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학교?.."학교 건축에 대한 통념을 깨다"

삼각학교?.."학교 건축에 대한 통념을 깨다"


경기 남양주 동화고의 삼각학교, 송학관


   대한민국 학교 건축은 전국 어디나 비슷하다. 왜 그럴까. 1962년 처음 도입된 표준설계도가 1990년대까지 전국 학교에 의무적으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장방형의 운동장에 일자(一字)형 복도를 갖춘 설계도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밝혔듯이 이 설계도는 기본적으로 감시와 통제를 최우선시하는 교도소 설계도와 동일하다. 1990년대 초 학교 시설의 현대화 사업이 시행되면서 의무 적용은 사라졌다지만 일자가 T자나 L자형으로 바뀌었을 뿐 대동소이하다.  





장소 경기 남양주시 도농동 동화고등학교  

준공 2015년 1월 

설계 네임리스 건축(나은중·유소래)  

수상 2015 대한민국 교육부 우수시설학교상 2014 AIA 뉴욕건축가협회상,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그 이유는 막상 교육현장에서 이에 변화를 주려면 거센 저항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학교 교사들도 문제지만 건축예산을 대부분 지원하는 교육청 공무원들이 “선례가 없다”며 반대하기 일쑤다. 관료주의에 물든 이들의 눈에는 낯설고 새로운 것은 곧 위험하고 문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창의적이고 세련된 설계임을 인정할 때조차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한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건축을 이 학교만 지으면 그렇지 못한 전국 수많은 학교의 학생들이 겪는 상대적 차별은 어떻게 할 것이냐.”




선례가 된 이례


경기 남양주시 도농동 아파트촌에 둘러싸인 동화고 운동장에서 독특한 외형을 자랑하는 삼각학교 ‘송학관’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사진 제공 · 노경] 


삼각학교 바로 위에서 촬영한 모습이다. ‘삼각형 안 삼각형’으로 중정이 살짝 틀어지게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제공 · 노경] 




송학관 투시도. 중정 공간이 건물 2, 3층 위에 붕 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송학관을 상징하는 소나무 배경의 삼각학교 서남면. 노출콘크리트 가운데에 피라미드 형태로 창이 나 있다. 

[지호영 기자] 


건축에서 삼각형은 아주 이례적인 경우에만 쓰인다. 그런데 그 보수적인 대한민국 학교 건물에 삼각형 건축이 세워졌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경기 남양주시 도농동 동화고 내 고3 학생의 학습동 ‘송학관(松鶴館)’이다.  




동화중고교는 1950년대 세워진 역사 깊은 학교다. 장방향의 대운동장을 가운데 두고 1960~90년대 학생들 수요에 맞춰 그때그때 지은 일자형 학교 건물에 둘러싸인 전형적 수도권 내 학교 건물이다. 그래서 대운동장 맞은편에 3층 높이의 삼각형 구조로 지은 송학관을 마주하는 순간 다른 시공간에서 잘못 편입된 신기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먼저 운동장을 면한 북면이 알루미늄 루버 격자로 감싸인 유리창이었다. 옆에서 바라보면 무슨 신전을 보는 듯한 엄숙함이 감돌았다. 운동장 남쪽 꼭짓점에서 시작되는 서남면은 동화중을 면하고 있는데, 가운데 피라미드 형태의 유리창 구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회색빛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졌다. 2000년대 들어 유행한 노출콘크리트 소재의 학교 건축 역시 드물다. 그리고 텃산을 등진 동남면은 노출콘크리트와 상대적으로 작은 유리창 구조로 돼 있다. 


알루미늄 루버 격자로 감싸인 유리로 지어 투명성을 강조한 삼각학교 북면. [사진 제공 · 노경]




삼각형 구조라는 것도 신기하지만 3면의 건축 자재와 구성이 다른 점도 눈길을 끈다. 북면이 전면 유리창 구조인 것은 햇빛이 덜 드는 북향임을 감안한 선택이다. 50cm 깊이의 알루미늄 격자구조는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동시에 운동장 쪽으로 햇빛이 반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서남면의 노출콘크리트는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이 다른 중학교 공간과 고등학교 공간을 차단하는 장치다. 동남면은 상대적으로 햇빛이 가장 많이 드는 공간이라 창의 크기가 작다.


