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맥주 궁합...아직도 치맥?
"치맥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맥주와 안주의 깔맞춤,
낯선 만남, 신선한 조화
떡국, 부침개와
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믿어온 H. 피맥(피자+맥주)과 버맥(버거+맥주)은 왠지 당기지 않을 때도 있지만 치맥은 언제나 옳다.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 제공
귀갓길 엘리베이터에서 느낀 치킨 배달 알바의 진한 향취는 기어코 단골 치킨가게의 전화번호를 누르게 한다. 소중하게 모은 쿠폰 10장으로 주문을 완료하고 다시 편의점으로 나가 4캔에 1만원 맥주를 골라 드는 자연스러운 행보.
프라이드 치킨 한 입에 맥주 한 입. 오늘은 색다르게 초콜릿과 커피의 풍미를 담고 있는 구수하고 진한 검은 맥주 포터를 마셔본다. 아니, 이건! 지금까지 알던 치킨과 맥주의 조합이 아니다. 치킨이 한층 더 기름지게 느껴지고 맥주는 한없이 쓰고, 끈적한 느낌이 지속돼 치킨이 잘 넘어가질 않는다.
역시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동네 치킨 가게에 카스, 하이트 맥주만 보였던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포터는 접어두고 다시 투명한 황금색의 ‘필스너’와 바나나의 향이 깊게 배어있고 거품이 풍성한 ‘헤페바이젠’을 꺼내 치킨과 먹으니 입안을 깔끔하게 씻어주며 ‘1인1닭’ 달성의 에너지를 되찾게 된다.
안주와 맥주의 색을 맞춰 짝을 짓는 방법 - Saq 제공
한 맥주 전문가는 맥주를 ‘허세 없는 와인’이라고 했다. 그만큼 맛과 향이 다양하고 상황과 장소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와인처럼 어울리는 음식과 매치해 먹을 때 더 잘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맥주에도 맛의 시너지를 내게 해주는 마리아주(술과 어울리는 음식의 궁합)가 있다.
많이 먹어보면 어떤 맥주와 안주가 어울리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단 한 모금도 허투루 마시고 싶지 않다면, 마실 때마다 최상의 조합으로 먹고 싶다는 욕심 많은 맥주 애호가라면, 기본적인 팁을 챙겨둘 만하다.
맥주와 안주의 깔맞춤
가장 간단하게 응용할 수 있는 건 색깔별로 조합하는 것. 맥주의 색은 보리를 볶은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많이 볶은 보리는 색깔이 어두워지고 이를 가지고 만든 맥주 역시 색이 진해진다. 볶는 과정에서 훈제향, 커피향, 초콜렛향과 고소함, 씁쓸함 등이 더해지는 만큼 이런 비슷한 맛과 향이 배어있는 음식과 어울린다.
치킨과 맥주의 짝짓기(페어링)도 결국 색깔로 풀어볼 수 있다. 밝은 색의 프라이드 치킨은 황금색의 필스너나 하얀색이 도는 바이젠이 어울리고 단짠(달고 짠)맛이 매력인 간장치킨은 간장처럼 갈색이 도는 ‘페일에일’이나 ‘브라운에일’과 먹을 때 고소함이 배가된다. 검은 맥주 포터는 연기로 그을린 훈제 치킨에 딱이다.
무게감을 따져 매치하는 방법도 있다. 가볍고 청량한 라이트 라거와 필스너에는 가벼운 샐러드, 무게감 있는 ‘임페리얼 스타우트’에는 스테이크와 같은 조합이 어울린다.
낯선 만남, 신선한 조화
색깔과 무게감으로 안주를 맞추다 보면 느낌이 온다. 이때부터는 맥주와 안주의 맛의 특징을 뽑아내 페어링을 해본다.
먼저 비슷한 맛을 찾아서 짝을 지으면 그 맛이 극대화된다. 초콜릿케이크와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마시면 케이크와 맥주에서 모두 나오는 단맛과 씁쓸한 맛이 시너지를 낸다. 훈제 스테이크와 포터 맥주는 둘 다 훈제 향이 나는데 이 점에서 어울린다.
‘사우어 에일’, ‘람빅’처럼 신맛이 나는 맥주에 상큼하고 신 과일의 조합도 좋다.
또 맥주나 음식 중 한쪽의 과한 맛을 다른 것으로 누그러뜨리는 전략도 있다. 기름진 치즈 버거의 맛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을 때 청량하고 거품 많은 라거를 마셔준다.
이와 함께 굴과 기네스 같은 스타우트의 조합은 완벽하다. 굴의 짭쪼름하고 고소한 맛이 스타우트의 쌉쌀한 맛과 만나 배가되고 굴의 비린 맛은 상쇄된다. 아일랜드에서 매년 열리는 굴 축제의 메인 스폰서가 기네스 맥주인 이유다.
맥주를 너무 차가운 상태에서 먹으면 맛과 향이 약해져 안주 맛만 도드라진다. 또 여러 종류의 맥주를 마실 때는 맛과 향, 도수가 약한 맥주에서 강한 맥주로 옮겨가는 것이 좋다.
떡국, 부침개와 맥주를
이제는 맥주 맛을 떠올리며 어떤 안주와 어울릴까 마음속으로 궁합을 맞춰본다. 다양한 음식이 한번에 만들어지는 날은 뭐니뭐니해도 명절. 한달 앞으로 다가온 설날에 명절 음식들과 맥주 짝짓기를 시도해본다.
떡국 고기 국물의 고소한 맛을 살리기 위해 비스켓의 고소함이 느껴지는 브라운 에일을, 과일의 상큼하고 신맛을 돋보이게 하는 데는 신맛과 짠맛을 겸비한 ‘고제’가 어울린다. 생선에는 황금색 맥주를, 고기에는 에일 종류를 매치하면 된다. 전은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전략을 활용한다.
(비어포스트 2016년 2월호 ‘설날 차례상과 맥주 페어링(손봉균)’ 참고)
정답은 없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코와 혀를 믿으면 된다.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다 보면 설날 어른들의 잔소리나 교통 체증이 조금은 덜 괴롭다. 대신 결혼도 못하고 취직도 못하는 주제에 술만 많이 마신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방에 상 하나를 펴고 혼자서 조용히 시도하는 것을 추천한다.
황지혜 비어포스트 에디터 jhhwanggo@gmail.com
[전문]
http://www.dongascience.com/news.php?idx=15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