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 구조개혁의 우선순위들
지난 5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에서 국민대 조환익 교수가 발표한 ‘전기화 시대 K-Power 미래전략’은 전력산업이 처한 현 시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내용들이었다. 특히 발표자 조환익 사장은 산업부 차관, 한전 사장, 풍력회사 회장을 역임한 에너지 전문가인 관계로 이날 발표 내용이 더욱 주목된다. 그의 발표 내용을 점검하고 전력시장 구조개혁의 현안과 우선 순위를 점검해 본다.
조 교수는 먼저 전기 분야의 혁신은 ‘전기의 실질적 산업화’에서 찾아야 한다며 ⅰ)전기에 대한 인식이 유틸리티에서 전력산업(Electric Industry)로 바뀌어야 한다. ⅱ)한전의 민영화나 전력시장 자유화는 급격한 전기요금의 상승과 시장 혼란, 노사문제 등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현재의 체제를 대폭 개선하는 선에서 검토해야 하다. ⅲ)전력산업도 혁신의 길을 찾아 국제 경쟁력을 갖추어야 슈퍼 싸이클을 맞고 있는 해외 시장에서 큰 성과를 획득할 수 있고, ⅳ)이를 지원하기 위한 법령 및 지원 제도 등 정부나 공공기관 부문에서의 개혁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조 교수는 K-Power의 미래 전략 기본 방향으로 ⅰ)한전 독점과 전력 거래 시장의 중앙 집중화를 대폭 개선하고 경쟁체제로 만들어야 한다. ⅱ)이를 위해 전력 시장 참여자가 수익성을 가질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야 하고. ⅲ)공급선과 가격 면에서 선택과 경쟁이 살아나야 하고, ⅳ)경쟁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만 현 시점에서 단계적이고 제한적 자유화는 불가피하고, ⅴ)전기의 산업화를 위한 R&D, 인력양성 등 다양한 지원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기본 방향 하에 a)한전의 개편, b)시장 및 가격 결정구조 개혁, c)산업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 세 부문에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한전의 개편과 관련해서는 ⅰ)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되 민간 에너지 기업의 자본 참여를 허용하고, ⅱ)사외이사로 민간기업 추천인사가 참여하여 경영효율화 주도, ⅲ)정부는 과도한 요금 상승 억제와 환경 의무와 수급 안정 사항에만 관여하고, ⅳ)현재의 발전 송배전과 판매사업 위주에서 해외사업, 전력 Data 사업, 금융, 신재생 등 사업 다각화 추진 ⅴ)배전과 판매부문에서는 부분적 민간 개방도 검토, ⅵ)이를 위해 이탈리아 ENEL사 등의 해외 진출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시장 및 가격 결정 구조 개혁과 관련해서는 ⅰ)전력 도매 시장의 참여자를 확대하여 경쟁 체제를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 ⅱ)분산전원 시대에 맞추어 지산지소(地産地消) 체제로 ‘물량 가격 입찰제’ 등 경쟁 유도 ⅲ)제한적이라도 원가연동제 시행 ⅳ)전기요금 변동 폭을 정하는 위원회와 시장감시기구 운용 ⅴ)초고압 다용량 수요자는 구매 선택권을 부여하여 구매의 융통성 확대 ⅵ) PPA, VPP, DR, V2G 등 전력거래소를 통하지 않은 거래에 대한 중개사업자 양성을 제안했다.
전력 ‘산업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서는 ⅰ)발전분야는 SMR, 핵융합발전, 태양광 위성 발전 등에 정부 주도로 민·공기업의 적극 투자 유도, 해상풍력 국산 가점제 보강 ⅱ)송전분야는 한전이 중심이 되어 산·학·연 클러스터 육성 ⅲ)스마트 그리드 및 직류화 및 AI 기술 접목 등에서 민간 사업자나 수요자 참여 방식으로 현대화·최적화 추진 ⅳ)판매부문은 전력 ESS 기술력 확보와 본격적 시장 개척, 전기 수요관리와 효율화를 위한 SW 기업 양성, 탄소배출권 거래시장 활성화 등을 제안했다.
