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敬시대]핸드폰은 판도라 상자?
일러스트 : 김민지
우리는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언제나 핸드폰을 들고 있다. 나갈 때도 그렇지만 집 안에서도 들고 다니고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평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통신 매체로는 휴대전화가 45.6%로 1위다.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화 수단이다. 스마트폰은 더 이상 폰(phone)이 아니다.
워싱턴앤리대 연구팀은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자주 보내는 것이 생활화돼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적 평온을 방해받으며 심신마저 소진된다고 했다.
미국 학술지 ‘퍼스널 유비쿼터스 컴퓨팅’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습관이나 강박처럼 십 분마다 이메일이나 애플리케이션을 들여다보는데 필요해서라기보다는 확인하는 습관이라는 것이다.
휴대폰이 바르르 떨지 않아도 문자가 왔다는 착각 때문에 자주 들여다보는 ‘유령진동 증후군’도 생겼다. 더 웃기는 것은 옆 사람에게 카톡이나 문자가 와도 자동으로 자기 것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핸드폰은 모든 사달의 주인공이 돼 버렸다. 스마트폰은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 상자인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NYT)는 과거 외도 증거로 활용됐던 립스틱 자국이나 잘못 방치해 둔 카드 영수증과 마찬가지로 문자메시지가 새로운 불륜의 꼬투리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전 같으면 수상한 낌새를 차려도 그냥 찜찜하다 말 수도 있지만 이제 문자가 빼도 박도 못하는 확실한 증거가 돼준다. 바람피우는 이성들끼리 주고받은 문자 흔적을 남기는 칠푼이는 없겠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이 꺼림칙할 땐 살짝 뒤지게 된다.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부부들 가운데 20%가 배우자의 이메일 또는 문자메시지를 몰래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핸드폰 사용률 세계 1위인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더할지도 모른다. 순간적이고 일시적일 것 같은 문자메시지가 생각보다 꽤 오래 남는다.
송신자가 문자를 보내고 삭제하더라도 수신자의 휴대전화에 남을 뿐 아니라, 휴대전화에서 완전히 삭제하더라도 통신회사가 그 내용을 며칠에서 몇 주까지 별도로 저장한다. 그래서 최근 이혼 관련 소송을 다루는 변호사들은 문자메시지와 소셜네트워크 등을 소송에서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당신 사랑해, 잘 자요’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보고 싶어’ 등의 문자메시지를 근거로 재판부가 간통의 직접 증거는 없지만 다른 이성과 은밀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면 부정한 행위를 했다고 판단할 수 있고 결혼생활이 회복할 수 없는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고 판결한 판례가 있다.
‘욕실에 가서 야한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던 타이거 우즈가 ‘탈선(transgression)’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상대 여성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때문이었다.
그러니 불법으로 빼낸 개인정보를 이용해 불륜을 폭로하겠다는 허위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연락 온 사람에게서 돈을 받아 챙기는 사기단도 생기는 것이고, 켕기는 사람은 걸려드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것보다는 표현해야 제맛이다. 가끔은 안 하던 짓도 해봐야 한다. 바람을 피우지 못해 창밖에 있는 사람한테 야한 메시지 한 번 못 받은 사람은 아쉬운 대로 배우자에게 낯간지러운 문자 한 통 날려드리면 말라비틀어진 나무라도 사랑이 돋아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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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철 @con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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