생들...“원전 과학은 거부, 신재생 기술만 맹신…이율배반이다”


원전 지키려 거리로 나선 학생들


   보다 못해 나섰다. 단체를 구성해 주말이면 기차역과 등산로 입구 등에서 ‘원전 살리기’ 서명을 받았다.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핵인싸)도 만들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고 있다. 단체 이름은 ‘녹색원자력학생연대’. KAIST 원자력 전공 학생들이 먼저 움직였고, 서울대·포스텍 등 13개 학교가 가세했다. 올 2월 2일 대전역에서 처음 서명을 받기 시작해 이젠 전국으로 번졌다. 활동 개시 100일째인 지난 주말(5월 12일)까지 4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이들은 수많은 시민을 만나며 무얼 느꼈을까. 후배가 끊기다시피 했다는 소식은 어떤 소회를 던졌을까. 탈원전 정책이 바뀔 것이란 희망은 갖고 있을까. 생각을 들어봤다. 

   

녹색원자력학생연대 100일째

‘원전 지지’ 4만 명 서명 받아

“사우디서 온 원전 유학생들이

한국의 앞선 기술 사라질까 걱정”


 

KAIST에 모인 녹색원자력학생연대 활동가들. 왼쪽부터 김정환·위선희씨, 조재완·홍현식 공동대표, 감동훈씨. [프리랜서 김성태]


질의 :왜 움직이기 시작했나.

응답 :▶조재완=“국가 에너지 정책이 잘못 수립됐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가짜 뉴스를 통해 힘을 얻어갔다.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국민과 얘기하며 가짜 뉴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감동훈=“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한 뒤 방사능 괴담이 엄청나게 퍼졌다.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쏟아내는데 정부가 숨기고 있다느니 하는 것 등이다. 일부 교사들까지 어린 학생들에게 가짜 뉴스를 전파한다더라. 국민이 가짜 뉴스를 믿고 공포감에 휩싸여가는 게 느껴졌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김정환=“고향(전북 고창)이 영광 원전에서 멀지 않다. 그래도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탈원전 이후 가짜 뉴스가 퍼지면서 고향 어르신들 말씀이 바뀌었다. ‘저런 거(원전) 있으면 나중에 애를 못 낳지 않느냐. 네가 공부해서 높은 데 올라 저 흉물 치워버려라’고들 하신다.”


홍현식=“후쿠시마 사고 이후 고등어 방사능 괴담 같은 것도 있지 않았나. 그 부분은 참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일본과 한패냐’는 반응이 돌아와서다. 할아버지는 강제노역 피해자셨는데, 나는 진실을 말하려다가 친일파 소리 듣는다.”


위선희=“환경 운동을 하고 싶어 동참했다. 나는 방사선 의료 영상을 전공한다. 탈원전과는 직접 관계없다. 하지만 탈원전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단체 이름에 ‘녹색’이 들어간 건 원자력이 친환경적이란 의미다.”

  

질의 :탈원전 선언이나 원전 관련 가짜 뉴스는 진작 나온 얘기다. 그런데 활동은 올 2월에야 시작했다.

응답 :▶조=“전부터 학생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다 대만이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뒤집은 게 자극이 됐다. 우리도 움직이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게 됐다. KAIST에서 평소 자주 의견 나누던 학생들이 모여 활동 방향과 내용을 정했다. 가짜 뉴스에 맞서 거리에서 진실을 설명하고 서명을 받자고 했다. 그걸 전국 원자력학과 학생 대표들에게 알려 모두 14개 학교가 나서게 됐다.”


    


질의 :서명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했을 것 같다.

응답 :홍=“격려도 많이 듣고 욕도 먹는다. 생각보다 20, 30대 젊은 층 호응이 많다.”


위=“이른 봄에 추울 때 커피·핫팩을 주시는 분도 많았다. 활동에 보태라며 돈을 주시기도 했다. 느낌에 70%는 원전을 지지하는 듯했다.”


김=“가짜 아니냐고 의심하는 시민도 있었다. ‘내가 찾아보니 KAIST에 원자력공학과란 게 없다. 사칭하는 게 분명하다’며 사진을 찍어 갔다.”


