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 가는 성북동 길, 쉽지 않은 길 [정달호]

길상사 가는 성북동 길, 쉽지 않은 길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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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가는 성북동 길, 쉽지 않은 길

2019.01.21

부자동네로 유명한 성북동(城北洞)에다가 수많은 스토리가 있는 길상사(吉祥寺). . . 이 둘을 함께 넣은 제목만 보고서도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얘기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혹 드시나요? 길상사 하나만 해도 독자님들은 많은 것을 떠올리실 겁니다. 무소유(無所有)의 법정스님이 그 한켠에 머물던 절집, 기생 김영한(1916~1999)과 월북시인 백석(1912~1996)의 애틋한 로맨스, 불심(佛心) 깊은 요정 주인 길상화(吉祥畵)보살(김영한)의 ‘무소유’ 기증으로 사찰(寺刹)이 된 대원각(大苑閣)의 대변신 . . . 이런 환상적 이야기를 품은 길상사 하나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가 될 법하지 않습니까. 물론 길상사는 성북동 깊숙이 자리하고 있지요. 서울 중심에서 멀지 않으면서 풍광이 뛰어난 곳을 꼽으라면 평창동과 성북동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둘레길이 동네를 질러가는 평창동과는 달리, 제게 성북동과 길상사는 익숙지 않은 동네, 가보지 않은 사찰입니다. 

지난해 12월 그믐께, 그 해 들어 한파가 처음 닥치던 때였습니다. 삼청동의 한 화랑(畵廊)을 찾아볼 일이 있어 광화문에서 택시를 탔지만 노령의 기사가 길을 찾지 못해 어물어물하다가 삼청동을 훌쩍 지나 성북동으로 들어섰습니다. 찾는 곳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니 이럴 바엔 아예 길상사나 한번 구경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그리 향하게 되었습니다. 한파 속이지만 택시 안에서 보는 성북동의 모습은 수려하였고 그 가운데 자리한 길상사는 과연 이름처럼 길(吉)하고 상서(祥瑞)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길상사를 대충 훑어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간에 쫓기기도 하였거니와, 눈이 쌓인 마당을 오래 돌아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라도 다시 와서 자세히 둘러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사진 몇 장만 급히 찍고 나서 돌아오는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올 때는 기세 좋게 택시로 잘 왔는데 삼청동으로 돌아가려니 초행길에 지리를 잘 몰라 좀 막막하였습니다. 추위에 떠밀리다시피 하면서 도착하는 마을버스에 무작정 올라탔는데 겨우 한 정거장 지나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향이 제가 가는 곳과 달랐기 때문인데 기사에게 물어보니 거기서 삼청동으로 가는 버스 노선자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큰길이 있는데 왜 버스가 없는 거지, 하면서 일단 삼청동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언덕길인 데다가 길가에 눈이 쌓여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내에는 남아돌아가는 그 흔한 택시마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자 동네에 택시가 들어올 일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테지요. 위기감이 엄습하는 이런 조건에서는 우선 몸이라도 움직여야 하므로 대략 방향을 잡고 걸어 내려갔습니다. 그때, 길 반대편에 서 있던 주차 지도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선생님, 그쪽으로는 걸어가는 길은 없습니다. 삼청동으로 가려면 택시를 타든지 아니면 한성대(漢城大)쪽으로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합니다.” 라고 외치다시피 말하였습니다. 

아니 버스도 안 다닌다면 걸어갈 수밖에 없는데 걸어갈 수도 없다니 이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린가, 하며 되물어보았더니 두 동네를 잇는 길 중도에 있는 2백 미터가량의 터널 안으로는 사람이 걸어서 통행할 수 없게 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갈수록 태산이구만, 하면서 지나가는 차에 편승이라도 해보려고 손을 흔들어댔지만 여남은 차들이 멈칫하는 기색도 없이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한 이십여 분을 추위에 떨다가 겨우 택시 하나를 붙잡아 삼청동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속에서 당장 화가 치밀었습니다. 서울 아니라 웬만한 시골에도 길이 있으면 버스가 다니는 곳이 우리나라 아닙니까. 이렇게 도로가 잘 마련된 곳이 달리 또 있을까 싶게 우리의 도로망이나 버스노선은 치밀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성북(城北) 즉 도성 북쪽, 국무총리 공관이 위치한 삼청동에서 불과 차로 몇 분 거리의 성북동 길에 버스가 다니지도 않고 사람이 걸어갈 수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고 말입니다.

이 터널이라는 게, 차선 두 개가 있어 차들은 양 방향으로 쌩쌩 달리는데 사람이 그 안을 통과할 수 없게 돼 있다니 이거 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면서 길에 대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 터널 길로는 차와 자전거만 다니게 돼 있는데 한가히 달리는 어떤 자전거가 그 위험한 길에 들어서겠습니까. 그러니 짧은 터널을 낀 그 길은 애시 당초 자가용과 택시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대한민국, 그것도 수도 중심부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성북동 주민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저는 이런 이상한 길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발합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그래서 고급 요정이 일찍이 자리 잡았던 이 성북동에 걸어서 들어갈 수 없다는 상황을 말입니다. 이것은 바로 평등(권)의 문제이자 자유(권)의 문제입니다. 

네이버 ‘길 찾기’에 들어가 보면 굳이 걸어서 성북동으로 들어갈 수 있게는 돼 있지만 그러려면 골목과 골목을 찾아 이리저리 우회(迂廻)해야 하는데 터널을 낀 길보다 20여 분이 더 소요됩니다. 사실상 도보로 성북동으로 바로 들어가는 길은 막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성북동 주민들을 포함하여, 대원각을 드나들던 고관대작과 부유층, 특수층만이 그 멋진 풍광을 즐기도록 고안된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평등의 문제라고 감히 말하는 것이며, 도보자의 이동의 자유를 억제하니 감히 자유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라면 그 흔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당국자 누구라도 알고 있는지, 또 어쩌다 안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개선할 방안을 고구(考究)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일부 주민들로서는, 터널이 외부로부터의 도보 진입을 막아줌으로써 마치 성(城)을 보호하는 해자(垓字) 역할을 해주는 셈인데 이걸 도보 통행에 몽땅 열어주라는 거야? 하면서 불안해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고발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 . . 그리고 이런일을 아예 모르고 있거나, 만일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해 왔다면, 이에 책임이 있는 당국과 함께 말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갑니다. 

‘터널의 찻길 하나를 막아서 사람과 자전거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오가는 차는 외길을 사용하되 터널 양측에 신호등을 잘 달아서 양측에서 번갈아 일방으로 달릴 수 있도록 교통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 또는 그것이 도로 안전에 바람직하지 않다면 터널 안에 자전거.도보 길을 따로 내어 사람과 자전거가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몇 백 미터에 불과한 터널 안에 인도(人道)를 새로 내기로 한다면 그것이 대한민국의 당국으로서 큰돈이 드는 대단한 역사(役事)는 아닐 것입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속한 시일 내에 이 불합리한 상황을 타개할 어떠한 개선책이라도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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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무총리공관에서 길상사까지 자가용이나 택시로 가는 길: 9분 소요, 직통 터널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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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무총리 공관에서 길상사로 걸어가는 길: 최소한 47분 소요, 골목길로 우회
국무총리공관 → 길상사 (도보 길찾기)
http://naver.me/5X5enL9K

3. 국무총리공관에서 길상사까지 버스로 가는 길:최소한 48분 소요, 여러번 환승 요
국무총리공관 → 길상사 (대중교통 길찾기)
http://naver.me/GEQcYf87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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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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