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양대 산맥 한국검도와 일본검도의 비교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Korea kendo and Japan kendo
일본과 우리나라의 칼 착용 형태가 그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검도가 그 나라의 민족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일본의 검도 기술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보다는 상대를 해하는 것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선제공격하는 공격형 발도기술을 발달시키기 위해 칼을 오른손에 가깝게 찬다. 한국의 검도 기술은 마음을 수양하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호신의 형태로 뽑아 칼과 동시에 방어를 취할 수 있도록 왼쪽에 착용한다.
칼을 사용하는 방법 또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위와 같은 맥락이다. 일본의 검도는 군국주의의 사무라이 정신에서 비롯되어 주군을 위해서 상대를 공격할 때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일격필살의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몸을 앞으로 향하여 상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형태로 직선적인 공격을 하기 때문에 칼 기술이 방어적이지 못하고 단조롭다.
한국의 검도는 살생보다는 방어와 호신을 목적으로 칼의 형태와 용도에 따라 수련하며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한국의 본국검(本國劍), 일본의 왜검(倭劍), 중국의 월도(月刀)로 구별하며 전문적인 칼의 흐름을 터득하여 도(道)에 이르는 수련방법이다.
일본검도의 한국유입
왜검(倭劍)은 조선왕조 숙종때 국교(軍校) 김체건(金體乾)이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를 따라 갔다가 검보(檢譜)를 얻어 그 술법을 배워 한국군사에게 훈련시킨 검술이었다. 왜검은 토유류(土由流) , 운광류(運光流), 천류류(千柳流), 유피류(柳彼流) 네가지 유파가 전하여졌다. 왜검의 기법은 네가지 기법을 주로 구사하는 검술이 타격득점으로 무도의 교육적 가치를 가르치고 있다.
경기방법은 죽도의 규정과 경기장의 면적 그리고 유효격자 부위를 정하여 타격득점 그리고 용구의 규정으로 경기를 겨루는 방식이다.
검도 자체가 일본식이고 일본 주군에 대한 충성과 한국의 식민지교육에 있어 민족말살정책을 본격화하고 군국주의의 요구에 봉사하는 일본의 황국식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일제 강점기 정치적인 목적과 일본정신을 배양하는 무도 장려에 있다.
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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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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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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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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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교(통신사) 김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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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검(한국 군사훈련 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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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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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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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 공원직 제절목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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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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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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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사열(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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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명치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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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각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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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 무덕회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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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개국5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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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양원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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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학교 설립, 경무청 격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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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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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연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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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숙교과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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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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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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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경찰관 격검상(사회체육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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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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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술회(진지내마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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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중학교, 중학교 정규검도과목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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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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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체조 교수요목(검도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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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활동 과목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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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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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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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검도장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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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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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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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과목으로 검도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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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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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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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교과목 채택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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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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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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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검도 정규과목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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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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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교육령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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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교육, 민족말살정책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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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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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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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검사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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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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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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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상무회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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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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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검도회 준비위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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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검도회 창립 준비위원회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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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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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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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검도회로 개칭, 대한체육회 가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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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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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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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체전 정식종목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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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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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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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의 검도 종목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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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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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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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의 정식종목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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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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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검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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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연맹을 중고연맹, 대학연맹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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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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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문화체육부 사단법인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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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무 1987:208
동아일보 (1921.10.20.)
동아일보 (1922.6.30.)
윤성식 한국검도의 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