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조선족 사토라레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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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조선족 사토라레

2014.08.07


얘들아,

<사토라레> 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사토라레’란 자기 생각이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들리는 사람을 말하는데, 인구 천만 명 당 한 명 꼴이라고 한다. 영화 얘기다.

하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른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 사람들이 보호해 주기 때문이지.

이 영화가 갑자기 생각난 건 왜일까...

엄마는 서울에 와서 사토라레가 된 기분이다... 게다가 마음을 다 읽힌다는 약점이 잡혀 보호받기는커녕 조롱을 당하는 ‘한국형’ 사토라레...

사람들이 엄마 마음을 다 아는 것 같고 그래서 엄마를 놀리는 느낌이 들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들이!

몇 차례 '멘붕'과 뒤통수를 맞았고, 지금도 등짝에 칼이 몇 개 꽂혀 있다…

엄마가 한국에서 얻은 별명이 조선족이라고 했지?

엄마에게 '조선족'이란 '사토라레'의 다른 표현, 같은 뜻의 별명이라는 걸 요즘 깨닫는다.

엄마는 지나칠 정도의 역지사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력이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을 '타자'의 위치에 놓고 역지사지하거나 공감해 주진 못한 것 같다.

내 손톱 밑의 가시는 아예 안 돌보고 남의 염통 썩는 걱정을 너무 많이, 거의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거지...

네 아빠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느라, 호주에서 한국으로 나라를 바꿔 가면서 사람들을 이해하느라, 거의 '사이코 급수'의 사람들한테까지 '이해의 오지랖'을 넓히느라 급기야는 이해 주체인 엄마의 존재가 소실점처럼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그래..., 그렇긴 해도 사토라레로 당분간 지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서울에 온 후 엄마는 어떤 경험을 통해서도 배우려는 자세로 살고 있다...

어떤 상처도 경험으로 받아들인다면 성숙과 성장의 거름이 될 수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에서 벌써 엄마가 상처를 무지 받고 있고, 상처로 인해 힘들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후덜덜~~

엄마의 마음이 너희들에게도 ‘들려’ 버렸구나.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사토라레구나…

한국에 온 지 만 1년, 인터넷상의 ‘무차별 몽둥이’서껀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린치’를 서너 차례 당한 후 상처 핥는 짐승마냥 ‘블로그 동굴’에 웅크린 채 시드니의 제 아이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차 사고 났을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 털털 털고 집에 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쑤시고 후유증에 괴로운 것과 비슷한 증상입니다.

불쌍한 처지로 모국에 돌아온 저를 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가요. 좋다고 먼저 다가올 땐 언제고 차갑게 등 돌리는 것으로도 모라자 뒷담화 '까는' 것은 뭐며, 동냥은 못 줘도 쪽박은 깨지 말랬다는데 이 따위 글도 글이냐며 불러다 '쫑코'주는 출판업자의 태도에는 어떤 의도가 깔린 건지요. 기부터 죽이고 보자는 겁니까. 종로에서 뺨 맞고 저한테 눈 흘기는 사람들은 또 뭔가요.

내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 생각만 해도 신물납니다. 이미 신물나게 많이 했으니까요. 설혹 그렇다 해도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무례하고 잔인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주는 대로 받는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준 적 없습니다.

저는 자기 반성적인 사람이며 성찰적 자기 객관화를 끊임없이 해 온 사람입니다. 너무 해서 탈인 사람입니다.  

92년에 한국을 떠나 이 땅과 22년 갭을 가진 ‘돌포(돌아온 해외동포)’로서 작금 한국의 키워드는 ‘무관심과 폭력’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무관심이 병균처럼 ‘잠복’해 있다가 폭력이란 질병이 ‘창궐’하는 식입니다.

일상에선 그 둘을 ‘무기력’이라는 두꺼운 껍질이 싸고 ‘냉소’라는 끈으로 묶어 두고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울타리에서부터 나라의 테두리를 지킨다는 군대에 이르기까지 기막힌 폭력이 만연해 있으니 공기로 숨을 쉬듯, 매 순간 폭력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해 가출 여고생 살해 사건과 윤일병 사망 기사는 가슴이 오그라들어 끝까지 읽지도 못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아예 신문을 안 봅니다.

