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사라진 아파트...누가 없앴나
발코니 사라진 아파트, 범인은 국회다
침대 없던 시절 만든 85㎡ 국민 주택 기준,
공간 더 필요해지자 '발코니 확장법' 땜질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은 무엇일까? 아마도 국회의원일 것이다. 수많은 특권을 누리면서도 하는 일은 없어 보이고, 허구헌 날 호통치고 싸우는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 비치니 그럴 만도 하다. 말로만 국민을 섬긴다고 하는 것 같다. 오죽하면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말을 했을까.
빨래 널고 바람 쐬는 공간 집에서 사라져
도시는 삭막해지고 집에선 자연 못 즐겨
국회는 수십 년 내다보고 제때 입법해야
'4류 정치'가 기형적 도시 만들었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은 입법이 주요 업무다. 수십 년간 여러 가지 어이없는 입법이 있었지만, 건축가로서 말할 수 있는 잘못된 법은 ‘발코니 확장법’이다. 발코니를 확장해 실내 공간으로 잘 쓰게 해줬는데 왜 잘못된 법이냐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법이 나쁜 이유는 주거 공간에서 자연을 사라지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일의 순서만 제대로 했다면 말이다.
얼마 전 도쿄에 다녀왔다. 도쿄와 서울은 건축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이 있겠지만, 건축가의 눈에 들어오는 가장 큰 차이는 주택에 발코니가 있느냐 없느냐다. 도쿄에서도 오피스 건물은 커튼월로 되어 있다. 하지만 초고층 주거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주거용 건물에는 여지없이 발코니가 있다. 초고층 건물은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커튼월을 사용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아파트의 창문은 지진이 났을 때 유리가 깨져 지상으로 떨어지게 되면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발코니를 만들어 깨진 유리를 비롯한 잔해가 발코니에 떨어지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 외에도 발코니는 다양하게 활용된다. 빨래를 너는 공간이다. 나와서 바람을 쐬기도 한다. 여름에 햇볕이 들이치는 것을 막아주는 차양의 기능도 수행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아파트 주거에는 발코니가 없어 도시의 풍경이 삭막해 보인다. 거주자 입장에서는 집에서 자연을 즐길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발코니를 확장해서다. 발코니 확장은 왜 했을까? 우리 국민이 침대를 사용하기 시작해서다. 과거에는 장롱에서 요와 이불을 꺼내 펴서 잠을 잤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집어넣어 사용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잠은 침대에서 자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뿐 아니라 TV는 소파에 앉아서 보고, 밥은 식탁에서 먹고, 공부는 책상에서 한다. 하나의 공간이 하나의 기능만 하게 됐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그 필요에 맞게 가구가 놓였다. 우리의 일상에서 가구가 점점 늘어나게 됐다. 가구는 사용할 때는 편리하다. 문제는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더 넓은 집이 필요해졌다.
국민의 소득이 늘면 더 큰 공간이 필요해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197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해 중산층은 점점 더 큰 집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정부는 부가가치세가 더 붙는 기준점인 주거 면적 85제곱미터를 그대로 뒀다. 세제가 그렇다 보니 건설사에서는 85제곱미터 이하를 주로 공급해왔다. 사람들은 더 넓은 실내 면적이 필요했는데 집은 계속 좁았다.
그때 마침 ‘알루미늄 섀시’가 보급됐다. 사람들은 발코니를 알루미늄 섀시 창틀로 막아 실내 공간처럼 사용했다. 알루미늄 섀시 덕분에 불법 증축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너도 나도 이렇게 하자 2005년에 국회는 ‘발코니 확장법’을 만들어 합법화했다. 이후에는 폭 1.5미터의 서비스 면적 발코니를 확장해 사용하기 위해 아예 건축설계사무소에서는 발코니는 확장된 것으로 생각하고 방을 디자인했다. 지금 대부분의 신축 아파트는 발코니를 확장하지 않으면 침대를 놓을 수 없는 크기로 애초에 디자인된다. 그래야 용적률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 우리 도시의 풍경이고 주거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이 제때 제대로 된 입법을 안 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더 큰 집이 필요해지니 이제는 면적 산정 방식을 벽의 중심선이 아닌 벽 두께를 뺀 실내 면적으로만 계산하게 했다. 이것도 실내 면적을 늘려주려는 편법이다. 만약 1980년대에 중산층 주거의 기준을 85제곱미터가 아닌 100제곱미터로 올렸더라면 ‘발코니 확장법’은 만들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지금 우리는 발코니가 있는 더 좋은 중산층 주거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중산층용 과세 기준을 바꾸지 않았고, ‘발코니 확장법’이라는 이상한 법을 제정해 결국 기형적인 도시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가까운 미래도 생각하지 못하는 ‘4류 정치’가 만든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발코니 확장법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도 시대에 뒤떨어진 호화 주택 기준이 많다. 세금 규칙을 제때 바꾸지 않으니 편법을 쓰는 이상한 기형적인 건축만 나온다. 유홍준 작가가 과거 문화재청장을 하던 시절에 호화 주택의 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100년 후에 우리나라에는 문화재로 보여줄 만한 건축물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공감하는 말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많은 건축 문화재는 당대의 초호화 건축물이었다. 건축 설계자가 감리를 못하게 하는 법도 최상의 건축 품질을 이끌어내는 데는 걸림돌이 된다.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법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건축에서의 각종 심의를 보면 규제가 선진국을 만든다는 환상에 빠진 것 같다. 우리나라는 평등을 위해 하향 평준화를 추구하면서 말로는 혁신과 창의를 외치는 모순에 빠져 있다.
좁은 컵에 많은 양의 자갈, 모래, 물을 넣는 실험이 있다. 무작위로 넣으면 다 집어넣지 못하지만 굵은 자갈부터 알맹이가 작은 모래와 물의 순서로 넣으면 다 집어 넣을 수 있다. 일의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법도 마찬가지다. 이제 국회의원들은 수십 년 후를 내다보고 일의 순서를 제대로 알고 법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당장의 표를 얻기 위한 입법은 나라를 망칠 수 있다.
조선일보
https://youtu.be/GbKO1rqDd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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