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촌장'을 다시 들으며...

 

 

 

작가 김경의 글니다.

 

[시인과 촌장,1981~]

 

대한민국의 포크 음악 그룹이다. 1981년에 데뷔하였고, 명칭은 서영은의 동명 소설에서 따왔다. 〈가시나무〉, 〈사랑일기〉, 〈풍경〉등 히트곡이 있고, 광고음악에 쓰이면서 히트를 쳤다. 노래 중 〈가시나무〉는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하였는데, 가수 조성모의 리메이크 곡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wiki.

 

 

며칠 전 밤이다.

자기 전에 음악 듣는 취미가 있는 남편이 오랜만에 가요를 틀었다.

 

"흠, 오랜만에 들으니 좋네." 침대에 누워 들국화를 듣고, 김현식을 들었다. 그러고 있는데 문득 전화벨이 울렸다.

 

그 전화벨 소리를 듣고 마치 지키지 못한 약속이 생각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 저편에서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나의 깊은 어둠을 흔들어 깨워/ 밝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줘/ 그대는 나의 짙은 슬픔을 흔들어 깨워/ 환한 빛으로 나를 데리고 가줘/ 부탁해 부탁해...."

 

한때 굉장히 좋아했던, 그러나 어느새 까맣게 잊고 살았던 '시인과 촌장'의 노래였다. 전화벨 소리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따라 불렀다.

 

침대 위에 앉아 양반다리를 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온 마음을 담아 따라 불렀다. 신기했다.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그 곡의 가사와 음들이 내 몸 어딘가에 남아 나와 함께, 내 육체 안에 기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느낌이 참 애틋하고 신비로웠다. 1981년 데뷔한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의 2집에 수록된 '비둘기에게'라는 곡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인과 촌장 하면 조성모의 리메이크 곡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가시나무'를 떠올리겠지만 개인적으로 난 이 노래를 더 좋아했다.

 

'사랑일기'도 '얼음 무지개'도 '좋은 나라에서'도 좋았지만 이 노래 '비둘기에게'가 무척 좋았다. 뭐랄까? 찬란하게 슬펐다. 오래된 슬픔이 비둘기를, 고양이를, 진달래를, 무지개를 오래 들여다보다가 동심으로 맑고 밝게 정화된 느낌. 그런 느낌이었다.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말이야. 작사·작곡은 물론 노래까지 불렀던.... 시인과 촌장의 모든 노래에서 그 사람의 영혼이 느껴지는 것 같아. 너무 많은 상처가 있었지만 그 상처가 결코 훼손할 수 없었던 영혼 말이야.

 

일례로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극도의 가난 속에서 여러 번의 가출 끝에 설악산에서 혼자 텐트를 치고 살기도 했대. 그때 자살 기도도 하고." 다음날 시인과 촌장에 대한 인터넷 자료들을 찾아 읽으며 내가 남편에게 했던 말이다.

 

싱어송라이터 하덕규가 그 노래 '비둘기에게'를 만들 때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어려운 시절이었다. 늘 푸른 동해 바다를 보고 자란 아이가 가난 때문에 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명동의 쉘부르에서 노래하는 다운타운 가수가 되어 시인과 촌장이라는 이름으로 1집을 냈다.

 

1981년 오종수라는 동창생과 함께였고, 시인과 촌장이라는 이름은 서영은의 동명 소설에서 따왔다. 하지만 아무도 주목해주는 이가 없었다. 극도의 절망과 고독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절치부심의 시간. 그 시간이 길었다. 오종수 대신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함께 2집을 내기까지 거의 5년이나 걸렸으니.

 

"굉장하지 않아? 위스키 반병을 마셔야 겨우 잠이 들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이렇게 맑고 투명한 노래를 만들 수 있었다는 거? 2집 중에서 제일 먼저 만든 곡이 '비둘기에게'였던 것 같아. 2집이 나오기 한 해 전 프로젝트 음반 <우리노래 전시회>를 통해 먼저 이 노래를 공개했던 걸 보면." 그 후로도 여러 날 나는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불렸던 예술가 하덕규에 대해 생각했다.

 

화가를 꿈꾸었고 또 시인을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했지만 가난 때문에 예술가의 꿈을 포기하고 대신 세속의 가수가 되어 노래로 서정시와 풍경화를 실어 나르던 남자. 하덕규의 성장기를 수놓은 그 많은 불우와 상처, 예술적 고뇌와 고독의 냄새들이 거의 모든 곡들에 배어 있다.

 

그런데도 결국 미소짓게 되고.... 이 세상의 그 많은 어둠을 놀라운 서정과 동화 같은 은유의 어법으로 소박하게 노래했기 때문일까? 시인과 촌장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아플 정도로 환해진다.

 

그러다가 일 때문에 싸이의 '행오버'며, 쓰리섬을 연상시킨다는 피에스타의 '하나 더'며, 효민의 '나이스 바디', 현아의 '빨개요' 같은 최신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노라면 황망한 가운데 울렁증이 인다.

 

-그나마 타블로와 함께 부른 태양의 '입코입'은 괜찮았지만- 여하튼 보고 있으면 이런 것이 과연 음악이란 말인가 싶다. 진심도 없고 정서도 없고 감동도 없고 심지어 재미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노래들이 K팝이라는 이름으로 동시대 우리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음악들로 포장되어 외국에 알려지는 게 부끄럽다. 그런데도 K팝 때문에 한국이 문화대국으로 인식되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망발인가?

 

우리 모두 아직 아프다. 가끔 울기도 한다. 아무리 울고 소리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괴물들이 너무 두려워 가끔 밤잠을 설친다. 괴물들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힘없는 노예로 사는 분노와 두려움이 날이 갈수록 커져 가슴속에서 때때로 폭풍이 치고 회오리가 일고 화산이 터지기도 한다. 아닌가? 묻고 싶다. 당신들의 나라는 안녕한가?

 

김경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작가

 

* 경향신문 [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에 실린 글입니다.

 

by e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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