이런 지경이니 20년 전 가치관을 가진, 도통 현실 감각 떨어지는 어리바리한 ‘조선족’ 하나쯤 갖고 노는 거야 거의 애교 수준이고 놀다가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는다 한들 누가 뭐랄까요.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사토라레’인 것 같은 섬뜩한 느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약자이자 강자, 갑이자 을이라는 잠재적 폭력관계에 사회적 그물코를 꿰고 있는 한 저처럼 등짝에 칼 몇 개 꽂고 꽂히는 것은 일도 아닐 것입니다.

사회가 거칠어도 너무 거칩니다.

누구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하고, 내가 잘 아는 또 다른 누구는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거늘.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낸 책으로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hinayoun

게스트칼럼 / 유능화

'연민의 땅 네팔'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로 네팔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28몀의 팀원들이 여름휴가 일정을 의료봉사 일정에 맞추어 히말라야 산그늘로 오게 된 것입니다. 벽돌로 지은 국제공항 청사는 자연친화적이기는 하지만 네팔의 빈약한 실정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언제 보아도 약간 씁쓸합니다. 이번 사역지는 덩더리 근처로 네팔 서쪽 끝이면서 인도와 접해있는 국경지역입니다.

진료를 하게 된 곳은 학교인데 마침 학생들이 학교 지붕 위 옥상에서 시험을 치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네는 아무리 형편이 어려웠어도 지붕 위 옥상에서 시험을 치르지는 않았는데 네팔에서는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일인 모양입니다. 신기한 광경이기도 했지만 네팔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첫날 주요 진찰 대상자는 HIV 감염자들입니다. HIV는 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의 약자인데 쉽게 말해 에이즈 바이러스입니다.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가 간염 환자가 아니듯이 HIV 감염자는 에이즈 환자는 아닙니다. 다만 치료가 안 되는 경우 종국에는 에이즈로 변하게 됩니다. HIV 감염자는 차트에 빨간 십자가 표시를 했습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평생을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야만 합니다. 네팔에서는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어서 많은 네팔인들이 인도로 갑니다. 거기서 살면서 성병을 얻은 후 네팔로 돌아와 부부관계를 가지니 부녀자는 물론 태어나는 신생아들까지 에이즈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HIV에 감염된 아이들은 평생 ART라는 약을 먹게 됩니다. 그것도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감기가 들어 며칠 동안 약을 먹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그네들은 평생 그 약을 먹어야 하고 조금이라고 게을리하게 되면 약의 용량을 올려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나마 네팔 정부는 워낙 가난해서 WHO(세게 보건 기구)의 도움을 받아서 ART를 나눠주는 정도밖에 할 수 없다고 합니다.

HIV 감염자들을 진찰할 때 느끼는 감정은 바로 ‘컴패션(compassion, 憐愍)’ 그 자체입니다. 엄마 손을 붙잡고 오는 HIV에 감염된 꽃봉오리 같은 아이들을 대하면 나도 몰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자기도 모르게 수직 감염된 아이들. 자칫 잘못하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려울 수 있는 이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끼게 됩니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절로 발동되어 좀 더 세세하게 진찰하고 싶고, 필요한 약도 더 주고 싶어집니다.

임시 진료소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의 옆은 넓다란 잔디밭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신 나게 축구를 하면서 놀고 있습니다. 축구는 전 세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스포츠인가 봅니다. 세계의 지붕이라 할 수 있는 히말라야 어린이들도 축구를 하는 동안 걱정 근심을 잊고 즐거움에 젖어듭니다. HIV에 감염된 어린이들까지도 즐겁게 만드니 축구공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네팔로 가는 기내에서 2030년까지는 에이즈가 근절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인천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는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으로 탑승했던 에이즈 전문가 100명이 사망했다는 슬픈 기사를 접했습니다. 이러저래 지난 한 주간은 에이즈를 잊을 수 없는 주간이었습니다. 자기들의 미래가 어떤지도 모르고 신 나게 뛰어놀던 네팔 아이들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공을 찰 때마다 해피 바이러스가 묻어 나와 HIV를 격퇴하고 더 나아가서는 에이즈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판타지를 꿈꾸어 봅니다.

필자소개

유능화


경복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보스톤 의대에서 유전학을 연구했다. 순천향의대 조교수, 연세의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필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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