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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우체통에 날아든 행복
2014.07.25
산 아랫마을에 사는 아주머니네 낡은 철 대문은 갈 때마다 늘 빗장이 풀린 채 빼꼼히 열려 있습니다. “누가 들여다본들 뭘 하나 보태 주고 가면 갔지, 들고 갈 건 없으니까.” 호탕하게 웃는 아주머니의 성격 그대로입니다. 이웃 친구들이 무시로 드나드니 그쪽이 훨씬 편하기도 할 겁니다.옛날 철 대문엔 FM(Field Manual, 현장교범)처럼 우체통이 하나씩 달려 있기 마련입니다. 대문 바깥쪽에 우편물 투입구가 있고 안쪽에 손을 넣어 우편물을 꺼낼 수 있게 통을 매단 구조입니다.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주머니네도 그 우체통에서 편지를 꺼내 본 건 까마득한 옛일입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대문 바깥 기둥에 다른 우체통을 매달아 놓았었고 얼마 전엔 아예 지자첸가 우정본부에선가 새로 달아준 우체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의 맑은 공기 덕인지 늘 기차 화통 같이 우렁우렁하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어느 날 웬일로 새색시처럼 조용해져 있었습니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철 대문의 녹슨 우체통에 최근 반가운 소식이 날아든 때문이랍니다. 아주머니의 조심스러운 눈짓을 따라 살짝 들여다본 우체통 속에는 조그마한 갈색 깃털의 산새가 경계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벌써 한 주일 넘게 그렇게 알을 품고 있답니다. 찜통 같은 더위에 바람조차 통하지 않는 우체통 속에서 꼼짝도 않고 알을 품은 어미새의 모정이라니.
그보다 산이나 숲 속에 둥지를 틀어야 할 야생의 동물이 인가에 찾아들어 알을 품다니.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대문이 흔들거려 불안스러울 텐데도 신기하게 눈만 동그래져서 내다볼 뿐입니다. 아마도 아주머니와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은밀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도 마치 남들에게 보여 주기 아깝지만 안 보여 주고는 못 배길 보물이라도 품은 듯한 표정입니다. 문득 철없던 시절 참새를 잡겠다고 공기총을 둘러메고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봉은사 뒷산 숲을 뒤지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직장 다니던 시절에도 한겨울 퇴근길에 동료와 함께 따끈한 대포 한 잔에 참새구이를 안주로 즐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눈을 씻고도 참새를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 생각해 보면 멋쩍고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기 어려운 세상에, 아니 짐승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세상에 저렇게 사람 드나드는 철 대문 우체통에다 둥지를 튼 녀석들은 도대체 어떤 녀석들일까? 대문께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한참이나 기다리는데 이윽고 담장 옆 감나무 가지에 아비새가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눈 아래로 새까만 옆얼굴과 등어리, 하얀 뒤통수, 가슴 아래로 배까지 불타듯 붉은 갈색. 딱새였습니다. 대부분 암컷들은 구분하기 어렵게 어슷비슷한 갈색이지만 수컷들은 저마다 확연히 구분되는 화려한 색상을 자랑합니다. 아주머니에게는 그 딱새가 행운의 메신저입니다. 이태 전에도 똑같이 생긴 새 한 쌍이 바로 그 우체통에다 둥지를 틀고 새끼 다섯 마리나 키워서 데리고 갔답니다. 그즈음 손녀딸이 번듯한 직장을 얻었으니 흥부네 제비가 따로 없습니다. ‘이번엔 저것들이 또 무슨 기쁜 일을 가져다주려나.’ 어미새마저 잠시 둥지를 비운 사이 들여다보니 콩알보다 조금 큰 새알 네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조것들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날 이 집엔 또 무슨 경사가 벌어질지 모릅니다. 아주머니는 자신에게 찾아드는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바로 딱새가 가져다준 것이라고 믿는 눈치입니다. 그러니 고 조그만 것들이 더욱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고 기대하며 한 집에 동거하는 딱새와 아주머니. 시샘이 날 만큼 부러워졌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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