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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강산에서 우리의 문화를 보다
2014.10.16
얼마 전 우리나라를 찾아온 독일인 경제학자와 와인 잔을 앞에 놓고 오붓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한국의 경제 관련 자료를 보면 짧은 기간 동안에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것은 틀림없는데, 어떻게 그 눈부신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별로 없다며 의아해했습니다. 그분도 필자가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아마 부담스럽지 않은 질문을 화두로 던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비전문가의 의견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름대로 필자의 생각을 들려주기로 했습니다.필자는 경제 문제와는 약간 동떨어진 우리의 푸른 강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필자가 독일 유학 중이던 1964년의 일입니다. 일시 귀국 차 올림픽을 개최한 도쿄를 경유해 한반도 상공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고국에 왔다는 벅차고 설레는 감동보다는 암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조국의 강산이 거의 사막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던 낙동강 유역은 헤아릴 수 없는 공중 및 지상 포격에 의해 그야말로 폐허나 다름없었습니다. 참담하게도 푸른 나무라곤 없는 흉측하기 그지없는 민둥산들만 보였습니다. 그런 크고 작은 민둥산은 서울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런 얘기를 해 준 다음 필자는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신이 보듯 남한의 산야가 푸른 수목으로 꽉 들어차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분은 언젠가 유엔 기구가 발간한 보고서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再산림녹화사업(Reforest Project)을 추진한 수많은 나라 중 한국만이 유일하게 성공했다는 자료를 읽은 기억이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한반도의 강산이 그런 무서운 몸살을 앓았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경제 부흥보다 산림을 재조성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인데 정말 놀랍습니다.” 그분의 얼굴엔 감동의 빛이 역력했습니다.필자는 그분에게 식목일 얘기도 해주었습니다. “해마다 4월 5일을 국가 지정 휴일로 정해 너도 나도 몇 그루씩 나무를 심었습니다. 학생과 공무원을 비롯해 온 국민이 참여했죠. 이와 더불어 정부는 산림 보호를 위해 입산 금지 정책을 철저히 지켰고요. 그 덕분에 오늘날의 푸른 강산이 가능했던 겁니다. 국가가 ‘나무 심는 날’까지 지정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분은 무척 놀라워했습니다.우리나라가 오늘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데는 독일의 경우처럼 한 민족의 결집된 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 민족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필자의 이런 설명에 그분은 무릎을 치며 말했습니다. “한국의 울창한 산야에서 한국의 살아 있는 문화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경제 발전을 이룩한 데에는 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저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믿습니다.그러나 근래 우리 사회는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우선시하기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문명에 지나치게 끌려가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섭니다. 그렇기에 일제 강점기라는 시련을 겪어 황폐하고 허약한 국가적 상황에서도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지길 바랐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높고도 깊은 뜻이 새삼 가슴에 와 닿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사평론가,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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