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게 값” 성수동 부동산의 비밀

 

1주일 임대에 1억인데 내년까지 예약 꽉차

 

‘팝업’ 내려는 기업 몰려 부르는 게 값

2025년까지 예약 찬 곳도

 

   지난달 말 서울 성동구 성수동2가 연무장길에 있는 코카콜라 팝업 스토어에 입장하려고 매장 앞 QR코드를 찍으니 ‘대기 87팀, 예상 대기시간 87분’이라는 안내가 떴다. 인근 다른 팝업 스토어에도 대기 줄이 수십m씩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 우려로 전국 주요 상권에서 상가 공실률이 오르는 가운데 서울 성수동 상권은 눈에 띄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성수동 일대에 MZ 세대가 열광하는 팝업 스토어들이 줄지어 들어서면서 유동 인구가 늘고, 상가 임대료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부르는 게 값” 성수동 부동산의 비밀

 

 

성수동 일대 공인중개업소나 건물 외벽에는 ‘팝업 스토어 문의’, ‘팝업 대여’ 같은 홍보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여 기간과 면적, 입지 등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인데, 성수동 중심부에서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리면 1주일 임차료가 1억원 이상 들기도 한다. 성수동의 한 공인중개업체 대표는 “건물주가 장기 임차인을 받기보다 임대료를 마음껏 올릴 수 있는 단기 팝업 유치를 선호한다”며 “인기가 좋은 장소는 2025년까지 예약이 꽉 찬 곳도 있다”고 했다.

 

매주 50곳씩 열려 “부르는 게 값”

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월 마지막 주(12월 25~31일) 성수동 일대에서 운영된 팝업 스토어는 49곳에 달했다. 코카콜라, 카누(커피) 같은 식음료업부터 러쉬, 휩드 등 뷰티 업체, 샤넬과 반클리프 아펠 같은 명품 업체, 아이돌 그룹 NCT, 웹툰 캐릭터 빵빵이 등 K콘텐츠 관련 팝업 스토어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팝업 스토어는 보통 2~6주 정도 문을 열고, 길게는 6개월까지 운영되기도 한다. 단기로 임대하는 팝업 스토어의 경우, 1년간 최대 5%까지 임대료를 올릴 수 있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성수동에서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방식의 대규모 팝업 스토어 임대료는 최근 들어 1주일에 1억원까지 치솟았다. 팝업 스토어 오픈 경쟁이 주변 상가 임대료까지 끌어올리면서 성수동 일대에서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에 따른 원주민 내몰림 현상)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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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소·제철소·제화공장 등이 몰려 있던 성수동은 2000년 전후로 공장들이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낡은 건축물과 폐공장이 즐비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과거 공장이나 창고로 쓰던 곳이 카페나 전시장으로 탈바꿈했고, 독특한 분위기를 찾는 젊은 소비자들이 몰리면서 서울의 대표 상권 중 하나로 부상했다. 서울 강남권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여러 기업이 성수동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기 시작했다. 특히 3~4년 전부터 루이비통, 샤넬, 디올 같은 명품 브랜드까지 성수동에 임시 매장을 열면서 ‘팝업 스토어의 성지’라는 별명도 붙었다. 좋은 장소를 선점하려는 기업 간 경쟁도 팝업 스토어 임대료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한 유통 업체 관계자는 “임대료를 포함해 인테리어나 철거 비용 등을 더하면 수억원이 들지만, 매출이나 홍보 효과를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1년 새 임대료 40% 치솟아…젠트리피케이션 우려

팝업 스토어를 열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최근 성수동 일대 상가는 공실을 찾기 어렵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에 따르면 성수동 상권의 작년 2분기 공실률은 5.8%로, 명동(14.3%), 홍대(15.9%), 강남(19.2%), 가로수길(36.5%) 등 서울 주요 상권과 비교해 훨씬 낮다.

 

 
그래픽=김현국
 

상권의 인기는 필연적으로 임대료 상승을 동반한다. 기존 상인들이 과도한 임대료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을 막기 위해 2018년부터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대료 증액 상한을 연 5%로 제한했지만, 팝업 스토어처럼 일시 사용이 명백한 단기 임대는 ‘임대료 5% 상한’ 제한을 적용받지 않는다.

 

 

팝업 스토어 임대료가 치솟자 주변 상권 임대료도 들썩이고 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성수동의 월평균 임대료는 3.3㎡당 24만5450원으로, 1년 전(17만7160원)보다 38.5% 급등했다.

 

임대료 부담이 커지자 중소형 브랜드나 소상공인 매장들이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고 있다. 20년 넘게 연무장길 수제화거리에서 가죽 상점을 운영한 한 상인은 “바로 옆집만 해도 우리보다 월세가 배 이상 비싸졌다”며 “장사는 안되는데 세는 오르니 버티지 못하고 변두리로 가는 가게가 많다”고 했다.

 

성동구청을 포함한 일부 지자체는 팝업 스토어의 임대료에도 상한을 두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임대료 상승으로 성수동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온 터줏대감 가게들이 쫓겨난 상황에서 팝업 스토어 인기가 시들해지면 성수동 상권 전체가 침체할 수 있다”며 “기존 상인들도 공생할 수 있는 임대료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팝업스토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인터넷 ‘팝업 창’처럼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에서 단기간 운영하다가 철수하는 매장.

신수지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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