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멋은 균형에서 나온다 [전정일]




나무의 멋은 균형에서 나온다 [전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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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멋은 균형에서 나온다

2019.03.16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역시 다양한 식물이 있거나 멋진 나무가 있는 자연입니다. 그런 곳 중의 하나로 강원도 오대산에 위치한 월정사 입구에 수백 년 된 전나무 숲이 있습니다. 특별히 식물을 공부하지 않은 분들도 이곳에 가면 감탄을 멈추지 못합니다. 특히 주변이 온통 하얀 눈으로 두툼하게 덮인 겨울 산중에 선명한 녹색으로 하늘을 향해 곧게 서 있는 전나무들을 보면 쉽게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높이에 감탄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곧게 뻗은 줄기를 보면서 굳건한 기상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많은 말로 이 모습을 표현하려 해보지만 모두 사족에 불과하고 그저 ‘멋지다’라는 한마디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는 많은 곳에 있습니다. 강원 문막 반계리 은행나무, 경남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 전남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 등등 전국에 다양한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멋진 나무들의 공통점은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수많은 비바람에 가지가 부러지고 온몸에 상처를 입었어도 그 굳건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세히 보면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모양과 크기, 개수가 모두 다릅니다. 그렇지만 나무에서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어느 쪽에서 보든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굳건하고 멋지게 보이는 것은 바로 이 ‘균형’ 덕분인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멋진 모습으로 서 있지만 예전에 더욱 멋진 모습이었던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충북 보은 속리산의 정이품송이 바로 그 나무입니다. 800년이 넘게 살면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균형’과 굳건함을 보여주던 이 나무는 강풍과 폭설로 크게 두 차례 가지가 부러지면서 균형을 잃어버렸습니다. 멋진 모습에 상처가 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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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 제299호인 경남 남해군 창선도 왕후박나무. 수령 500년을 자랑한다. 

모든 생물이 그렇긴 하지만 특히 나무를 포함한 식물은 한자리에 머물러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식물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햇빛, 물, 토양, 온도 등이 그 환경을 대표합니다.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식물은 아예 태어나지 못하거나 태어났다고 해도 금세 죽고 맙니다. 토양의 구조나 담고 있는 영양분이 적당하지 않아도 식물은 잘 살지 못합니다. 물도 햇빛도 모두 너무 많거나 너무 적어도 식물은 잘 살지 못합니다.

식물이 균형을 찾는 노력은 우리가 평소 보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식물의 몸체 중에서 땅 위로 나와 있는 부분만 보고 있습니다. 땅속에 있는 부분, 즉 뿌리와 땅 위로 나와 있는 전체 부분의 비율에서도 균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확인하기로는 식물은 놀랍게도 이 비율을 1:1로 맞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토양에 물이 너무 많은 곳에 사는 식물의 뿌리를 캐보면 뿌리가 잘 자라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뿌리가 자라지 않아도 물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식물은 몸이 허약해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쉽게 쓰러집니다. 균형이 깨져 삶도 망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이 삶의 균형을 찾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식물은 꽃을 피우기 위해 달아 두었던 꽃눈을 상황에 따라 모두 피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꽃이 진 후 열매가 달리게 되는데 달렸던 열매를 모두 키우지 않고 일부를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삶의 균형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입니다. 어찌 보면 식물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균형을 찾는 일로 가득 찬 것 같습니다. 그 균형을 찾아 유지할 때 식물은 멋진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균형 잡힌 멋진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의 삶, 우리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비만, 성인병, 과로사 등등 많은 것들이 불균형으로 인해 삶이 망가지고 있는 예들이 아닐까 합니다. 빈부격차, 노사갈등, 노노갈등, 도농격차 등등 사회적 불균형도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 삶과 사회, 국가가 균형을 찾아 멋진 나무의 모습으로 성장해가길 기원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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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신구대식물원 원장

서울대 임학과 학사 석사 박사. 식물분류학 및 수목학 전공. 
서울대 수목원 연구원, 중국 남경식물연구소・식물원 교환연구원 거쳐
2001년부터 신구대 교수로 재직. 
저서: 길에서 만나는 나무 123, 자연자원의 이해(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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