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줄인다고 비만 해결되나?
비만대사 수술에 대한 고찰
놀랍게도 비만을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방법은 약물이나 행동 요법이 아니라 수술 요법이다.
지난 주 가수 신해철 씨의 사망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필자 역시 음악에는 문외한이지만 신 씨의 죽음이 충격적이었다. 아마 학번까지 같은 동년배로 대학시절 혜성처럼 등장해 지금까지 활동해 온 그를 지켜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 씨의 부고가 나가고 다음날 신문에는 이상한 기사가 실렸다. 직접적인 사인은 장유착 수술 뒤 심장마비와 패혈증 등 합병증이지만 발단은 수년 전 받은 위밴드 수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예약을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를 읽다가 문득 수개월 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비만을 치료하기 위한 위 수술에 대한 장문의 기사가 떠올랐다. 저체중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마른 필자로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주제이고 과학 에세이용으로도 별로일 것 같아 읽어보지는 않았다. 찾아보니 7월 17일자에 세 쪽에 걸쳐 실린, 버니지아 휴즈라는 과학저널리스트가 쓴 글이다.
수술을 받으면 위가 작아져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느껴지게 해 살을 빼는 효과가 있는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필자는 글을 읽으며 복잡한 내용에 약간 머리가 아팠다. 하긴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굳이 ‘네이처’ 같은 일급 저널이 세 쪽이나 되는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위밴드 수술(gastric banding)은 ‘비만대사 수술(bariatric surgery)’로 통칭하는, 수술을 통한 비만치료 방법 가운데 하나로 사실 가장 온화한 형태다.
기사를 보면 최초의 비만대사 수술은 1952년 스웨덴의 외과의사 빅토르 헨릭슨이 집도했다. 헨릭슨은 비만 여성의 소장에서 105센티미터를 잘라냈다.
보통 소장의 길이가 6~7미터이므로 거의 20%를 제거한 셈이다. 소장은 소화한 영양분을 흡수하는 기관이므로 길이를 줄여 에너지 흡수율을 떨어뜨리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수술로 환자의 비만을 고치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사를 개선해 변비를 없앴다고 한다. 따라서 환자는 자신이 더 건강해지고 에너지가 넘치게 됐다며 만족했다는 것.
그 뒤 20여년에 걸쳐 미국의 의사들이 이 방법을 개선(?)했는데, 그 결과 잘라내고 이어붙인 소장의 길이가 40센티미터에 불과했다고 한다! 공회장우회술(jejunoileal bypass)이라고 부르는 이 수술은 체중 감량 효과는 컸지만 부작용이 심각했는데, 특히 세균증식으로 간에 염증이 생겨 환자 대다수에서 5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됐다.
결국 의사들은 소장 대신 그 앞에 있는 위로 관심을 돌렸고 1977년 마침내 위우회술(Roux-en Y gastric bypass)이 개발됐다. 뒤 이어 위소매절제술(vertical sleeve gastrectomy), 위밴드술이 나오면서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다.
가장 과격한 방법인 위우회술은 식도에 연결된 위를 달걀 하나만한 크기로 묶은 뒤(위주머니) 공장(소장의 앞부분)을 잘라 위주머니에 연결시킨다. 그리고 십이지장에 연결된 공장의 잘린 부분을 위주머니와 연결한 공장 측면에 구멍을 내 연결한다. 이 형태가 알파벳 Y를 연상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수술법의 흥미로운 점은 음식이 들어가지 않는 위(위주머니를 뺀 부분)와 십이지장, 공장 앞부분을 소장과 연결한 것. 방치할 경우 이런 기관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복강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위소매절제술은 세로 방향으로 위의 대부분을 잘라내는 방법으로 식도, 위, 십이지장, 소장의 경로는 유지돼 있다. 위암으로 위를 잘라내는 수술과 비슷하다.
끝으로 위밴드술은 위 중간에 혁대를 차듯 실리콘 밴드를 묶는 방법으로 밴드의 조임을 조절해 포만감을 주는 음식량을 관리할 수 있다. 앞의 두 방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화한 방법이다.
기름진 음식 덜 찾아 위를 대상으로 한 비만대사 수술이 과학자들이 관심을 끈 이유는 위가 줄어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생긴 결과 살이 빠졌다는 상식적인 해석만으로는 수술의 효과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술을 받은 사람들 다수는 체중이 줄기도 전에 비만으로 인한 당뇨병의 완화와 심혈관질환 위험성 감소 등 생리 전반적인 개선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또 입맛도 변해 기름진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수술로 인한 생리적인 변화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위험성이 내재된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
비만대사 수술이 효과를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제시된 게 장내미생물상의 변화다. 2009년 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수술을 받은 사람들의 장에는 비만을 촉진한다고 알려져 있는 퍼미큐테스문에 속하는 박테리아의 비율이 줄어든다.
이 박테리아는 산소에 취약한데 위장이 부실해지면서 산소 일부가 대장에 도달해 생존환경이 나빠졌다는 해석이 있다. 반면 비만 억제와 관련해 잘 알려져 있는 로제부리아(Roseburia)라는 박테리아는 극적으로 늘어나 있었다.
‘네이처’ 5월 8일자에는 쥐를 대상으로 위소매절제술을 했을 때 위장의 생리 변화를 규명한 논문이 실렸다. 즉 수술을 받은 동물은 쓸개에서 담즙산의 분비가 늘어나는데, 그 결과 FXR이라는 수용체가 활성화돼 일련의 생리반응이 일어난다는 것. FXR은 간과 지방조직, 소장 등에 존재하는데 작용이 활발해지면 지방흡수율이 떨어지고 혈당 조절도 개선된다. 아울러 장내미생물의 조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생리 메커니즘을 규명해 수술을 하지 않고도 비슷한 효과를 보는 방법을 찾는 과학자들에게 약간 실망스러운 연구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쥐를 대상으로 위우회술을 한 뒤 장기의 변화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주머니와 연결된 소장(공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지는 현상을 발견한 것.
연구자들은 평소 어느 정도 소화된 음식이 들어오던 공장이 갑자기 소화가 안 된 음식과 만나면서 이에 적응하기 위한 변화라고 해석했다. 즉 제대로 된 위가 없다보니 공장 앞부분이 늘어나 아쉬운 대로 위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포도당)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수술 뒤 혈당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 연구자들은 세포분화와 성장에 관련된 유전자의 발현량이 늘어났음을 보여 이런 해부학적 변화를 뒷받침했다.
기사와 논문을 보면 비만대사 수술이 체중감량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에는 분명하지만(그럼에도 개인차는 크다고 한다) 상당한 수순의 수술(특히 위우회술의 경우)이라 어느 정도 부작용도 있는 게 현실인 것 같다. 동아사이언스 |
Arts & Culture
CON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