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1조 美풍력발전소 인수 '정부 칼날 지적'에 무산


정부 예비타당성조사서 수익률 문제삼자 

"부실투자 책임 떠안을라" 아예 사업 포기


   한국전력이 어렵사리 따낸 1조원 규모 미국 풍력발전소 인수건이 결국 무산됐다. 


 

2일(현지시간) 미 발전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한전 컨소시엄은 캐나다 A사가 진행한 미 풍력발전소 매각 입찰에 참여해 지난해 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까다로운 예비타당성 조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인수를 포기했다. 


한전 측이 미 풍력발전소를 인수하기 위해 투자할 금액은 자본금 4억3000만달러와 부채 인수를 합쳐 총 8억7000만달러(약 1조350억원) 규모였다. 인수가 성사됐으면 에너지 선진국인 미국 발전시장에 진출하는 한전의 첫 사례로 기록될 수 있었다. 


캐나다 매각사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전 요청에 따라 한국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매각 작업을 수개월 늦춰주는 인내심을 발휘했지만 한전이 손을 들어버리자 황당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이 바클레이스와 세계 유수 풍력 전문 기술자문사를 동원해 인수를 노린 풍력발전소는 미국 LA 풍력발전단지 2기, 뉴햄프셔 1기 등 총 3기로 발전용량은 370㎿에 달한다. 한전의 5개 발전자회사가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발전량(180㎿)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생산된 전기 대부분은 지역 전력회사와 20년간 장기 구매계약을 체결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구조라고 한전 측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해외 투자 수익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된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올해 초 미국 현지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한 KDI 실사단은 "미 풍력발전소 투자건의 예상 수익률이 연 10% 수준은 돼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한전 측이 전망한 연 6~7% 수익률보다 크게 높은 수치다. 또 풍력발전 기본 전제인 풍량 예측에서도 이견이 나타났다. KDI 실사단은 최근 3~5년 새 줄어든 현지 풍량을 근거로 한전이 시뮬레이션한 발전량보다 낮춰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KDI는 한전 투자수익률이 연 2%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검토 결과를 지난달 최종 도출했다.


이 때문에 한전은 미래 풍량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향후 발생할 수도 있는 책임 추궁 리스크를 떠안기보다는 인수 포기를 택했다는 전언이다. 


이처럼 한전이 인수 직전에 내부적인 문제로 발을 빼면서 해외 발전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한전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에너지업계 고위 인사는 "국내에서 석유공사·광물자원공사·가스공사 해외자원 개발사업이 부실 투자 논란에 휘말린 이후 이들 에너지 공기업이 '해외 투자 트라우마'에 빠져 극도로 몸을 사리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며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을 보다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권 KDI 공공기관사업팀장은 "한전에 조사 결과를 통보한 상태"라며 "제도라는 게 100%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박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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