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과 보복이 판치는 '士禍의 시대'

무능과 보복이 판치는 '士禍의 시대'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勝者가 과실을 독식하는 '사생결단'식 정치 기승부려 

현 정부의 편 가르기 행태가 온 사회를 '불밭'으로 만들어 


    성탄절을 앞두고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심정은 우울하다. 화해와 용서는 우리에게 여전히 요원한 얘기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신문·방송, 인터넷, 유튜브 개인방송 등을 총동원해 서로를 향한 비난, 조롱, 혐오의 메시지들을 쏟아낸다.


개인적으로도 힘겨운 한 해였다. 3월 말, 전(前) 정부 시절 보도를 들춰 회사 측이 자신을 중징계하려 한다는 한 지상파 방송사 특파원의 호소를 접했다. 정치 보복임을 직감하고 부당함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보냈지만 이내 그의 해고 소식이 들려왔다. 속전속결이었다. 5월경 한 공영방송 세미나에서 또 다른 지상파 방송사가 런던, 상하이 등 비(非)언론노조 특파원들이 부임한 해외 지국들을 폐쇄하는 게 사실인지 물었다. "악의적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가." 한 노조 핵심 인사가 발작하듯 외쳤다. 그는 지금 모 방송사의 대표다. 연말쯤 한 방송 관련 행사장에서 안면이 있는 청와대 수석과 마주쳤다. 엉거주춤 인사를 나눴지만 표정은 싸늘했다. 최근 그의 "미꾸라지 한 마리" 발언이 화제다.




우리는 왜 이렇게 갈라졌고 그 간극은 왜 이토록 커져 가는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정녕 불가능한 목표인가?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지만, 극단적 집단들을 제외하면 건강한 보수와 진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주권재민, 사상·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인권 존중, 법치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유신 반대 투쟁부터 2016년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보수와 진보 모두 소중히 보듬어온 가치였다.


국정 현안에 있어서 보수·진보는 물론 차이를 드러낸다. 안보·통일 영역에서 진보는 통일, 보수는 안보에 방점을 둔다. 하지만 정도 차이일 뿐 누가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누가 통일의 비원(悲願)을 부정하겠는가? 경제 영역에서 복지국가·신자유주의를 거쳐 보수는 시장의 책임, 진보는 시장의 효율을 수용하며 접근해 왔다. 사회·문화 영역에서 진보는 개인의 자유, 보수는 제도·관습을 중시하지만 최근 진보가 표현의 책임, 보수가 그 자유를 요구하는 것처럼 이 차이도 좁혀지고 있다.


결국 우리가 겪는 갈등의 원인을 상호 장점을 취하면서 수렴하는 보수·진보 이념으로 돌리는 건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갈등의 실제 원인은 추상적인 이념 차원이 아닌 보다 구체적인 현실적 이해 다툼 차원에서 찾아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기회는 너무도 적고 경쟁은 치열하다. 어차피 다수가 패자(敗者)가 되는 이 상황에서 우리 정치는 쉽고 간명한 대안을 택해왔다. 경쟁의 과실을 승자(勝者)가 독식(Winner takes all)하는 사생결단의 패거리 정치가 그것이다.




패거리 정치는 최소 조선 시대의 4색(色) 당쟁까지 거슬러 갈 만큼 뿌리가 깊다. 현대사로 국한해도 군부 권력, 이들에 동원된 관료·전문가 집단, 재벌이 한 패를 이루었고 여기에 영호남 지역 차별이 더해졌다. 민주화는 이런 편 가르기와의 지난한 싸움이었다. 이 싸움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끈질긴 생명력의 패거리 정치는 보수·진보의 이념적 울타리 아래 다시 똬리를 틀었다.


이전 정부든 현 정부든 패거리 정치에 있어 다를 바 없지만, 유독 후자의 문제가 불거져 보이는 건 이들이 패거리임을 부인하고 정의로움을 자임하기 때문이다. 이 정부 들어 남발된 온정주의, 편 가르기, 정치 보복은 사회 전역을 불밭(火田)으로 만들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의례적 관계마저 어렵게 적대적으로 분열시켰다.


신언서판(身言書判). 이 정부의 인사 기준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물이 맨 앞이고, 능력은 맨 뒤다.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라." 강릉 펜션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소박한 여행의 꿈조차 제대로 못 펼친 아이를 이렇게 떠나보냈다. 그런데 교육부총리라는 이는 엉뚱하게 학교의 수능 이후 학생 방치를 질타했고, 교육부는 전 고교를 대상으로 그 함의가 자명한 체험학습 전수조사를 명했다.




"나는 다만 마땅한 인재를 취하여 쓸 것이니 당습(黨習)에 관계된 자는 내치고 귀양 보내어 국도(國都)에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 파당을 아우르며 인재를 등용해 당쟁과 정치 보복의 폐습을 척결하려 한 영조(英祖)의 하교는 추상같았다. 무능, 탐욕, 보복이 판치는 이 아수라 같은 사화(士禍)의 시대, 패거리 정치를 죽비처럼 내려쳐 새로운 정치를 열었던 오래 전 현군(賢君)의 탕평(蕩平) 철학이 간절하게 그립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3/20181223016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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