삼각학교 옥상에서 내려다본 중정. [사진 제공 · 노경]


2층 위에 떠 있는 중정 1층에 해당하는 공간. 다목적학습실로 쓰이고 있다. [사진 제공 · 노경]




동화중을 면하고 있는 송학관 서남면. [사진 제공 · 노경]


삼각학교의 더 강렬한 차별성은 ‘삼각형 내 삼각형’으로 조성된 중정(中庭)에서 찾을 수 있다. 삼각학교 1층에는 교무실과 2개의 이동수업실, 그리고 강당으로도 쓰이는 다목적학습실이 있고 3학년 1~14반 교실은 2, 3층에 몰려 있다. 이들 교실이 바깥 면을 따라 설치됨에 따라 복도 역시 삼각 형태로 조성됐다. 그 안쪽으로 옥상까지 트여 하늘이 보이고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 어두운 복도를 환하게 비추는 중정을 설치한 것이다.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학교 건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그나마 아이들이 가장 많이 어울리는 사교 공간이 복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복도는 늘 어둡고 차가운 공간으로만 기억돼 밝고 환하며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생각에 유리중정을 구상하게 됐습니다.” 


외부 삼각형과 살짝 틀어진  삼각형으로 중정을 만들어 생긴 틈새 공간. 덕분에 2층과 3층 학생 간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사진 제공 · 노경]


삼각학교의 복도는 일반 학교의 천편일률적인 복도와 달리 마름모꼴을 이뤄 실내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사진 제공 · 노경]




설계를 맡은 유소래 네임리스 건축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나은중 네임리스 건축 대표의 아내다. 부부 건축가가 설계한 이 유리중정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요소가 숨어 있다. 외부 삼각형과 일부러 각도가 틀어지게 조성한 것이다. 이에 한쪽 복도의 폭이 일률적이지 않고 점점 넓어지거나 좁아지는 변화가 생겼다. 동시에 그 틈새를 통해 2층과 3층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건물의 이런 틈새와 투명 유리를 통해 다른 층의 학생들이 서로 손 흔들고 웃으며 인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 대표는 “중정을 통해 학생들의 공간인 복도가 공공성에 더해 투명성까지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계절은 몰라도 겨울엔 아무래도 춥지 않을까. 2개의 단판유리 사이를 진공 상태로 만든 로이유리(low-E glass)를 사용해 실내 적외선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차단하고 밖에서 들어오는 가시광선의 투광률은 높였다. 한마디로 열은 적게 빠져나가면서 빛은 많이 받아들이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렇게 부부 건축가는 답답하고 폐쇄적인 배움의 공간에 빛의 우물을 선물했다.  




그럼 일자형 학교 건축의 틀을 깨야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삼각학교를 구상한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대지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발상의 전환이 낳은 산물이었다. 


“조달청 현상 공모에 당선된 설계도면은 전형적인 일자형 건축이었는데, 이 경우 중학교 교사를 뒤에 가둬버리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학교 측에서 난색을 표하며 그 건축적 대안을 찾아달라고 우리에게 직접 설계를 의뢰해왔습니다. 건축주의 요구에 부합하면서 천편일률적인 학교 건축에서 벗어나보자는 우리의 희망이 교차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삼각형 건축에는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고자 삼각형의 세 꼭짓점에 각각 남녀화장실과 계단을 설치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또 교실 공간을 넓게 쓰도록 하려고 교실 밖에 청소함과 사물함을 설치한 디테일도 눈에 띄었다.



“공공성과 투명성보다 다원성”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인 중정의 풍경. 실내공간을 환하게 만드는 동시에 다른 층 학생들과 소통도 가능하게 

해준다. [사진 제공 · 노경]




하지만 삼각형 건물 역시 “선례가 없다”는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혔다. 경기도교육청은 유리창이 많고 틈새공간이 많아 사고 위험성이 높다며 경계의 안테나를 높게 세웠다. 학교 교사들 역시 학교가 지나치게 밝고 투명하면 학생들의 학습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려면 학교 공간부터 창의적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은 부부 건축가는 지난한 설득에 나섰다. 그 바람에 보통 설계 1년, 시공 1년 등 넉넉잡고 2년이면 될 건축기간이 5년까지 늘어났다. 덕분에 일자형 설계에서 벗어난 예외가 선례로 확립됐다. 


동화고 대운동장에서 뛰노는 학생들의 눈에 비치는 송학관 풍경. 알루미늄 루버가 햇빛 반사로 인한 눈부심을 

막아준다. [사진 제공 · 노경]


“처음 설계할 때는 공공성과 투명성에 방점을 찍었어요. ‘아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공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자.’ 그런데 교육 관계자들 사이에 ‘학교 건축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너무 강고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학교 건축이 이럴 수도 있다’는 다원성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선례도 있다는 걸 꼭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삼각학교를 완공해야 했습니다.” 


 


나 대표의 설명을 듣고 삼각학교가 왜 학교 건축에서 중요한 건축물이 됐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실제 삼각학교라는 예외적 건축을 보려고 전국 학교에서 답사가 줄을 잇고 있고,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에서도 낡은 학교를 재건축할 때 창의적 설계안을 적극 채택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삼각학교가 창대한 결과를 가져올 겨자씨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자.

주간동아 2018.12.28 1170호 (p62~66)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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