이상을 요약하자면 한전 독점 해소와 전력 분산을 추진하되 적절한 규제 하에 단계적인 개방을 하고, 시장 참여자 육성과 수익성 보장이 필요하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오랫동안 전기 현장에서의 경험과 전기를 전력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미래를 위한 고민이 매우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좀 더 엄밀히 분석해 보면 전력산업을 둘러싼 가장 큰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보다는 중단기적 임기응변으로 현 사태를 대응하고자 하는 인상을 받는다. 거버넌스는 한전 이사회와 주주 구성 변화 수준에 있고, 시장 개방도 한전 민영화 여부라는 이분법적 전제하에, 현재 전력거래소가 주관하고 있는 도매시장 경쟁 체제를 한전 중심하에 단계적 개방하자고 한다. 또한 전기요금의 ‘합리적 예측 가능성’은 시장 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인프라 구축을 할 수 있지만 조 교수는 이러한 과정도 규제를 통해 관리하자고 한다.
조 교수의 이러한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력시장 구조개혁이 필요한 이유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전을 중심으로 한 전력 정책은 우리 경제에 큰 기여를 했다. 값싸고 품질 좋은 전기를 마음껏 사용했다. 그렇지만 탄소중립시대를 맞아 이제는 패러다임 시프트에 따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앞으로의 전력산업은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확대, 분산전원 달성, 산업융합 촉진, 소비자 선택권 확대, RE100과 CBAM 등 탄소외교를 담당해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현재와 같이 한전의 송전·배전·판매 독점으로는 불가능하다. 또한 정부의 최종 판매요금 규제로는 합리적인 자원배분이 불가능하다. 오직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경쟁적 요금체계’ 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규제요금 하에서는 조 교수가 거버넌스로 주장한 한전 이사회와 주주 구성의 변화로는 이룰 수 있는 게 없다. 전력거래소와 전기위원회 같은 더 큰 거버넌스의 독립성이 필요하다. 한전 민영화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과 노사문제 야기 우려는 문제를 너무 이분법적으로 본 것이다. 민영화 없이 배전·판매시장 개방으로도 경쟁을 통한 정책 효과가 가능하다. 민영화가 아니므로 노사문제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전기요금도 경쟁체제가 전기요금을 더 싸게 한다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사례로 입증되고 있다. 전력산업화를 위한 인프라구축도 배전·판매 개방을 통한 시장 참여자들이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모든 것을 전기요금 수익을 가지고 한전과 정부가 해야 한다는 것은 전력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보인다. 조 교수가 예를 든 이탈리아 ENEL사 같은 경우도 유럽 전력시장의 완전한 경쟁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력 산업이 진정한 산업화를 이룩하고 변화하는 패러다임 속에서 계속되는 혁신을 이뤄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부가적으로 이에 대한 안전장치를 규제화하는 방향이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현재의 한전 독점체제 및 정부의 가격결정 권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규제나 인센티브 도입은 일시적인 임시변통일 뿐 장기적으로 전력산업의 경쟁력있는 전환을 늦출 뿐이다.
그렇다면 현 단계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미래 전력산업을 위한 길인가? 가장 빠른 길은 현재 분산에너지특별법 하 일부 분산에너지 특구 내에서 국소적으로 이뤄지는 경쟁체제 요소들을 잘 정비하여 전국 단위 전력시장에 이식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게 분산특구 내의 전력 직거래다. 전력 직거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기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가격 결정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전력거래소(TSO)는 수급관리를 책임지고, 한전은 송배전 요금을 합리적으로 책정하도록 해야 한다. PPA 요금제가 실행이 잘 안되는 이유가 송배전 요금의 불합리성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배전감독원이 없는 관계로 한전의 합리적 송배전 요금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특구 내의 급전 우선순위도 중요하다. 현재 현실적인 이유로 배전운영자(DSO) 역할을 한전이 할 예정인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분산법 취지에 맞지 않다. 분산지역 내의 재생에너지가 154kV 이상의 송전단위로 급전하기 전에 22.9kV 배전단위에서 소비되기 위해서는 DSO가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운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송배전망을 보유한 기존 10대 전력회사는 화력발전보다 재생에너지 전기가 급전 우선순위임에도 잘 지키지 않고 있다. 유럽이나 일본 등 전력시장 경쟁체제를 운영하는 나라는 모두 송배전 회사는 발전 및 판매회사와 법적 분리를 하도록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원의 지역 편재성,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간헐성 극복을 통한 분산전원과 산업융합 등 전력시장 현안을 고려할 때, 분산특구에서 직거래가 활발해지도록 각종 제도와 요금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현실적인 최우선 과제다.
ESG네트워크 대표 김경식·<홍보 오디세이> 저자
전기신문
케이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