감=“거의 두 시간 정도 ‘너희가 틀렸다’고 하신 분도 있다. 가만히 들어보니 원자력에 실망한 부분이 있는 것 같더라. 예전에 비리 같은 것 때문에. 그런 잘못된 부분은 수술이 필요하다. 다만, 과학 자체를 나쁜 것으로 보는 것은 문제다. 우리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 잘못된 지식이 퍼질 때 너무 가만히 있었다. 학자라면 알기 쉽게 설명할 의무가 있는데…. 그런 게 부족했다.”

  

질의 :원자력을 공부하려는 후배들이 확 줄었다. 마음이 착잡할 텐데.

응답 :▶김=“KAIST는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한다. 내가 원자력을 택한 게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을 때다. 당시 6명 밖에 원자력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끼리 얘기했다. ‘우리보다 더 적게 들어오는 후배들은 없겠지.’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됐다. 지난해 4명이었다.”




감=“원자력은 한국이 세계 톱 수준이다. 국내에 있어도 세계 최고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굳이 외국에 나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취업 기회가 줄어 외국에 나가려고 한다. 인력 육성 투자는 한국이 하고, 성과는 외국이 누리게 됐다.”


홍=“미국 아르곤연구소에 선배가 있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연구자다.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하는 데 자리가 없다. 나도 겁이 난다. 그런 선배도 자리를 못 잡는데….”


김=“부모님께서 ‘원자력 일자리 줄어든다는데 계속할 거냐. 다른 분야 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친구들은 두 부류다. ‘탈원전은 오래 갈 수 없는 정책이니 박사과정까지 가서 버티면 된다’는 쪽이 있고, 진로를 바꿔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취직하는 쪽이 있다.”


대전역에서 서명을 받는 모습과 학생들이 만든 전단. [사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질의 :원자력을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도 많다고 들었다. 그들 반응은.

응답 :▶김=“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학생들이 있다. 자신들이 제대로 배우기 전에 한국 원자력 기술이 없어질까 봐 걱정했다.”

  

질의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평가하면.

응답 :▶조=“전력수급 계획의 목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다. 여러 방안을 놓고 최적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재생 비율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덜컥 먼저 정해버렸다.  수순이 바뀌었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라)’다.”





위=“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고려가 없다. 골자가 빠졌다.”


홍=“신재생에 대해서는 ‘원가가 뚝 떨어진다’라느니, ‘저렴하고 효율적인 에너지저장 장치를 개발하면 된다’라느니 온갖 희망을 다 붙여 얘기한다. 반대로 사용후핵연료를 다시 연료로 쓰는 기술 같은 데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쪽에 대해서는 기술 발전을 맹신하고, 원전에 대해서는 과학 자체를 거부한다. 이율배반적이다.”


조=“에너지 계획은 지금 기술로 10년 뒤까지 공급 방안을 마련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10년 뒤에도 나올지 말지 모르는 신재생 기술을 갖고 계획을 세웠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질의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수정할까.

응답 :▶위=“지인들과 1대 1로 앉아서 한참 얘기하면 생각을 바꾼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질의 :올 3월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범국민서명운동본부’가 34만 명 서명부를 청와대에 보냈다. 답신은 ‘산업자원통상자원부로 문의하라’는 한 줄짜리였다.

응답 :▶감=“허무했다. 다른 청원에는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면서…. 하지만 우리는 학자다. 배우고 연구한 사실을 일반인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다. 정책을 바꾸는 것 자체는 우리가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모두 원전에 반대했다가 원전에 대해 공부한 뒤 노선을 뒤집었다. 선거 때는 자기네 색깔을 위해 탈원전 같은 것을 내세우더라도, 실제 미래 계획을 세울 때는 과학적 근거를 통해 철회할 필요가 있다면 인정하고 철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줬으면 한다.”

  

질의 :4만 명 서명을 받았다. 언제까지 활동을 계속할 건가.

응답 :▶위=“일단은 범국민서명운동본부를 합쳐 50만 명이 목표다(현재 45만6600명). 이 정도 의견을 무시할 수 있을까. 그 다음은…. 탈원전 정책을 바꿀 때까지 하겠다.” 

권혁주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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