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건축·항해…19세기까지 이어진 컴퍼스(Compass)의 활약

천문학·건축·항해…19세기까지 이어진 컴퍼스(Compass)의 활약 

조수남 과학사학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만나는 수학 도구 중 하나는 바로 컴퍼스일 거예요. 다들 수업시간에 컴퍼스로 원을 그려본 적 있죠. 중학생들은 평행선이나 삼각형을 작도하는 법을 배웠을 거고요. 자와 컴퍼스만으로 주어진 조건에 맞는 도형을 그리는 것을 작도라고 해요. 그렇다면 컴퍼스는 과연 언제부터 사용됐을까요? 오늘은 바로 그 컴퍼스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해요.  

  

현대의 제도용 컴파스/Dearing Dra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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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로 읽는 과학사 1. 컴퍼스

컴퍼스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어요.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들은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일정한 속력으로 원을 그리며 도는 등속원운동을 하고 있다고 여겼어요. 지구를 중심으로 크리스털처럼 투명한 천구가 있고, 천구에 수성·금성 같은 행성들과 별들이 박혀서 돌며, 이렇게 구성된 전체 우주는 구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천체 운동에 대한 계산을 하던 수학자들에게 원은 너무나도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원을 그리기 위해 고안된 컴퍼스  

더욱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우주에서 가능한 운동을 오로지 등속원운동만으로 국한했어요. 플라톤은 당시에도 이미 위대한 철학자였기에, 그의 제자들은 어떻게든 등속원운동만을 이용해 복잡한 천체 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경주에 나섰죠. 자연히 천문학 계산 노트에는 수많은 원이 빽빽하게 들어차기 시작했어요. 천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가상의 원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컴퍼스가 고안된 겁니다. 




1. 1250년경에 제작된 모자이크. 예수가 컴퍼스를 가지고 세계를 창조하는 모습을 그렸다.



컴퍼스가 널리 사용되면서 학자들은 그것으로 원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그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중학교 때 배우는 평행선이나 삼각형 외에 다양한 기하학적 도형을 작도할 수 있는데, 그중에는 정다각형도 있었어요. 정다각형으로 이루어지고 한 꼭짓점에 모이는 면의 수가 같은 다면체를 정다면체라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오로지 다섯 개만 존재하는 정다면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플라톤은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물질의 형상을 정다면체와 연결하기도 했죠. 그런 정다면체를 구성하는 정다각형을 완벽하게 그리는 데 쓰이는 컴퍼스는 학자들에게 필수 도구였겠죠.   



  

컴퍼스와 눈금 없는 자만 사용해 작도  

이후 고대 그리스의 수학을 집대성한 유클리드는 유명한 『기하학 원론』이라는 책에서 기하학 작도에 컴퍼스와 눈금 없는 자만 사용할 것을 제안했어요. 기하학은 길이나 넓이처럼 셀 수 없는 양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수치보다는 1:2나 2:3과 같은 길이나 넓이 등의 비가 더 중요해요. 예를 들어 어떤 두 선분 p와 q의 길이가 1:2 비율이라고 합시다. 먼저 컴퍼스의 다리를 벌려 p의 길이가 되도록 한 다음, 컴퍼스의 한쪽 다리(보통 쓰는 컴퍼스의 뾰족한 부분)를 직선 위의 한 점에 고정해요. 컴퍼스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직선과 교차하는 점을 A와 B로 표시하면 AB의 길이가 q의 길이가 되죠. 즉 컴퍼스를 이용하면 기하학 도형이나 선분 등을 작도하는 데 문제가 없어요. 


2. 여러 개의 발을 가진 컴퍼스.



고대인들에게 그런 컴퍼스는 놀라운 도구처럼 여겨졌겠죠. 고대 그리스의 수학이 전해진 중세 유럽에서 창조주 신을 묘사할 때 컴퍼스를 들고 우주를 창조하는 신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만큼 과거 서양 문명에서 컴퍼스는 중요하게 여겨졌어요.  




복잡한 계산 위해 다양한 컴퍼스 제작  

근대 초에 이르러 복잡한 수학 계산을 할 일이 늘어났어요. 가령, 지도 제작자가 정확한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측량과 축척(실제 거리와 지도 위의 거리 간의 비율)을 구해야 했고요. 건축가들은 실제 건물과 같은 비율을 지니도록 정확한 설계 도면을 그려야 했어요. 군인들은 포신을 어느 정도 올려서 포를 쏘아야 하는지 포의 각도를 정확하게 계산해야 했죠. 항해사들은 지도상의 거리와 실제 바다 위의 거리를 정확하게 일치시켜야 했어요. 이 모든 계산을 위해서는 복잡한 계산과 작도가 필요했죠. 기존의 컴퍼스로는 이런 필요가 충족될 수 없었습니다. 눈금이 없는 컴퍼스로 그릴 수 있는 건 제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렸으니까요. 


