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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선물
2014.08.18
버러츠 영감은 몽골 초원에서 낙타와 염소 떼를 방목하는 유목민입니다. 황량한 고비 사막 언저리에서 거친 모래바람과 싸우는 삶은 동물에게나 인간에게나 고단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에게서 어두운 기색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버러츠 영감에게 뜻하지 않은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난산 끝에 어렵게 새끼를 낳은 어미 낙타가 벌써 며칠째 새끼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나고 못나고를 가리지 않는, 새끼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동물적 사랑이라는데 어미 낙타가 제 새끼를 마다하고 있으니. 새끼가 젖을 빨려고 머리를 들이밀 때마다 어미는 야멸차게 뒷다리로 쪼듯 쫓아냅니다. 버러츠 영감은 고심 끝에 마두금(馬頭琴) 연주자를 부르기로 합니다. 그게 어미 낙타를 달랠 마지막 처방이기 때문입니다.마침내 마두금 연주자가 어미 낙타 곁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치 사각 널빤지 통 위에 굵은 낚싯줄 두 가닥을 올린 것 같은 투박한 생김새. 과연 그 마두금이 코브라를 춤추게 하는 인도의 마술피리처럼 낙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우리의 해금처럼 한 손으로 현을 움켜잡고 또 한 손으로 말총을 맨 활을 켜면서 현의 울림은 굵직한 음률로 퍼져 나갑니다. 몇 분쯤 지났을까. 별안간 어미 낙타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마두금 연주에 마치 얼어붙었던 심중의 울혈이라도 풀린 듯 눈물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흐릅니다. 이윽고 어미는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본래의 모성을 찾아갑니다.무엇이 어미 낙타의 가슴을 그렇게 차갑게 얼어붙게 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거칠고 메마른 초원에서 살아가며 생긴 긴장이나 불안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과 부대끼며 알게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일 수도 있겠지요. 분명한 것은 마두금의 위력입니다. 마두금 연주는 오래전부터 몽골 유목민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정신 안정과 치료의 비방인 것입니다. 꽤 오래전에 본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지만 지금껏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광경을 처음 보는 사람에겐 잊을 수 없는 감동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는 놀라운 일, 슬픈 일들을 너무 많이, 너무 자주 겪었습니다. 모두가 끝 모를 비탄에 잠기고 공분에 몸을 떨며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을 수습하고 대책을 찾기는커녕, 끌어안고 마음을 모으기는커녕 갈라져서 누군가를 탓하고 질책하기에 더 바빴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힘을 소진하고 지쳐갔습니다.어디선가 위로의 손길이 뻗어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바로 그때 찾아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래서 더욱 뜨거운 환대를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종교의 최고 지도자여서가 아니라 평생 보여온 겸손과 헌신과 봉사의 실천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또한 들뜬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게 했을 것입니다.기다림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교황은 가장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끌어안고 입 맞추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손수 가방을 챙겨 들고 방탄차 대신 무개차로, 소형 자동차로, 걸어서 대중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섰습니다. 슬픈 일, 불행한 일,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의 손을 거리낌 없이 마주 잡아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짧은 방문 기간 진정을 다해 이 땅에 주고 간 교황의 위로가 어미 낙타에게 모성을 되찾아 준 마두금처럼 모든 이들의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 주었기를 바랍니다. 그가 남긴 사랑이라는 선물로 메마른 가슴에 온정을 되찾고 새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은 모습으로 힘을 모아 다시 전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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