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되는 의료 생태계..."정형외과, 안과 차리면 건물 올린다"
정형외과·가정의학과 비급여 지급액 비중 70% 넘어
비급여 비중 높은 과일수록 의사 연봉도 높아
[편집자주] 실손의료보험금이 줄줄 새고 있다. 매년 수십만원의 보험료를 내지만 1년에 한 번도 보험금을 받지 않는 가입자가 절반이 넘는다. 5%도 안되는 가입자가 전체 보험금의 60% 이상을 타가고 있다. 비급여 관리가 안되면서 실손보험금은 눈 먼 돈이 됐다. 적자를 본 보험사는 매년 보험료를 올리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형외과와 가정의학과 등에 지급된 실손의료보험금 중에서 비급여 보험금의 비율이 7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진료과별 평균 비급여 비율 57%대를 훌쩍 웃돈다. 게다가 두 진료과에 지급된 비급여 금액은 전체 지급액의 22.5%다. 비급여 비율이 높은 진료과의 의사 연봉도 높은 편이다. 이는 필수 진료과 의사의 이탈을 야기해 필수 의료 붕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대형 손해보험사 5곳(메리츠·삼성·현대·KB·DB)의 주요 진료과별 실손보험금 지급현황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체 지급액 9조2860억원 중 비급여 진료 관련 지급액은 5조3524억원으로 전체의 57.6%를 차지한다. 올 상반기에도 전체 지급액 4조9439억원 중 57.8%인 2조8564억원이 비급여 지급액이다.
특히 올 상반기 기준 정형외과의 지급액 대비 비급여액 비율은 71.0%에 이른다. 전체 진료과목의 비급여 비율인 57.8%를 크게 상회한다. 지난해도 정형외과의 비급여 비율은 70.3%로 높았다.
정형외과에 빠져나가는 금액은 1조원대에 이른다. 올 상반기 기준 정형외과에 지급된 보험금은 1조1135억원으로 전체 실손보험금 지급액 4조9439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5%에 이른다. 정형외과에 지급된 비급여 관련 보험금은 790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0%나 증가했다. 도수치료와 증식치료, 체외충격파치료 등 비급여 물리치료 때문에 비급여 비율이 높고 보험금 지급액도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가정의학과는 올 상반기 비급여 진료비로 1843억원 지급됐다. 전년 동기보다 3.8% 늘어난 수준이다. 전체 진료비 대비 비급여 지급액 비중은 70.4%로 높다. 연령과 성별, 질환의 종류와 관계없이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치료 등을 광범위하게 시행하면서 비급여 진료 관련 지급된 보험금이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필수의료나 기피과로 분류되는 산부인과의 비급여 비율은 51.5%로 평균보다 낮았다. 다만 보험업계에서는 산부인과에서도 성형·요실금 수술 후 하이푸 수술로 허위 청구하거나, 일반적으로 비뇨기과에서 시행되는 전립선 결찰술을 산부인과에서 시행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간 인기과로 꼽힌 안과의 경우 2020년에는 비급여 비율이 80.3%로 높았으나 올 상반기엔 28.9%로 낮아졌다. 2022년 비급여인 백내장 수술 관련 '입원 치료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실손보험 보상 기준이 강화된 영향이다.
비급여 비율이 높을수록 의사 연봉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정책연구원이 공개한 '혼합진료 금지를 통한 실질의료비 절감방안'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의원 표시과목 중 의사임금이 가장 높은 과목은 안과로 연평균 임금은 4억5837만원이었다. 이어 정형외과 4억284만원, 재활의학과 3억7933만원, 신경외과 3억7065만원, 피부과 3억263만원, 외과 2억9612만원 순이었다. 이들 과목의 비급여율 순위는 상위권이다. 안과는 2위, 정형외과는 3위, 재활의학과는 1위, 신경외과는 4위, 피부과는 8위다.
최근 10년 간 비급여 진료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인기과와 그렇지 않은 기피과 간 소득 격차는 확대됐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안과 의사 보수는 4억5837만원으로 2010년 대비 90.8% 올랐다. 두 배 가까이로 뛴 것이다. 정형외과는 4억284만원으로 88.1%, 마취통증의학과 보수는 3억4431만원으로 134.3%나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보수는 1억875만원으로 오히려 16.3% 떨어졌다. 산부인과 의사 보수는 2억5923만원으로 91.9% 올랐지만 인기과 대비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형외과, 안과 의사들의 경우 비급여와 실손보험으로 쉽게 돈을 벌면서 건물을 올리는 사례도 많았다"며 "실손보험을 통해 가격 제한 없이 비급여 치료비를 올려 받을 수 있도록 한 그간의 구조가 인기과와 비인기과를 나누고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미주 기자배규민 기자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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