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준비하다 '재건축'으로 바뀌면 어떻게 되는건가
문제는 매몰비용
대치동 한 단지, 리모델링 지연에 재건축 선회
기존 조합 170억 규모 매몰비용 책임소재 문제로
동일 구성·목적에도 조합 해산·구성 과정서 갈등 빈번
도정법 통해 구·신 조합 간 매몰비용 승계토록 해야
최근 대치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두개의 조합이 생기려는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 있다. 이 단지의 경우 애초에 주택법에 따른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 왔다. 건축한지 30년이 지나야 추진할 수 있는 재건축 사업과 달리 리모델링 사업의 경우에는 건축한지 15년만 지나면 추진할 수 있고, 절차도 재건축 사업에 비해 간소하다.
그러나 리모델링 사업이 늦어지면서 아파트의 건축연한이 30년을 넘어서게 됐고, 최근 재건축 사업에 대한 규제완화로 재건축 사업에 비해 리모델링 사업의 이점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움직임이 강해졌고, 결국 리모델링 해산 수순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문제는 매몰비용이다. 이미 리모델링 사업이 상당히 진척됐기 때문에 시공사 등 업체로부터 사업비로 빌린 돈만 170억여원에 달한다. 리모델링 사업을 중단하고 재건축 사업으로 새로 진행할 경우 리모델링 사업을 위해 대여한 금액 등의 매몰비용은 새로운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에게 물릴 수가 없다. 리모델링 사업 주체와 재건축 사업 주체가 엄연히 법적으로 다른 법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시공사 등 업체는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그에 따른 170여억원의 비용을 떠안을 위험이 발생한다. 사실상 리모델링 조합에 재산이 없고, 총회 결의를 거쳐 리모델링 조합의 구성원인 주민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기로 결정하지 않는한 개별 조합원에게 이 비용을 물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부 조합 임원이 이 비용에 대한 연대보증을 한 경우에 이들에게 일부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재건축, 재개발 사업지에 간혹 발생하고 있다. 제기동의 한 재개발 사업지의 경우에도 재개발 조합을 해산하고 다시 재개발 조합을 만드는 바람에 기존 재개발 조합에 대해 채권을 가지고 있던 채권자들이 새로운 재개발 조합으로부터 채권을 원활하게 변제받지 못한 사례가 있다. 현재 채권자들은 새로운 재개발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사실상 동일한 구성원이고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와 같이 기존 매몰비용 부담의무를 새로운 개발 주체에게 승계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기존 채무를 면탈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존 개발 주체를 해산하고 새로운 개발 주체를 설립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또, 새로운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데에도 기존 개발사업으로 인한 채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시정비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남궁민관 기자 한국일보
* 정비사업 매몰비용 개념
추진위원회 구성의 승인 또는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된 경우 그간 추진위원회나 조합이 사용한 돈이 정비사업 매몰비용에 해당한다. 이를 조합원이 부담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근거는 조합 해산에 동의한 토지 등 소유자는 청산금의 부담도 지는 것을 동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거나 사업 추진에 동의했기 때문에 비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