3. 갈릴레오가 1606년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2세에게 증정한 컴퍼스. 기하학 작도 외에도 복잡한 비례, 산술 계산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사진=갈릴레오뮤지엄]




결국 몇몇 수학자들이 컴퍼스를 개선하기 시작했어요. 컴퍼스의 뾰족한 발을 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로 만들어 다양한 거리의 비를 계산할 수 있도록 한 경우도 있었고요(사진 2). 컴퍼스 다리 사이에 각도기·추 같은 걸 달아서 기울어진 각도를 계산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있었어요(사진 3). 또한 컴퍼스의 다리에 다양한 방식으로 눈금을 새기거나(사진 3) 경첩을 다리 끝쪽이 아니라 중간에 달아서 아래쪽 다리와 위쪽 다리를 둘 다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경우(사진 4)도 있었어요.


4. 1830년경에 제작된 비례 컴퍼스.



우리가 잘 아는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시 당시에는 컴퍼스로 유명했던 인물이에요. 갈릴레오는 파두아대학의 수학 교수로 있던 시절, 새로운 방식의 컴퍼스를 고안하여 개인적으로 컴퍼스 사용법을 가르치면서 부수입을 올렸죠. 그는 컴퍼스 사용법에 관한 책도 썼는데, 컴퍼스 그림은 싣지 않았어요. 책을 보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할까 걱정했던 거죠. 실제 발다사르 카프라라는 사람이 갈릴레오의 서적을 보고 거기에서 설명하는 컴퍼스가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주장했던 적도 있어요. 물론 갈릴레오는 곧바로 카프라에게 소송을 걸었죠. 갈릴레오는 재판부에 카프라의 책에 오류가 있음을 전달하며 카프라는 자신의 컴퍼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어요. 결국 갈릴레오가 소송에서 이기며, 카프라의 책은 모두 폐기됩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도 갈릴레오는 자신이 만든 컴퍼스의 이미지를 공개하지 않았어요. 한참이 지나 1640년에 두 번째 판을 출판하면서 공개했죠. 




5. 다리 사이에 각도기와 추가 달린 컴퍼스로 포신의 기울어진 각도를 재고 있는 모습.



한편 갈릴레오 외에도 근대 초에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컴퍼스들이 제작되었어요. 이러한 컴퍼스들은 수학 분야는 물론이고, 건축·측량·항해·공학·디자인 등에 유용하게 사용되었죠. 다양한 도구들이 유용하게 사용되면서 도구 제작사들은 17세기 무렵부터 여러 도구를 케이스에 넣어 세트로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18세기에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형태와 유사하게, 연필을 꽂아서 사용할 수 있는 컴퍼스도 고안되었어요. 사실 이전에 만들어진 컴퍼스에는 연필이나 펜을 꽂을 수 있는 곳이 없었고, 뾰족한 다리로 홈을 판 뒤에 잉크를 붓는 방식으로 그렸답니다. 연필을 꽂을 수 있는 컴퍼스가 나왔을 때 얼마나 편리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컴퓨터 개발 후 컴퍼스의 역할  

이렇게 다양한 컴퍼스가 개발되었는데, 처음 보는 것들이 많죠? 사실 이런 컴퍼스들은 19세기까지는 활발하게 사용되었어요. 수학자는 물론이고, 천문학자·건축가·항해사 등에게 컴퍼스는 아주 유용한 도구였죠. 그런데 1620년에 에드워드 군터가 고안한 계산자가 이후 계속해서 개선되면서 19세기에 이르면 컴퍼스를 능가하기 시작했어요. 계산자는 복잡한 곱셈이나 나눗셈은 물론이고, 로그나 지수, 제곱근, 삼각법 계산 등도 할 수 있었어요. 공학자들에게 계산자는 필수적인 도구였죠. 그런데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어요.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계산자가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한 거죠. 


              계산자를 이용한 번거로운 계산을 IBM 컴퓨터가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음을 강조한 

               IBM 컴퓨터 광고(1851).





현재는 전문가들이 작도를 할 때 대부분 캐드(CAD)나 매스매티카(Mathematica)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요. 따라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더 이상 컴퍼스를 사용하지 않죠. 하지만 그렇다고 컴퍼스를 아예 소개하지 말거나 가르치지 말자는 의견이 있다면, 그 의견에는 반대예요.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건 그러한 프로그램이 결국 구현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겠죠. 계산기나 컴퓨터가 개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바로 그래서예요. 사고력은 쉽게 길러지는 게 아니거든요. 

글=조수남 과학사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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