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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읽고 싶다면 시드니 버스를 타세요
2016.06.17
두 달 가까이 시드니에 머물다 서울에 돌아온 지 3주 남짓 됩니다. 20년을 넘게 살던 곳을 3년 만에 찾았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매년 와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변화가 잦은 한국과 달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커가도 동네 구멍가게조차 그 자리에 있는 곳이 호주입니다.하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물질이나 외형적 탈바꿈보다 인간 내면을 돌보는 섬세하고 배려 깊은 변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지하철처럼 수도권을 연결하는 시드니의 열차는 맨 앞 뒤 칸과 가운데 칸을 콰이어트 캐리지(quiet carriage)로 지정하고 있었습니다. 이 칸의 승객들은 핸드폰 사용과 음악 듣기, 동행과 대화 나누기 등을 제한받게 됩니다. 핸드폰 신호음은 묵음으로 하되 급하게 통화를 해야 한다면 일반 칸인 옆 칸으로 옮겨 가야 하며,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도 꽁꽁 단속하여 다른 승객들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동행과의 대화는 최소한으로, 목소리는 최대한 낮춰야 합니다. 만약 가는 동안 일행과 담소할 생각이라면 이 칸에 타서는 안 되는 거지요.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원래 조용한 나라인데 일상의 소리조차도 시끄럽게 느껴졌던가 봅니다. 저는 혼자 다닌 데다 음악도 듣지 않았지만 얼결에 그 칸에 탔다가 황급히 전화기를 ‘죽이느라’ 허둥대야했습니다. 모든 소리를 자제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로 모두들 묵언 명상을 하는 듯 고요하기 그지없이 이동을 하는 것이, 시쳇말로 절간을 옮겨다 놓은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버스 옆구리의 인상적인 광고판에 관한 것입니다. ‘기름값도 비싸고 주차할 곳 찾기도 어려우니 자가용 승용차보다 버스를 타는 것이 유용하다’는 평범한 문구 위에 부착된, ‘버스를 이용하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내용이 감동적으로 와 닿았습니다. 그러한 문안과 함께 신문을 펼쳐든 젊은 여성을 그려 넣어 대중교통의 이점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킨 홍보물이 그 나라 정신문화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하는 단초인듯 했습니다. 실제로 호주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휴대 전화기 대신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한국의 여하한 대중교통수단 광고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기에 더욱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인문(人文)이란 ‘인간의 무늬’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지나간 궤적, 행로, 패턴, 무늬를 따라 가는 것이 곧 인문적 삶이자 통찰적 삶의 방식입니다. 외양이 아닌 내면을 깊게 하고 정신적, 정서적, 영적 성장을 꾀하는 일, 말하자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일러 인문적으로 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각을 지속적으로, 강하게 자극하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에 방해가 될뿐더러 삶을 위태롭게 합니다. 감각이 자극되면 즉물적이 되고, 즉물적인 상황이 반복되면 자극에 대한 반응만 있을 뿐, 사유나 사고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인간이 한 덩어리의 물질로 인식되어 그것이 극에 달하면 살인조차 서슴지 않게 되는 거지요. 오감 가운데 소리에 대한 감각은 보이는 것에 대한 그것보다 더 민감하고 통제가 어렵다는 점에서 호주에서는 열차 안 소음을 제한하고, 내면세계로 마음을 모을 수 있는 방법으로 책 읽기를 권하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국민들의 인문적 삶을 귀하게 여기는 시스템이자 발상인 것입니다. 귀로 들리는 소리가 멈추게되면 그때부터는 마음으로 듣게 됩니다. 내면에 주파수를 맞추게 되는 거지요. 귀를 닫고 머리와 마음으로 소리를 듣는 것을 ‘지음(知音)’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그래야만 진정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음은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벗’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해서 춘추시대 거문고의 귀재 백아와 친구 종자기가 바로 그런 사이였다고 하지요. 백아는 자기 연주를 마음으로 들을 줄 아는, 나아가 자기 마음을 들을 줄 아는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귀의 소리'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내면의 성장을 초장부터 훼방 놓는다는 점에서 소음은 고약한 폭력입니다. 모바일 폰 가게를 비롯해서 옷 가게, 식당, 심지어 정육점 앞에서도 빠른 박자의 요란한 기계음이 짜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행인의 발걸음을 붙잡으려는 원래 의도를 읽기는 고사하고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어집니다. 세상의 소음을 멀리하면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성인들은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요원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호주에서 21년을 살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를 거쳐, 중앙일보, 여성중앙, 자생한방병원, 메인 에이지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2016년 1월에 나온 인문 에세이집 『내 안에 개 있다』를 비롯해서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공저)』 등 5권의 책을 냈다.블로그: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이메일: shinayoun@daum.net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끈끈이귀개 (끈끈이귀개과) Drosera peltata var. nipponica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활짝 핀 한 송이 맑은 꽃을 보기 위해서. 해가 뜨고 두 시간 정도 햇살을 받아야만 밤새 키워 올린 꽃망울을 톡톡 터뜨리는 꽃. 맑고 고운 하얀 꽃 이파리와 잎몸에 달린 수많은 선모(腺毛)마다 이슬방울처럼 곱게 빛나는 점액.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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