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부활’…덕수궁 석조전 복원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일반에 개방,
자주독립 국가 의지 보여준 상징적 건물
5년의 공사 끝에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새로 개관한 덕수궁 석조전
석조전 복원공사 중 가림판에 새겨져 있던 석조전의 옛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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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덕수궁 대한문이 활짝 열렸다. 5년 여의 복원공사를 마친 대한제국역사관이 재개관을 하는 날이었기에 휴관일인 월요일에도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맞이한 것. 이날은 117년 전 광무황제(고종)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 즉위를 선포한 날이어서 더욱 뜻깊다. 서구 문물을 적극 수용하고 근대화만이 살 길이라고 믿었던 고종의 의지가 잘 반영된 석조전은 황제의 침전 및 외국 사신 접견장소로 사용되다가 고종이 승하한 후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됐다. 이에 2009년부터 복원을 시작해 5년 만에 대한제국역사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개관식을 마치고 드디어 대한제국역사관에 첫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대한제국 직원들은 내빈들을 맞으시오.”라는 굵고 엄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과거로 돌아가 대한제국 직원의 안내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마음이 뭉클했다. 1층 접견실에서는 대한제국과 외국공사의 복식을 갖춘 사람들이 황제를 알현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었다. 화려한 공간에서 신하들의 접견을 받는 황제의 모습이 신기해 보였는지 엄마와 함께 온 초등학생은 “이 방에서 나가기 싫다.”며 웃어보였지만 개관일을 맞아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이곳에서 지체하긴 힘들어 보였다. 고급스러운 침장과 화려한 인테리어를 보고 감탄하던 한 시민은 “진짜 멋지다!”를 연발하며 “여기 있는 것이 모두 당시의 것이냐?”라고 되묻기도 했다. 1910년 완공 당시 모습대로 복원 가능한 부분은 재현실로 재현해 놓았고, 고증 불가능한 곳은 패널과 영상 전시물을 활용해 대한제국의 역사를 이해하기 쉽도록 전시해 놓았다. 2층에 마련된 황제와 황후의 화려한 침전도 볼만 했지만 대한제국 황실가계도를 비롯해, 황실 가족의 인물 사진이 많이 남아있는 마지막 황실가족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또한 서양문물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황제 덕분이 아니었을까. 대한제국역사관을 나오니 걷기에 좋은 가을 날이었다. 가을 날 덕수궁에 온다면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정동길도 함께 걸어 볼 것을 권한다. 이곳에선 우리의 굴곡진 근대사를 품고 있는 아담하고 세련돼 보이는 서양식 건물들을 볼 수 있다. 덕수궁 돌담길로 이어진 정동길 초입의 서울시 서소문청사 13층 서울전망대에 올라가보면 덕수궁은 물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근대 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대한제국역사관 관람 신청은 덕수궁 누리집(www.deoksugung.go.kr)에서 할 수 있으며 만 65세 이상 어르신과 외국인 등은 1회당 총 5인까지 현장접수가 가능하다. 관람 시 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으며 역사관 내부공간이 좁아 1회당 관람시간은 45분으로 제한한다. 1일 관람횟수는 평일 12회(총 240명), 주말 16회(총 320명)이며 1회당 20명(인터넷 예약 15명, 현장접수 5명)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정책브리핑
대한제국역사관 개관일을 맞아 활짝 열린 대한문
덕수궁 가장 안쪽에 위치한 석조전이 이날의 주인공. 영국인 하딩의 설계로 1900년 공사를 시작해 1910년 완공된 석조전은 ‘돌로 지은 집’이라는 뜻이다. 조선의 전통 건축이 나무로 집을 짓는 데 비해, 근대화의 상징으로 지은 이 집은 돌을 사용해 서양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집이 외세의 힘에 의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 주도로 지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석조전 앞마당에서 내빈과 시민, 그리고 수많은 카메라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개관식이 진행됐다. 자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대한제국 당시를 상상하며 테이프 커팅을 할 때 열렬한 박수를 쳤다. 친구 셋과 창동에서 왔다는 한 주부는 “기사를 보고 일부러 개관날에 맞춰 찾아왔다.”며 “대한제국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는데 오늘 비로소 대한제국 황실의 본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는 소감을 전했다.
대한제국역사관 개관식이 끝나고 내빈들이 석조전을 향해 들어가고 있다.
지층과 1, 2층으로 돼있는 대한제국역사관은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오는 동선을 따라 관람하게 돼있었다. 1층은 중앙홀이나 접견실 등 공적인 공간, 2층은 황제와 황후의 거실이나 침실 등 사적인 공간으로 이뤄져 있었다. 전통적인 궁궐의 경우 침전과 편전을 분리해두는 것에 비해 석조전은 두 곳을 한 곳에 두는 서양식을 따랐다.
접견실에서 황제가 외국 공사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재현해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2층으로 올라가 황제와 황후의 침실, 화장실, 서재 등을 둘러보던 시민들은 감탄사를 그치지 않았다.
2층 황제의 침실과 황후의 침실
영친왕과 순종, 고종, 순종효왕후, 덕혜옹주가 석조전 중앙홀에서 촬영한 사진이 전시돼 있다.
대한제국역사관 관람을 마치고 나온 한 시민은 “석조전을 돌아보니 이 건물을 지을 때까지는 국권이 든든했던 것 같다. 건물에서 대한제국의 위상이 느껴졌다.” 며 “그 후 나라가 힘을 잃은 건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대한제국과 황실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서소문청사 13층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덕수궁
서울전망대에서 덕수궁 주변을 쭉 둘러봤다면 내려와 정동길을 걸으며 가을을 느껴보자. 정동교회를 지나면 중명전이 보인다.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고,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곳이기도 하다. 중명전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했다. 사바찐이 설계한 또 다른 건물인 덕수궁 안의 정관헌과 매우 닮은 모습을 확인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이곳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고종의 마음을 짐작해보면 어떨까.
정동길을 걷다보면 만날 수 있는 중명전.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이 근대도서관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황실도서관이었던 중명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석조전은 고종황제가 서양식 궁궐을 짓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근대국가를 향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건물이다. 일제에 의해 미술관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6.25전쟁 때는 불 타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대한제국역사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기품 있는 황실의 모습을 되찾음과 동시에 그동안 폄하됐던 대한제국의 위상을 바로잡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정책기자단| 최은주 ej011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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